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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11. 2021

달리기로 행복한 이유

2018년 8월 16일

  내 10대 때, 챙겨보지 않아도 자주 보이던 tv 애니메이션 중 하나가 '달려라 하니'다. 개인적으로 '호랑이 선생님'보다는 많이 기억나지 않지만, 딱 하나 나를 참 많이 닮았던 기억은 또렷하다. 나는 어릴 적 달리는 걸 참 좋아했다. 운동회 때 계주는 당연하고, 동네에서 뭘 해도 달리면서 놀았다. 나이 먹기를 해도 내내 달리고, 두부 한모 심부름을 가도 달려갔다 오고, 어린 가슴에 잘 모르는 답답함이 있는 것 같을 때도 자주 달렸다. 혼자 하숙을 하던 고등학생 때도 참 많이 달렸다. 체육 시간에 공을 차면서 달리고, 친구들이랑 운동장을 달리고, 학교에서 바닷가까지 달리고. 학교 담을 넘어 농로를 지나 바다로 달리고. 하지만 군대에서 어쩔 수 없이 달리는 것 빼고는 대학생활을 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해서는 달리지 않았던 것 같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달렸다는 사실이 나한테서 스스로 잊혔던 것 같다. 2018년 여름까지.




  50이 코앞인 지금, 달리기가 내 삶에 조용히, 다시 들어서고 있다. 굳이 고민하지 않았는데,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어느 일요일 아침부터 말이다. 그 이후 나는 아주 가끔-이주일이 한두 번 정도-, 컨디션이 아주 좋거나 그 반대일 때 달리기를 한다. 하지만 몇십년만에 다시 찾아 온 달리기는 사실, 달린다는 것보다는 두 다리를 끌어 옮긴다는 표현이 낫다. 그리고 일주일을 주기로  리듬감 있게 달리지 못한다. 화요일은 꼭 달리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저런 일이 생기고,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아름다운 양보를 하는 버릇 탓이다. 그런 이유로 오히려 달리기보다는 사이클링을 즐긴다. 상대적으로 덜 힘들고 더 멀리 갔다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운동을 했다는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데 그쪽이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이클링은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스피드가 있기 때문에 충돌사고의 위험성이 늘 따라다닌다. 그리고 날씨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노면이 미끄러워 위험성이 가중된다. 가장 큰 위험성은 오버페이스다. 마주오는 사이클러보다는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사이클러, 특히 나를 추월하는 사이클러를 만나게 되면 본능적인 승부욕이 올라온다. 그럴 때는 나의 컨디션과 관계없이 만회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근육에 무리가 가도록 스스로 다그치는 경향이 생긴다. 승부에 대한 본능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이클링의 최대 약점은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몇십 킬로 이상의 장거리를 쉬지 않고 달리는 준프로급의 사이클러는 그렇기 않겠지만, 동네에서 운동삼아 하는 나의 경우에는 모자람이 있다. 퇴근 후 평소에 즐기기에는 시간적인 제약도 뒤따른다. 왕복 25km를 갔다 오는데 10분 정도의 휴식시간을 포함해서 보통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달려보려고 하면, 시 경계를 넘어서 가보려고 하면 최소 2시간 이상을 잡아야 한다. 그러기에는 평일 저녁의 시간이 무리가 생긴다.     





  며칠 전부터-정확하게는 그제 금요일부터- 매일 달리기를 하고 있다. 그제는 집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있는 돌계단 아래 지점에서 출발하여 운동기구가 있는 곳을 기점으로 유턴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약 4km 구간. 이 구간을 쉬지 않고 달리는데, 조금 과장에서 심장이 손바닥에도, 발바닥에도 있는지 알았다. 숨이 차올라 입은 자동으로 벌어지고, 호흡은 불규칙하게 거칠었다. 그리고 제자리에 도착하자마자 길옆 벤치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누가 보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사람이라 착각할만하다.       

 어제는 출발하기 전에 각오를 다졌다. 유턴 장소를 한 번도 쉬지 않고 운동기구를 지나서 마트 앞 분수대로 잡았다. ‘달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달리는 내내 나의 호흡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제와 같은 장소에서 출발했다. 운동기구가 있는 그제의 유턴구간을 넘어서자 스스로 대견한 생각에 양발이 가볍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내 마트 앞 분수대가 보였다. 분수대 앞에 개울을 건널 수 있는 돌다리가 있다. 그것이 반환점이다. 반대편 자전거도로로 접어들었다. 밋밋해 보이는 곳도 언덕처럼 느껴지는, 그래서 허벅지와 종아리에 더 힘이 들어갔다. 머릿속으로는 ‘운동기구가 있는  곳까지만 달리자. 그리고 그다음부터 한동안 걸어주자. 운동기구까지만 힘내자’라고 계속 생각을 하면서 달렸다. 그때는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은지 오래된 것 같았다. 드디어-정말 드디어- 운동기구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스스로 위로하고, 약속한 것처럼 멈춰 서서 걷기 시작했다. 일부러 팔자로 걷는 것처럼, 터덜터덜거렸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하고. 출발점을 직선거리로 얼추 1km쯤 남았을 때 다시 달리려고 애썼다. 사실, 달리기라기보다는 빠르게 걷는 수준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달렸다. 걷지는 않았다. 그렇게 집 앞 계단까지 오니 6.62km.    






  기적이 일어난 날은 사흘째인 바로 오늘이다. 한 번도 쉬지 않고 10km를 달렸다. 처음이고, 연속으로 달린 지 사흘만이다. 10km를 달리는 내내 입을 다물고 들숨과 날숨을 코로만 해결했다. 3초를 리드미컬하게 ‘훅훅 후욱~’만 반복했다. 어느 순간, 혹시 내게 달리는 재능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심장의 존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허벅지가 당기는 느낌, 무릎 연골이 아주 부드럽게 흔들리는 느낌만 있었을 뿐, 숨이 차지 않았다. 러닝 뮤직 21곡을 담아 달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곡 ‘Rhapsody in Blue’를 들으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출발점 근처에 도착할 무렵, 고인이 된 못생긴, 유명 개그맨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익살스러운 춤 동작의 배경음악이었던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Suzie Q’이 흐르고 있었다. 15번째 곡이었다. 그제, 어제와 다른 것 또 하나. 음악이 계속 들렸다. 그리고 생각이 사라졌다.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지 라는 생각 자체가 없어졌다. 그냥 나의 숨소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출발점으로 도착하기 10여분 전부터는 훅훅 후욱~‘의 3초 간격의 숨소리가 ’ 훅~ 후욱~‘으로 바뀌었다. 호흡이 길어졌다. 호흡과 팔의 움직임, 다리의 움직임이 기계적으로 질서정연해 졌다.      


  나는 달리면 행복해진다. 잘 달리고, 멀리 달리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기분 좋아진다. 엔도르핀이 솟구친다. 내 안에 있는 어릴 적 그때의 내가 같이 달려주는 것 같다. 참, 그때의 하니도 지금쯤, 중년이 되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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