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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11. 2021

우리 애들 좀 구해주세요, 제발!

"아빠는 나중에 뭘 하고 싶으세요?"


어느 일요일 저녁, 딸이 책 대화 도중에 되려 나에게 한 질문이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못한 건 당연하고,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딸의 질문이 맴돈다.


'나는 뭘 잘할 수 있지?'


그런데 우연하게도 같은 질문을 나는 몇 주 전부터 학교에서, 수업에서 하루 종일 마스크 쓰고 눈만 말똥말똥한 고2 학생들에게 해 오고 있다.


"자기가 나중에 뭘 하고 싶은지,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특정 국가를 정해서 관련 내용을 탐색해 볼 수 있는 주제를 제출해 주세요"라고.


조금 전에도 두 개 교실에서 강조, 또 강조했다. 이 질문은 그저 세계지리 수행평가를 위한 주제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고2 학생들이 자기의 진로에 맞는 세계적인 사례를 찾고, 그 내용을 탐구해 본 후 그 내용을 지리적으로 해석해서 해당 국가의 지도에 키워드와 이미지로 그려내는 수행평가이다. 그 결과는 당연히 점수화한 후 내용에 대해 학생들의 학교생활 기록부에 고스란히 적힌다.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물론 고등학교가 마지막 학력일 아이들에게도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을 진로탐색 활동이다.


솔직히 내가 질문을 하고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나는 매년 2학기에 비슷한 수행평가를 진행한다. 해마다 비슷한 질문을 한다. 하지만 제출하는 과정도 마무리하는 절차도 쉽지만은 않다. 먼저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 좋아하는지, 그것이 어려우면 어떤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정도는 생각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그 관심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표현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그 문장을 지리적으로 수정해야 하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고2 학생들의 반응은 빠르다. 놀랍게도. 물론 대부분 섬세한 수정이 필요하지만, 일단은 90퍼센트가 넘는 학생들이 제출을 한다. 점수화하는 수행평가니까 그렇다, 는 생각이 들면서도 참 대견하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신경을 써서 첨삭을 해주려고 애쓴다.


아마, 이 글을 보는 이들 대부분이 같은 느낌을 갖지 않을까?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그리고 뭘 먹고살지를 깊게 고민하고 탐색해보는 시간이 참 없다. 오랫동안 교직에서 지켜본 결론은 학생들이 자기 삶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큰 고민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게 발현되지 못한다. 주요 과목이란 이름하에 쓰고, 외우고, 시험 보는, 일방적인 사이클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 흐름 속에서 제출 시간에 쫓겨, 형식에 맞게 채워야 해서 제출한 것들, 그것들이 그 순간에 자기가 설정한, 잘하는 거고, 좋아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열일곱, 열여덟의 나이에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뭘 먹고살지를 기록해야 하는 게 가능한 걸까?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해가 거듭될수록, 자식을 키우면서 가지게 되는 질문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분명한 결론을 알고 있다. 학생들이 자신과 타인의 삶을 탐색하고, 동료와 함께 다양한 삶을 경험하는 시간이 학교, 교육과정, 수업에 녹아들어야 한다고.


이 당, 저 당 대통령 예비 후보들의 공약 어디에도 그 흐름에 대한 언급조차 찾아볼 수 없다. 출근해서 학생들을 볼 때마다, 퇴근해서 내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정말 안타깝다. 21세기, 4차 산업, MZ 세대 운운하기 전에 그 흐름을 수정해야 한다. 그것도 당장.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보다 급하다. 우리 어릴 적 흐름에 비해 지금 학생들에게 몰아치는 흐름은 속도는 물론 다양성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컸고, 지금 그럭저럭 살고 있다고, 학생 때는 다 그런 거라고 치부하고, 외면해서는 안된다. 더 이상.


인생은 검색만 하면 나오는 정답들을 모아 놓은 교과서가 아니라는 건 우리가 이미 수없이 경험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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