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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12. 2023

강제라서 고마워요

월화수목금. 주중 아침. 분주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의 사연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디 아파요, 무슨 일 있어요, 뭐 때문에 늦어요, 못 와요, 힘들어요, 신나요, 합격했어요, 여행가요, 올랐어요, 망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휴대폰을 통해 들어옵니다. 하나하나 챙기면서 기록을 합니다. 그리고 답장을 해 줍니다. 그러다 갑자기 2012년 어느 야구장에서 브이를 하면서 맑게 웃고 있는 열한 살 아드님의 얼굴이 화면에 휘리릭 하고 나타납니다. 그날의 장면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구글 포토입니다. 강제 추억 소환 마케팅 시스템입니다.


한참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일부러 찾아 들어가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됩니다. 연신 들어오는 아이들의 아침 사연 사이사이에서. 아이들에게 보내던 메시지를 잠깐 멈추고 다음 사진으로 바뀔 때를 기다리게 됩니다. 랜덤 재생이어서 더 기다려집니다. 아~ 오~ 어? 하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의미가 없는 장면들도 없다고. 그렇게 한참을 열한 살의 아드님과 여덟 살의 따님이 스물 하나와 열여덟의 지금과 오버랩됩니다.


예전에도 몇 번 자동재생이 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 그랬지, 여기 어디지 하면서 얼른 재생을 종료하고 업무에 빠져들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짙은 새벽 내내 이렇게 나와 연결되어 온 모든 이들과 것들과 세상을 처음으로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묻어 있는 추억들을 단어로 표현해 봤습니다. 그 속에서 지금보다 더 어린 나와 지금인 내가 이어져 보였기 때문입니다. 

 




멍, 가면, 상담, 미안, 가족, 당당, 가치, 플랭크, 간, 정겨움, 감격, 감자, 몽당, 감정, 감탄, 감태, 같이, 강, 모과나무, 강황, 거름, 놀람, 걱정, 걷기, 겁, 격려, 경미, 고기, 고마움, 고사리, 고요, 곡우, 공, 클로렐라, 공기, 공손, 공허함, 관심, 교실, 구름, 국수, 군자란, 굴, 궁금, 귤, 갤러리, 게발선인장, 계단, 귀, 근대, 급여, 분리수거, 겨울, 견과류, 기대, 감바스, 기다림, 기부, 이음, 기쁨, 기타, 길, 김,그리움, 그릭, 글, 형석, 글라디올러스, 글멍, 금낭화, 금잔화, 나눔, 나무, 나물, 나미, 냄새, 냉면, 노란커피, 노래, 누적, 눈, 눈길, 느긋함, 다육, 다행, 경진, 달, 달리기, 달콤, 달걀, 담수, 당, 고구마, 당귀, 츄러스, 당황, 맥주, 대담함, 고추, 대화, 도전, 돈, 동구리, 동백, 동네, 동생, 두근두근, 거북스러움, 드라이브, 들, 희정, 들뜸, 따사로움, 라면, 라일락, 런지, 로메인, 김치, 리얼, 랭리, 마음, 먼지, 명란, 명이, 목련, 몸, 달공, 무기력함, 무말랭이, 문, 문콕, 물, 진정, 물멍, 뭉클, 마작, 격렬, 막막함, 만두피자, 말, 개나리, 말레이시아, 미러, 미련, 미영, 미움, 민들레, 감사, 민망함, 메시지, 멜라초, 멸치, 묘함, 김밥, 뮤지컬, 바나나, 바다, 바람, 다옴, 바실리아, 글루타티온, 바이올린, 반가움, 반려견, 하람, 반려식물, 수능, 반려인, 하율, 반지, 반톡, 독서, 발바닥, 밤, 밥, 벅참, 벚꽃, 벼리, 병맛, 깨방정, 버섯, 배, 잠실, 배려, 배부름, 밴쿠버, 보라, 봄, 봄눈, 봄동, 겨울, 부담, 부추, 부탁, 부끄러움, 공간, 북받침, 분리, 워치, 불멍, 라라크루, 불편, 불행, 돈가스, 불쾌, 브런치, 루테인, 블루베리, 비, 비상구, 도라지, 훈댕, 훈훈함, 비참, 비행기, 대만, 비트, 빌보드, 사과, 가을, 사람, 따님, 사랑, 사탐, 플라스틱, 산, 산수유, 매력, 산호수, 산책, 살, 광동, 산뜻함, 삼겹살, 상추, 상쾌, 몽실, 상큼, 서글픔, 멈춤, 쏘렌토, 서랍, 서운함, 안정, 서투름, 붕어빵, 선망, 선물, 드립퍼, 설탕, 확진, 성가심, 세리, 세월, 경희, 세차, 새벽, 새우, 합평회, 샐러리, 생각, 머리, 생생함, 생수, 불안, 생애주기, 소통, 오늘, 소금, 속도, 손가락, 손길, 솔직함, 수란, 숨막힘, 소리, 발가락, 소맥, 속상함, 수면, 미희, 소음, 소연, 수업, 수호, 술래잡기, 스쿼트, 스탠딩, 슬기, 슬픔, 습관, 시금치, 도착, 시래기, 신기함, 신남, 보쌈, 심술, 심장, 두릅, 스파티필룸, 시다모, 시작, 쇼핑, 악력, 아드님, 아름다움, 아름다운가게, 아몬드, 아쉬움, 아영, 드라이크리닝, 아이비, 아지, 아픔, 아침, 안개, 안심, 안전, 안타까움, 안쓰러움, 소주, 알코올, 야구, 물통, 야속함, 어이없음, 어중간, 억울함, 사진, 언라인, 언어, 얼갈이, 얼음, 레몬, 얼떨떨, 엄마, 원고지, 원두, 태양, 야자, 양말, 양보, 양심, 결혼, 장모님양장피, 양파, 밋밋함, 여리, 여름, 여행, 연결, 열광, 내안에, 열렬함, 열무, 여행, 리필, 예쓰,  그라인더, 에듀테크, 엘라스틴, 와이파이, 와인, 든든, 옹심이, 범부채, 오픈채팅봇, 우산, 헬스, 우울함, 우정, 운, 조끼, 운동, 운전, 울적함, 위, 위산, 위안, 위축, 비탄, 유기농, 유대감, 유부초밥, 유산, 용감함, 용기, 용식, 입, 설렘, 음식, 이불, 이상, 펄라이트, 이슬, 이야기, 이해, 입금, 인생, 숲오, 인천, 의기양양, 두유, 두통, 의미, 의자, 의지, 발랄, 응원, 은희, 애석, 애틋, 예쁨, 자격증, 한심, 자동차, 자랑, 자리, 자비, 자야, 자유, 자이언트, 프레시, 자전거, 작품, 잔, 잡초, 장, 장마, 장어, 장인어른, 재미, 엠비티아이, 재은, 찝찝, 재택근무, 인삼벤자민, 적적함, 전근, 전화, 절망, 절벽, 정년, 정민, 정장, 정서, 정성, 정크아트, 제인, 제한, 조마조마함, 조정, 족발, 존경, 존중, 시선, 졸업, 주눅, 주름, 주차장, 죽음, 즐거움, 마스크, 지구인, 지도, 지루함, 쓸쓸, 지리산, 지담, 깨, 지압, 지영, 지지, 지하, 질책, 차, 제로웨이스트, 차선, 차분, 창피, 책, 처남, 처량함, 처형, 거실, 철렁, 청소, 철쭉, 출근, 충만함, 치앙마이, 치즈, 혜리, 치킨, 친구, 친환경, 침울, 칭찬, 초조, 춤, 카페인, 캠핑, 커피, 코, 떡볶이, 뜨거움, 코로나, 콘서트, 콜라겐, 크리스마스, 크림, 클로바, 키보드, 쾌활, 연산홍, 타닥이, 탄력, 텃밭, 토스, 통밀, 통제, 통쾌, 트레드밀, 유진트윈스, 서러움, 태풍, 테이블야자, 텐션, 튀김, 포근, 표현, 풍경, 펀그라운드, 편안함, 펜스, 평화로움, 패기만만, 패션후르츠, 피곤함, 피부, 피아노, 픽, 프로틴, 하루, 하트, 한결같음, 한나, 한지, 해, 화, 환기, 허리, 허무, 허전, 허탈, 김라임, 비긴어게인, 혼란, 햇살, 행복, 헛개, 호기심, 호섭, 호스, 호저난, 호흡, 회, 홍국, 홍어, 홍콩, 후련함, 후배, 후회, 화끈거림, 환불, 환호, 환경, 황홀함, 아버지, 감미로움, 협력, 화분, 화사, 황사, 회복, 희망, 흙, 향기, 흐드러짐, 흐뭇, 까치, 꽃, 꿀벌, 꿔바로우, 통화, 따분, 딸기, 땀, 유튜브, 떡, 퇴근, 퇴임, 빨래, 빵, 뿌듯, 쌀, 명랑, 쌈박, 쑥, 연홍씨앗, 쓰기, 제로, 짜릿함, 짜증, 찌릿, 찔래, 푸르지오, 찡함, 쪽밭, 공동체, 소중한진심 




괜찮다고, 끄떡없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또 쉽게 변하지 않는 나이기도 합니다. 나도 그런데 내가 누구를 변화시키고, 흔들 수 있을까요. 가족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열패감이 아니라 신중함입니다. 만만함이 아니라 소중함입니다. 익숙함이 아니라 발견입니다. 몸나이가 하루하루 늘어나면서 겉으로만으로는 모르는 것들이, 잘 모르게 되는 것들이 더더욱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의 고집은 더 확고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저 밋밋한 일상이지만, 이 일상이 하나하나 다 고맙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별거 없는 요즘입니다. 별거 없는 게 좋은 요즘입니다. 7년 전 오늘... 2016.5.12.로 추억 여행을 해보세요... 어느 날 갑자기 지나간 사진 한 장에 고마움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잊고 지냈던 시간, 공간. 그리고 함께 한 사람들. 눈앞이  안개처럼 드리워지면서 희뿌옇게 됩니다. 일상 속에서 잊은 듯 잊지 못한 추억을 강제소환하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줍니다. 법으로라도 규정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앞만 보지 말고 멋모르고 잘 견뎌온 순간들을 의무적으로 하루에 단 몇 분씩만이라도 살펴보기. 보통 사진을 찍는 그 순간, 그 장소, 그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시간과 공간, 인연이니까요. 그 사진 한장 한장은 다시 글로 남길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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