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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22. 2023

다학제의 메시지

[유병장수 합시다]1

아, 그래요? 막내 같아 보이는 아들은 엄마 손을 꼭 잡고 흐느꼈다. 바로 내 옆자리였다. 엄마는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아들은 서서. 형제 같아 보이는 둘은 온 팔뚝에 섬뜩한 뱀 문신이 반팔 사이로 기어 나온 날카로운 눈매에서 연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서 있던 아드님에게 내 자리를 양보하고 다학제 밖으로 나왔다. 다 다음이 우리 어머님 차례였다.   



어제는 어머님을 모시고 그간 한 달여간 진행된 이런저런 검사의 최종 결과를 들으려 가는 날이었다. 나에게 날아든 안내 문자에는 '본관 다학제 1층으로' 내원하라는 내용이었다. 그곳을 찾아가 대기자 명단에서 어머님 성함을 확인할 때까지도 그냥 건물이름 정도로만 생각했다. 다학제. 


우리 순서가 되어서 들어갔다. 삼각형 모양으로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다. 우리 셋이 앉은 정면에는 얇은 대형 벽걸이 TV가 네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극장 같았다. 우리 왼쪽에 셋. 오른쪽에 셋. 의사가 모두 6명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절반 정도 가릴 만큼 테이블 위에는 모니터가 세 개씩 주르륵 이어져 있었다. 병원이란 곳에 와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마치 의사 관련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본 듯한 세트장 같았다. 


오른쪽 가운데에 앉은 분이 어머님 주치의였다. 몇 번을 뵈면서 우리는 저 멀리도 그 의사분을 알아볼 수가 있게 되었다. 호흡기 센터에서 가장 경력과 나이가 많은 분이었다. 새하얀 백발인 어머님의 절반 정도만큼 편안하게 센 머리가 좋은 이상을 더 편안하게 만들었다. 천천히 먼저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의사분들한테 발언권을 순서대로 넘겼다. 영상의학과 교수, 흉부외과 교수, 다시 주치의 순서대로 대형 화면에 어머님 검사 자료를 띄워서 설명을 했다.


결론은 폐암 1기에서 2기로 넘어가는 단계란다. 그래서 최종 진단은 수술이었다. 1기는 수술. 2기는 수술과 항암치료. 3기는 해볼 수 있는 것 다. 4기는 표적 치료 후 항암 치료가 공식이라는 설명을 추가로 해주었다. 담담하게 설명들 듣던 어머님의 꼿꼿한 허리가 새하얀 백발에 눌러 꼬부라지고 있었다. 나는 어머님의 등에 내 손바닥을 최대한 펴서 가져다 되었다.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빨랐다. 


그 공간을 나왔다. 다시 대기. 그동안 그 자그마한 다학제 공간에는 우리 포함 총 다섯 가족이 그렇게 밀고 밀리고 하는 순서대로 진단을 받고 처방을 받고 있었다. 귀를 막지 않는 이상 서로의 상태나 이야기를 안 들으려야 들을 수 없는 구조였다. 가운데 코디네이터와 간호사가 앉은자리를 기준으로 양쪽 벽 쪽으로 쪼르륵 두 개, 세 개, 세 개의 의자들이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다섯 가족은 모두 부모님들이 최종적으로 암진단을 받는 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서로의 눈빛으로 안부를 걱정을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 셋이 나란히 앉아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오 남매들은 가운데 엄마와 의사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둘러 서서 듣고 있었다. 항암제 처방 전문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분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조용조용 설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공간 안에 모여 앉아, 서 있던 이들이 다 각자의 사정에 빠져 슬픔에 잠겨 있는 표정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 소리가 안 들릴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고요했다. 밖을 나와 어머님의 등에 내 손바닥을 대고 있으면서도 내 심장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4기초이지만 수술이 불가능하세요. 그래서 항암 치료 전에 표적 치료제를 써야 합니다. 그 약을 오늘 처방해 드릴 텐데, 하루에 한 알 싹만 드시면 돼요. 하지만 장애가 하나 있어요. 지금 3세대까지 약이 나와 있는데, 1,2세대에 비해 3세대는 부작용이 적어요. 많이요. 그리고 약 효과는 당연히 가장 우수하고요. 하지만 보험 적용이 되질 않아요. 저희가 계속 요구는 하고 있지만, 아직 환자분에게 적용할 수는 없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지금, 오늘부터 약을 드셔야 하는데, 몇 세대로 처방을 해드려야 할지 결정을 여기서, 지금, 해주셔야 하는데.... 이 약값이 조금 비싸요. 하루 한 알 드시는데... 그 한 알이 약 27만원이에요. 한 달에 약 8백만 원 정도....



내내 그들을 보지 않는 척 허공에 창밖에 시선을 가져다 두던 아내와 나는 그 순간 눈빛이 서로 닿았다. 어머님은 뚫어져라 맞은편에 등지에 앉아 의사를 바라보는 아기같이 자그마한 오 형제의 엄마 등만 멀컹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그러는 동안 다시 어머님의 이름이 불렸다. 다시 아까 나왔던 그 방으로 들어갔다. 여섯 명의 의사 중 한 분과 맞은편에 간호사 한분만 남아 있었다. 어머님 바로 옆에서 설명을 해 주던 흉부외과 의사였다. 아주 젊은 여의사였다. 


하얀 가운 사이로 살짝살짝 드러나는 발목, 손목이 가녀린 게 앳되어 보였다. 그런데 설명하는 내내 어머님과 우리를 걱정하고 안심시키려는 말투가 훅훅 와닿았다. 생각처럼 연배가 어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은 어른들의 말투였다. 재래시장에서 아주 편안하게 오랫동안 손님들을 상대한 여유 많은 이 같았다. 중간중간에 못 알아듣는 한자어, 전문 용어도 하나하나 풀어서 어머님과 아내 나를 번갈아 아이컨텍 하면서 이야기해 주려고 하는 모습이 많이 느껴졌다. 


그분이 어머님 수술을 할 집도의였다. 아까 큰 TV 화면으로 봤던 그 영상을 다시 한번 모니터로 우리셋에게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최종 진단이 내려진 이유, 수술 방법, 입원 기간과 예상되는 처치 방안, 퇴원 예정일, 퇴원 후 일상생활 방안 등에 대해. 꽉 찬 수술 일정을 피해 그렇게 2주 뒤로 수술 날짜를 잡고 다시 그 방을 나왔다. 그 가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학제를 나와 넓은 1층 홀을 지나 화장실로 향했다. 여전히 병원이었지만 사람 많은 그 홀을 조금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화장실을 나와 다시 다학제로 가는 동안 몇 번을 엄마손을 잡고 흐느끼던 막내 같았던 그 아드님을 마주쳤다. 그분도 나에게 몇 번이나 눈길을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살짝 목례를 했다. 그도 그랬다. 다시 다학제로 들어왔다. 또 대기. 다음 순서는 담당 간호사, 코디네이터로 부터 다시 한번 구체적인 일정, 준비해야 할 것들 그리고 진행 상황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순서였다. 


다학제는 multidisciplinary Treatment를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협진시스템이었다. 암환자들을 위해 여러 과가 협력해서 수술하고 치료하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결국 암진단을 받아야만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었던 거다. 초기부터 말기까지가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본능적으로 하향 비교와 상향 비교가 마구 교차되는 삶과 죽음의 분기점이었다. 그 분기점마다에서 돈이 거대한 권력이 자식과 자신의 능력치가 되는 순간을 목격해야만 하는 냉엄한 공간이었다. 



환자분은 어휴, 좋아요. 연세에 비해 폐기능도 좋으시고, 뚜렷한 기저 질환도 없으시고, 괜찮아요. 수술 잘 될 것 같아요. 다만, 수술할 때 떼어낼 스무 개가 조금 넘는 임파선 조직검사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만 않으면 완벽한 1기예요. 그래서 지금은 1기로 추정된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잘 될 거예요. 



어제 그곳에서 팔순의 어머님은 가장 가벼운 병증을 가진 부모였다. 5월 19일. 학교 아이들이 졸업 사진을 찍으려고 모여든 봄 가득한 좋은 날 아침에서 한 달이 조금 넘게 지났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물론이지만 당신 스스로가 눈물짓고, 다시 토닥이고 또 가라앉고를 반복하셨다. 하지만 언제나 전화 목소리에서는 나를, 우리를 먼저 걱정하셨다. 돈을 걱정하셨다. 한나절을 다학제, 그 공간에 있으면서 보이는 것들은 어머님의 평소 습관, 그것뿐이었다. 건강검진을 한 번도 빠트리지 않았고, 인공 무릎 수술에도 불구하고 매일 한두 시간을 걸었고, 자신의 신에게 늘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자식들에게 아프지 않은 게 가장 큰 부조라는 믿음으로 사셨고, 전화 통화 끝에는 항상 전화 줘서 고마워라는 격려를 이조이 않으셨고, 농담으로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모습들이.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내가 안도하는 건 어찌보면 인간의 못된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찾아올 나의 불행을 매순간 예감하는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타인의 불행이 내 안식의 단 한가지 원천이 된다면 그 불행을 누그러뜨리는 행위는 곧 나의 행을 해치는 행위가 될지도 모른다. 어제 그 공간에서 있었던 모든 가족의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 힘들었지 싶다. 그건 어떤 경우에도 절대적인 비교가 불가하다. 다 사는데 사정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니까. 우리와 네 식구들의 평안을 그저 바랄뿐이다. 


반나절 내내 다학제에 머물면서 나와 아내가 얻은 메시지는 명확했다. 우리도 부모님도 살아온 시간보다 이제 남은 시간을 서로 함께 온 가족이 하루하루를 조금 더 밀도 높게 채워가야 할 일만 남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시간 반을 달려 집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그래도 우리 둘은 타닥이를 데리고 걸으려 나왔다. 평소 같으면 그대로 쓰러져 누웠을 나와 아내다. 타닥이가 좇아가는데도 저만치 앞서가는 아내의 발걸음에서는 눈물 많은 성격을 밀어내려는 힘이 느껴졌다. 그 걸음걸이에서 나는 이제부터는 진짜 유병장수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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