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Jun 09. 2023

오늘이 나의 백일이다

사랑합니다, 어머님!! 사진:saysamyang.com

나의 백일은 전혀 기억이 없다. 당연하다.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데 왜 백일이었을까. 열흘도 있고, 구십일도 있고, 또 구십구일도 있을 텐데. 한자 문화 속에서 그 뜻을 보면 백은 꼭 100이 아니라 '많다'는 의미다. 옛사람들에게 100은 많은 거였다. 그걸 기다리는 건 쉽지 않았던 거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100일 만들어 내는 건 쉽지만은 않다. 


나는 형이 있었다, 고 들었다. 나와 연년생인. 그런데 태어나서 백일이 되기 전에 열병으로 죽었단다. 나는 뵙지 못한 할머니가 아랫목에 눕혀 놓고 기도만 드리다 그리 되었다고, 엄마는 기억하신다. 그런데 형이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찾아온 거고. 그래서 내가 장남이 되었다. 그 덕분에 돼지로 태어나 쥐로 살고 있다. 그 옛날에는 그 산골에서는 흔한 일상이었단다. 그래서 난 운명을 믿는다.  


갓난 아가 스스로도 백일동안 참 많은 것을 해낸다.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고 세상밖으로 나왔다. 낯설고 바람 설고 공기설은 너무 눈부신 밝은 환경에 내던져지다시피 했다. 손발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인 채. 그런 환경에서 갓난아기는 무엇을 한 걸까. 가장 큰 일을 스스로 해냈다.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숨을 쉰 거다. 10개월여 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을 60초 남짓한 시간에 해낸 거다. 우리 모두는.  


쿵쾅쿵쾅 심장 박동소리가 들린다. 주변에 모여 있는 이들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런데 하물며 아가 스스로는 얼마나 대견했을까. 그래서 온 힘을 다해 울어 재끼는 거다. 스스로 감동을 받아서.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그렇게 지내가 보니 어느 정도 낯선 환경에도 적응이 된다. 그렇게 15주 가까이 먹고 자고 싸고 놀고.   


그 사이에 팔다리는 소리 없이 길어지고, 여러 장기들은 두꺼워지고 커지고. 혼신의 힘을 다해 먹고 자고 싸고 놀고먹고 자고 싸고 놀고. 그렇게 아가의 백일속에는 무한 반복이 숨어 있다. 쉬지 않고 익힌 연습의 결과인 거다. 비슷한 시간에 잘 먹고 잘 자고 비슷한 상황에서 잘 싸고 잘 놀고. 기적이다. 그렇게 모든 백일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하지만 백일의 기적은 그냥 오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백일은 좋은 습관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즉석밥이 가장 맛있어지는 시간 90초, 라면이 가장 맛있어지는 시간 60초, 일팔 청춘 따님이 최애 하는 711 편의점 미니약과를 가장 맛있게 먹는 시간 전자레인지에서 8초, 사무실에서 가장 맛있게 원두를 갈아내는 시간 7초, 모두에게 잊혀진 작년의 벚꽃이 그 자리에서 또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는 데 걸리는 시간 1년, 아이들 앞에서 신규선생님 티를 벗겨내는 데 최소 5년, 자기 일에 전문가가 되는 시간 1만 시간.


이 시간들의 공통점 역시 당연 반복이다. 반복된 연습의 결과 그 시간이 '가장' 적당한 시간이라는 결과값으로 산출된 거다. 그런데 그 반복된 연습이 인생에서 가장 어렵다. 마음먹어도 3일을 넘기기 어렵다. 매주 무슨 요일은 운동 꼭 하기, 하루 한번 00하기, 일주일에 *번은 00하기.... 끝도 없이 필요한 반복된 연습.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작은 성공하고 다른 거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하고 또다시 실패하고. 스스로 자택하고 자신을 몰아가고 자기를 토닥이고의 반복 또 반복이다. 


먹고살기 위해 움직여야 하듯 자꾸 하면 습관 된다. 몸이 기억하게 만드는 습관. 또 월요일. 금방 수요일. 어느새 토요일. 일상은 이렇게 반복된다. 그 속에서 의미 있게 반복되는 연속 동작이 있으면, 그런 연습이 있으면 좀 더 의미 있는 인생이 된다.  그 연습으로 흥미가 생기고 재미가 붙으면 더욱 화려한 인생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좋은 연속 동작은 자꾸 하면 이기는 습관이 된다.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나 매일 이렇게 쓰는 연습. 2023년 6월 9일. 오늘이 나의, 내 인생 또 하나의 백일 날이다. 어머님은 그제 폐암 판정을 받으셨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재입원을 하신다. 폐암을 이겨내기 위한 첫날의 시작이다. 나와 어머님의 또 다른 백일을 응원한다. 그 백일동안 가만히 바라봐주고 서로 안아주고 서로 만져주면서 함께 울고 웃는 또 다른 좋은 습관, 백일이 백번, 천 번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어머님, 우리 같이 끝까지 갈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같이 이기는 습관 다시 한번 만들어봐요!!  




작가의 이전글 뜨거운 장마가 시작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