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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11. 2023

고맙다 대성리

이미지...연합뉴스

춘천 가는 길. 5월 어린이날과 함께 시작된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전날처럼 세차지는 않지만 후드득후드득 거렸다. 바람도 꽤 불었다. 출발하기 전 와이퍼를 새 걸로 교체하기를 잘했다 싶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손바닥으로 훔쳐내듯 흐르는 빗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얇은 차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쪽은 참 따뜻했다. 행복했다. 온 세상 평화가 차 안에 가득했다. 


운전하는 옆자리에서 오랜만에 일팔 청춘 따님이 디제이를 해주었다. 아빠 좋지? 내가 디제이 하니까. 응? 응?. 그럼 좋지. 좋아. 그리고 처음 튼 노래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요즘 나이가 드셔서 이런 노래가 좋아진다고 너스레를 떤다. 나는 그 너스레가 참 고맙다. 나는 나를 가장 만만하게 보는 네가 참 좋다. 


그러다 갑자기 이 노래 들어보라고 장르를 확 바꾼다. 야! 비! 당장 그쳐 뚝!  야! 비! 당장 그쳐 뚝!  야! 비! 당장 그쳐 뚝!  야! 비! 당장 그쳐 뚝!  야! 비! 당장 그쳐 뚝!  야! 비! 당장 그쳐 뚝!  야! 비! 당장 그쳐 뚝!  야! 비! 당장 그쳐 뚝!  야! 비! 당장 그쳐 뚝!  스펀지 밥 뚱이가 빠른 비트에 계속 같은 가사를 반복하는 거였다. 


1991년 3월 어느 주말. 3월이지만 봄이지만 여전히 쌀쌀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갓 스무 살이 되었다고 바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깨달음이 속을 더 힘들게 했다. 처음 먹는 소주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먹었던 것처럼 스무 살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그렇게 새벽까지 부어라 마셔라 했기 때문에.


아침인지 한낮인지 기억이 가물하다. 넓디넓은 방에 여기저기 어제의 모습 그대로 널브러져 있는 친구들, 선배들은 죽은 것 같았다. 다 약을 먹고. 하기야 약은 약이다. 한두 달 만에 성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속이 죽을 약을 먹은 듯 놀라지 않을 수는 없을 거였다.


그때 한 선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잔뜩 화가 나 있는 복학생이었다. 신입생 입장에서 군대를 이미 제대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건 참 멀게만 느껴졌다. 내가 해야 할 숙제를 다 해 치운 홀가분함이 부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군필 여부로 '남자'가 갈려지는 문화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는 공부만 하면 되는, 그런 홀가분함이 더 부러웠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엉?. 쓰린 속을 부여잡고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네? 무슨 일이 있나요?. 심각한 표정으로 커다란 창밖을 내다보기만 했다. 사실 전날 연합엠티를 출발할 때부터 표정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선배였다. 아,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 후배였지 싶다.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몇 번을 다시 물어봤다. 아주 공손하게, 다소곳이. 그런데도 그 선배는 계속 화가 나 있었다. 아뿔싸. 내가 처음 먹는 소주에 그만 크나큰 실수를 대박 했나 보구나 싶었다. 그럴 때는 얼른 빨리 상황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갈아타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있었다.


형, 죄송합니다. 뭐, 제가 어제 실수한 게 있나요? 그래. 인마. 너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신입생이잖니? 어떻게, 어떻게 선배, 그것도 대선배 허락도 받지 않고..... 하면서 말 꼬리를 흐렸다. 이런. 역시 부모님 말씀이 맞았어. 한번 실수는 두 번 실수를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런 사람으로 보게 된다고. 항상, 말조심하라고. 


대학생이 되어 꽃도 펴보지 못하고 이렇게 주리를 당하는구나 싶었다. 아, 죄송합니다. 솔직히 어떤 실수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불편하셨다면, 제가 사과드립니다. 아, 죄송합니다. 나의 심각한 사과와 표정과 달리 그제야 그 선배의 입이 살짝살짝 씰룩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가 더 조심해야 할 때. 풀렸다 싶을 때 같이 희죽거리면 공든 탑이 무너진다. 


야, 응? 지금 몇 월이야? 응. 네? 삼, 삼월입니다. 그렇지? 삼월이지? 그런데 왜 내 허락도 없이, 응 허락도 없이... 밖을 봐. 밖을 보라고. 3월인데 눈이 오냐고. 눈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면서 그 선배 혼자 터졌다. 배를 움켜쥐고 재미나 죽겠다면서. 그제야 같이 긴장하고 있는 옆에 친구들도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된장. 속도 쓰리고 여기가 어딘지, 뭐 하는 덴지도 잘 모르겠는데, 이런 씨부럴 장난을?. 그런데 나의 다음 동작을 나도 몰랐다. 머릿속에서 계획을 하지도 예행연습을 잠깐 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쏟아져 나왔다. 내가 그 선배, 복학생 형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헤드락 자세를 취했던 거다. 아니, 자세만 취한 게 아니라 실제 했다. 


그 선배는 분명 엄청 당황해했다. 하는 나도 순간 당황했으니까. 그러다 몇십 초 만에 슬쩍 어깨동무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전혀 티 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그 선배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는 건 내 생각일 거다. 그 선배는 내 여자 동기랑 일찍 결혼을 했다. 아내는 그 넓디넓은 방 한 켠에 있었다.  


야! 비! 당장 그쳐 뚝!. 머리를 흔들면서 따라 하는 따님과 함께 나는 대성리를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이 몇 분 만에 왔다 갔다. 그런데 그 장면이, 세월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나의 스무 살을 만나게 된 건 다 비 덕분이다. 따님 덕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내 곁의 모든 건 고맙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비도 따님도 32년 전 삼월의 싸락눈을 함께 본 아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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