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적 기준없이 들을때는 독이되는 피드백-
제가 석사과정중 '플랫폼 디자인(기획)'을 해보는 수업을 들으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와 같은 팀이자 팀 리더였던 쥴리안이라고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요, 이 친구의 외향적인 성격과 낙관주의적인 태도를 보고 있으면 '참... 이런애가 창업을 하지 않으면 누가할까...'하는 생각까지들 정도로 의욕이 넘치는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는 서비스를 판매/구매하는 '서비스 플랫폼계의 아마존'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리딩했고, 저 또한 그 친구의 열정적인 태도와 꾸준한 설득에 팀에 조인을 하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좋았습니다. 쥴리안은 제가 고민하고 리서치한 고객의 니즈를 최대한 수용을 하려고 노력을 했고, 항상 제 아이디어를 칭찬해주고 심지어 찬양을 할 정도로 저를 핵심 팀원으로 인정을 해주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기 때문이었죠. 저 또한 UX Designer로서 뭔가 의미있는 기여를 하는것 같다는 생각에 재미있게 참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쥴리안과 저 사이에 점점 갈등의 골이 생겼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쥴리안의 'YES맨'습성 때문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쥴리안은 저의 아이디어에만 Yes를 한게 아니라 교수님의 피드백도 무조건 Yes였고, 주변 지인이나 심지어 지나가다 한마디 던지는 사람의 한마디마저도 큰 고민없이 Yes를 하는 친구였던 것이었습니다. 창업 초기 MVP(Minimum Viable Product)에 집중을 하자고 하는 저의 의견과는 달리 쥴리안은 '우리는 모든것을 소화할 수 있는 슈퍼 플랫폼을 만들 수 있어!'라는 특유의 낙관성으로 저를 포함한 팀원들의 조언을 무시했고, 결국 수업 마지막날 Angel Investor(엔젤 투자자)들 앞에서 서비스 소개 및 발표를 하는 자리에서까지 쥴리안과 논쟁을 벌이는 드라마를 연출하며 프로젝트를 마무리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논쟁을 듣고 엔젤 투자자들은 제대로 고민을 하고있는 서비스인것 같다며 적긴했지만 Seed funding을 유치하기도 했었고, 쥴리안은 자신과 이렇게 '시너지'(??????)를 낸 사람은 없었다며 자기가 기업스폰서를 해줄테니 미국에 남아서 자신과 창업을 같이 해 보자는 제안을 제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날까지도 했었습니다. 이건 뭐... 그런 전쟁터가 시너지라니.. 무슨 변태도 아니고..
그 이후에 회사를 다니면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는 했었습니다만, 제가 그런 비슷한 경험들을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점은 '줏대'없이 피드백을 수용하다가는 서비스가 당연히 망할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줏대'는 고객/유저의 이해에서 오는 UX적 관점을 말하는것입니다. UX 디자이너는 업무를 하면서 항~상~ 일하는 결과물이나 과정에 대해서 피드백을 받게 됩니다. 업무 특성상 다른 직군의 담당자들과 협업을 해야하는 일이 다반사라 그런것도 있겠지만, 고객의 관점을 잃지않기 위해 항상 고객의 피드백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려하는 기본 업무 태도에서 오는것도 확실히 있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항상 이렇게 피드백을 받다보면 문제가 생길때가 있는데요, 피드백을 받다보면 어느샌가부터는 UX디자이너가 지향하는 고객가치가 모호해지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객의 관점을 이해하는게 중요한만큼 그 관점을 '사수'할 수 있는것도 일류 UX Designer가 지녀야하는 스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고객관점을 사수하는일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피드백의 대표적인 유형을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유관부서의 피드백이라고 하는 이 개념을 조금 더 쉬운 말로 풀어보자면 '내부사정'이라고도 부를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기획부서와 사업부서는 어떻게 해서든 KPI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자하는 니즈때문에 처음에는 논의되지않고 고려되지않았던 기능과 컨텐츠를 막판에 갑자기 내놓고, 거기에 그럴싸한 유즈 케이스 '썰'을 풉니다. 개발부서는 위에서 벌써 다 정하고 내려온 데드라인을 맞추기위해 '고도화'라는 명분으로 핵심기능들을 축소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디자이너들은 고객도 좋아하지만 디자이너로서 자신들도 당당할수 있는 수준의 디자인 퀄리티가 나와야 한다는 이유에서 기능은 반쪽인데 디자인은 완벽한 결과물을 고집하기도 하죠. 이런 '내부사정'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고객의 핵심경험은 뒷전이 되기 시작합니다. 고객 핵심경험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 KPI는 매우 틀린 KPI이며, 고객 핵심경험을 제공하는 기능은 일정을 양보하더라도 절대 개발적으로 타협해서는 안되고, 정말 제대로 된 경험이 갖춰진 서비스는 디자인이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먼저 찾습니다.
'내부사정'이라는 서비스 담당자로서 내부적 갈등이 있다면 외부적이지만 내부적이기도 하고, 또 많은 면에서 가장 강력하다못해 절대적이기까지한 상사의 피드백이 있습니다. 특히 대기업의 임원들은 대부분 '계약직'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안에 성과를 내야만하고 그래서 본인의 사랑과 관심이 담긴 '피드백'으로 성공사례를 만들어보고자하는 마음에 피드백을 아낌없이 주곤 합니다. 하지만 담당자들은 상사의 피드백은 피드백이 아니라 그냥 '답정너'인 필수요건이죠. 서비스를 좀 더 높은 퀄리티로 올렸으면 하는 기대에서, 좋은 취지로 그런건 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큰 목소리를 가진분이 던지는 가벼운 아이디어는 단순히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직원들에게는 차라리 UX의 관점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얼마나 고객/유저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고있는지를 검사하고, 또 올바른 UX를 도출할 수 있도록 컨셉같은 결과에 대한 아이디어 보다는 과정에 대한 조언을 주는게 서로에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쉽게 얻게되는 주변 지인의 피드백입니다. 지인중에 오지랖이 조금 넓은 사람들은 UX디자이너에게 기회가 될때마다 피드백을 주곤 합니다. 물론 피드백을 주는 그 지인이 내가 담당한 서비스의 충성고객/사용자라면 매우 집중해서 들어야하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사람들의 피드백은 오히려 UX디자이너가 고수해야하는 고객이 원하는 경험을 흐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만약 지인이 자신을 붙잡고 디자인적 서비스적 피드백을 마구 주기시작한다면, 그 사람이 우선 우리 서비스를 정말 잘 쓰고 있는 충성고객인지부터 파악을 하고 피드백을 수렴하기 시작해야합니다. '디자인 잘하는 내 친구가 그러는데 이 컬러 별로래', ' 글로벌 서비스 기획하는 내 친구가 그러는데 이 기능 별로래'등등의 피드백은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는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UX디자이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서비스의 방향성을 고집하고 지켜낼 수 있어야합니다. 물론, 그 서비스의 방향성이 고객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도출된 것이라는 전제에서 말이죠. 피드백에 민감하며 항상 피드백을 얻으려 노력하는것은 UX디자이너라면 필수적으로 고집해야할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모든 피드백이 좋은 피드백은 아니라는 점은 꼭 알고 피드백을 받으러 다니시길 바래봅니다. 저도 그럼 이제 대표님과 이사님이 이리저리 던져준 피드백을 반박하는 이메일을 쓰러...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