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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Oct 13. 2023

돌이킬 수 없는 강

후회와 개선

오늘 놀이터에서 아기가 넘어져서 처음으로 얼굴을 다쳤다. 바닥에 부딪쳐 이마와 코와 인중에 피가 났다. 급히 아기를 안고 집으로 올라와서는 정신없이 연고를 찾았지만 연고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분명 놓았던 자리를 다 뒤져봐도 연고가 없어서 마음이 급해지니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내 바짓자락만 잡고 있는 아이를 보고선 질끈 눈물을 삼키고 차근차근 약통바구니를 다시 찾아보았다. 꾹꾹 마음을 가다듬으며 찾아보았더니 없었던 연고가 보였다. 아기의 얼굴을 살폈다. 코만 다친 줄 알았는데 앞머리를 올리니 톡 튀어나온 예쁜 이마가 꽤 크게 붉어진 채로 피가 나고 있었다. 눈물 고인 예쁜 눈으로 나만 바라보는 아기를 보고 있자니 다친 아기보다 내 마음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연고를 바르며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은, '아, 놀이터에 나가지 말 걸.'이었다. 누가 보면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괜찮다고 말하겠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과하다고 말한다 해도 그 순간만큼은 물밀듯 후회가 몰려왔다. 머리로는 알았다. '아기를 꽁꽁 싸매고 다닐 것도 아닌데 이렇게 다 크는 거지 좀 더 조심하면 돼.'라고 말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 나가지 않았더라면, 조금만 일찍 들어왔더라면' 후회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 후, 오늘 하루는 다 조심스러웠다. 집 안에 와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행여나 다친 곳이 또 다칠까 조심 또 조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다친 곳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또 후회함이 밀려오다 나도 처음이라 이런 상황에도 적응해야지 싶어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돌이킬 수 없는 선택들,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사건들은 살다 보면 우리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상황들이었다. 물이 엎질러진 후 앞으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개선하는 것 역시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상황을 어떻게 다루고 받아들이는가를 배우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가 후퇴가 되면 안 된다. 또한 개선이 전체를 바꾸면 안 된다.'이 두 평행선 사이에서 느리더라도 앞으로 전진할 힘을 지니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다쳤다고 앞으로의 외출을 포기할 순 없었다. 아니면 또 다칠까 봐서 아기가 가장 좋아하고 익숙해진 놀이터가 아닌 다른 장소를 찾는 것 역시 아기에게 너무 큰 변화였다. 앞으로 나는 놀이터에 갈 때 좀 더 신경을 써서 무릎보호대도 하고 더 잘 보살피면서, 행여 또 다친다 하여도 마음을 굳게 먹고 잘 치료해 주며 무엇보다 아기와 함께 아픈 시간들을 견뎌내 줄 마음의 다짐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것이 다친 아기를 대하는 나의 해결책이다. 작은 사건도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게 하는 마법이 일어난다. 그 사건들 속에서의 해결책은 사실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큰 변화를 가져오는 터닝 포인트의 중요지점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럴 때마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함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얼마나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게 해결책을 제시하는지보다 사실 이면에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로 인하여 누가 영향을 받는지를 고려하여 당사자의 행복여부를 알아야 하는 것이 사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결정으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내가 아닌 '아기'이다. '아기의 안보'문제로 개선이 필요했기에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만 그로 인해 변하는 상황으로 아기는 만족할 것인가? 는 아기의 기분을 살펴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작은 사건 속에서 큰 물결을 발견하였다. 우리의 작은 행동 거지 안에는 각각의 내면의 결이 흐르는 방향성이 존재하고 그 안에는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들과 불만족시키는 고유의 특성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는 특히나 양육자의 책임감과 결정의 중요성을 더 깊이 느꼈다. 이러한 깨달음은 아기에 대한 나의 사랑 혹은 생명의 중요성으로부터 시작된 실질적 처방에 가까웠다. 이 처방이 얼마나 잘 들을지는 적용을 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아이를 위해 최선으로 생각했기에 선한 방향과 방법으로 우리의 놀이시간을 이끌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엄마'라는 자리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두 사람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아기가 아플 때 그 상처와 아픔은 배가 되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지는 것을 보며 나는 그 마음만으로 아기의 방패가 되어줄 마음이 충분해진다. 우리 모두는 다 소중하다. 우리의 아픔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누군가는 울어주고 나를 위해 누군가는 약을 발라주고 나를 위해 누군가는 정성으로 살펴준다. 다만 꽁꽁 숨어 있으면 보이지 않아서 다친 줄을 모르는 것이지 모두가 당신의 상처를 지나치기만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분명 우리의 아픔을 함께 하기에 우리도 그 누군가가 되어준다면 우린 함께 살아가기에 충분하다. 작은 손길은 묵직한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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