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를 공감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한 거예요-
Summary.
사용자를 공감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든 시도들이 UX 방법론이 될 수 있습니다. 방법론에 집착하지 말고 한 번 더 사용자를 생각해보려고 노력해보세요
들어가는 이야기.
제가 일하던 전 직장에서는 신입사원 교육과정 중 조별로 서비스 기획을 하여 발표를 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기업에서 신입사원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서비스 제안을 받는 프로젝트들은 많이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제가 전 직장의 그 신입사원 교육과정을 높게 평가했던 이유는 바로 그 프로젝트를 Human Centered Design 프로세스를 거치는 방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Design Thinking/Human Centered Design 방식들에 대해서 경험이 동기들보다는 훨씬 많았던 저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프로젝트를 열심히 진행했었고, 그렇게 눈 깜빡할 사이 중간 평가의 날이 왔습니다. 그 날, 우리팀이 유저 리서치를 통해 수집한 이야기들을 포스트잇에 정리하고 grouping을 한걸(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이라고도 합니다) 한참 보고 있던 UX 리서처인 프로그램 진행자분은 저와 저희 팀원들에게 이런 피드백을 줬습니다.
여기(그룹)에만 말고 다른 그룹에도 포스트잇 개수를 좀 채우면 좋겠네요.
그때는 사실 그런 피드백을 듣고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모릅니다. 유저가 한 이야기들에 대한 피드백도, 그룹핑을 한 방식에 대한 피드백도 아닌 그룹별 포스트잇의 개수라니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유저를 이해하려고 접근한 내용보다는 방식에 집착하는 사람이 제 생각보다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페이스북을 보면 온통 UX강연입니다. UX 방법론을 가르쳐주는 전문 기관까지 생기기 시작하고 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전문가가 알려주는 정석 UX 방법론이라며 서로 홍보 경쟁을 합니다. 그런 소식들을 볼 때면 우리나라도 이제 UX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좀 더 제대로 된 UX를 하고 싶다는 수요가 많아지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UX 방법론들을 가르쳐주시는 분들은 학생들에게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얼마나 해주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배우고 있는 UX 방법론들은 실무에서 거의 사용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에 대해서요.
기업에서 'UX'업무를 담당하는 직군 및 부서는 대부분 '디자인'부서입니다. 제가 있었던 전 회사에서도 'UX실'이라고 하는 부서는 결국 UI 디자인을 하는 부서였고요, 대부분은 기획부서에서 정책서가 전달되면 그때부터 디자인 업무를 시작하는 방식으로 일을 했었습니다. UX 프로세스를 제대로 경험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UX 프로세스가 잘 적용될 수 있는 업무범위는 사실 '디자인'영역보다는 오히려 '기획'영역에 가깝습니다. 사용자를 리서치하면서 인사이트를 뽑고, 그에 기반한 방향성을 설정하고 거기에서부터 디자인을 하고 검증하는 것이 UX 프로세스라 볼 수 있는데, 실제로 회사에서는 기획/사업부서에서 전달받는 정책서를 기반으로 업무가 시작되기 때문에 UX 프로세스를 적용 하는 것이 개념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서비스 개발단계에서 강제적으로나마 UX적인 인사이트와 디자인 방향성을 주입하려 서비스 인사이트 및 서비스 방향성 도출을 내부 담당자들이 아닌 외부 UX 에이전시에 의뢰해버리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죠. 외부에서 외부인들이 도출한 사용자에 대한 인사이트들을 강제로 서비스에 주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업들은 사용자에 대한 어설프고 부족한 공감대와 이해도를 바탕으로 이도 저도 아닌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말죠. 물론, 그 과정 속에 우리가 알고 있는 UX 방법론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기업만 UX방법론들을 활용하지 않는 것일까요? 기업들에게 의뢰를 받아 UX 작업을 진행하는 에이전시들도 UX 방법론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것은 피차일반입니다. 이유가 다를 뿐이지요. 막말로, 디자인 컨설팅 업체들이 UX 방법론을 월드클래스 수준으로 적용해서 인사이트들을 뽑아낸다고 해도 UX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고객사)들은 '결론'에만 집착합니다. 그리고 고객사가 WOW 할만한 결과물이 아니거나 그들 서비스의 현실적인 제약조건들이 모두 반영되지 않은 결과물은 UX적 가치 혹은 가능성의 여부를 막론하고 그저 무시되고 말죠. 그래서 디자인 에이전시(컨설팅)들도 점차 UX 방법론보다는 고객사가 원하는 결과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주문제작'해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그렇게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UX 방법론을 안 쓰는 게 문제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UX 방법론을 그대로 안 써도 괜찮습니다. 아니, 어쩌면 UX 방법론을 학교/강연/학원을 통해 배운 방식대로 그대로 적용을 하는 것은 맞지 않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Design Thinking 및 Human Centered Design의 방법론들은 미국 안에서의 수평적이고 유기적인 기업문화에서 주체성이 높은 미국인들이 구상하고 적용하는 방식들입니다. 그래서 미국과는 일하는 방식도 환경도 다른 한국에서, 미국의 UX 방법론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들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을 수 있다고 개인적으론 생각합니다. 저도 몇 달 전 8주에 거쳐 UX Workshop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제가 현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UX 방법론을 가르쳐주고 그 방법론들을 적용해서 case study도 진행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저는 workshop에 참석하셨던 팀원분들 중 저와 함께 연습한 그 UX 방법론을 실무에 그대로 적용하는 분이 단 한분도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괜찮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애초에 제가 알려드린 Indepth Interview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Persona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잘 정리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들을 통해 내가 얼마나 더 사용자를 공감하고 이해하는가에 있었으니까요.
항상 '어떻게 하면 사용자를 조금 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을 하시면서 무슨 노력이라도 하신다면, 저는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UX를 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건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벌써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고요. 예를 들어볼까요? 만약 요즘 이슈가 많은 '삼성 노트 7'에 대한 해외 사용자들의 생각들을 이해해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에서 특정 주제들을 기반으로 사람들이 다양하게 본인들의 의견들을 남기는 트위터나 reddit 같은 서비스를 활용해서 사람들이 어떤 대화들을 나누고 있는지, 그 안에서 특이한 점들은 없는지 확인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 자료가 부족하다면 그냥 그 커뮤니티에 질문을 직접 할 수도 있겠네요. (이걸 UX 방법론으로는 Netnography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병원에서 환자가 입원을 해서 어떤 경험들을 하는지 이해를 하고 싶은데,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수집해서 이런저런 기회 영역이나 painpoint가 있다는 건 이해가 가는데... 애초에 환자의 입장에서의 공감대는 부족하다 보니 어떤 디자인 방향성이 더 매력적인지 모르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해보다 공감대가 더 필요한 경우에는, 내가 직접 환자가 되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발에 깁스를 하고 며칠 병원을 다녀 보시다 보면 아까 전에 논리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나왔던 디자인 방향성들 중에서도 어떤 것이 사용자의 경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지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UX 방법론으로는 그런 방식을 Ethnography라고 해요.)
이렇게 개별 방법론의 교과서적 정의나 정확한 진행방법들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간단하게 내가 어떻게 하면 사용자를 좀 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만 고민하고, 내 사정에 맞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노력들을 해본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B2C)서비스를 운영하시는 분들이라면, 가끔씩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 아닌 순수한 사용자의 입장으로 서비스를 써보는 기회들을 만들어 보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사이트들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직접 사용자가 되는 게 좀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냥 사용자들을 가끔씩 직접 만나서 그냥 그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들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방법론에 집착을 하다 제가 만났던 그 리서처분처럼 포스트잇의 개수에 연연하는 담당자가 되지 마세요. 그렇게 겉모습과 방법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제일 실력이 없습니다. 무슨 노력을 하시든, 사용자와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하려는 목적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정말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