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ULL Jul 08. 2020

소세지 더 맛있게 먹는 방법


나는 고기를 엄청 좋아하지만 소세지나 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내기준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은 남이 주면 먹지만 내돈 주고 안 사먹는 정도를 말한다.) 가공육을 우습게 보는 내 성향은 엄마의 철저한 세뇌교육 으로 이륙한 것인데. 우리 엄마는 통조림 안에 방부제를 먹으면 큰일난다며 절대 못먹게 하셨고 소세지 안에는 고기가 아니라 알 수 없는 것이 들어있다고 하셨다. 그녀의 세뇌교육 덕분에 내 또래 아이들이 문어다리를 가진 비엔나 소세지를 케찹에 찍어 먹을 때 나는 당근과 양파가 들어간 계란말이를 찍어 먹곤 했다.


대학교를 갔을 땐 정말 놀라웠다. 나의 동기들이 3분카레를 먹고 캔 참치를 먹고 스팸을 먹고 심지어 통조림에서 꽁치를 꺼낼땐 너무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것은 큰 학문을 배우는 곳이 아닌가. 우리집에서 아무도 절대로 먹지 않는 명절 햄 선물 세트를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가공육의 세계에 빠질 뻔했으나 세뇌 교육으로 다져진 내 입맛은 큰 학문을 배우기엔 그릇이 너무 작았다.


며칠 전 집근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 시식코너에서 소세지를 시식했다. 여사님의 강력한 권유를 못 이기는 척 하기도 전에 이미 소세지가 내 카트에 담겼다. 사실 초록색 녹말 이쑤시개로 한조각 찍어먹었을 때 너무 맛있었다. 애초에 나는 못이기는 척 할 생각이 없었다.


습관은 정말 무섭다. 소세지가 두달째 냉장고에 성에처럼 껴있었다. 청소차원에서 소세지를 구웠지만 마트에서 시식한 것 만큼 맛이 없었다. 여사님이 사은품으로 하나 더 붙여 주신다고 할 때 여사님의 손길을 붙여달라고 했어야 했나...고민 끝에 여사님을 떠올리며 식빵 자르는 칼로 조각을 내어 먹으며 '이것은 소세지가 아니다. 이것은 시식이다.' 라고 생각을 했다. 거짓말 처럼 맛있게 느껴졌다.


불현듯 과거의 비슷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며칠(그래봤자 이틀정도..;) 입맛이 없길래 '이 참에 다이어트를 해볼까?'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분명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도 않았는데 입맛이 돋았던 기억, 티비 그만보고 들어가서 공부할려고 했는데 엄마가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하자마자 갑자기 <여섯시 내고향>이 재밌었던 기억, 지하철 건너편 열차가 움직는데 내가 탄 열차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기억.


아무것도 하기 싫은 요즘 나는 <올드보이> 속 오대수를 떠오른다. 그럼 약간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동네에서 노닥거린 날엔 <콜미 바이 더 네임>의 엘리오를 떠올린다. 그럼 백수가 아니라 풋풋하고 아름다운 한량같이 느껴진다. 오늘 같이 인간적으로 글하나는 써야겠다 싶은 날엔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속 샐린저를 떠올린다. 고통 끝에 내가 쓴 이글은 유명해 질것이고 나는 곧 유명세를 치러야한다 으윽 ..


뭐 이 정도의 상상력으로 근근히 살아간다. 사는게 재미없고 지루할 때 약간의 상상력을 끌어모으면 덜 재미없고 덜 지루하려나.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말했던가. 삶의 비극도 희극도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에 따라 삶을 어느정도 거리에서 볼 건지는 결정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요즘 F열 11쯤일까 (아, 이 문장 너무 싸이월드스럽다..) 너무 재미없으면 앞자리로 몰래 옮겨야지

작가의 이전글 내 이름은 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