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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Oct 24. 2023

경청

눈빛교환

거울을 바라본 지가 오래다. 나의 얼굴을 들여다본 지도 오래다. 종종 거울 속에 있는 내 눈을 응시하며 차분히 나 자신을 살펴보았었는데 육아하며 그런 여유를 부리는 것은 사치인 듯싶다. 요즘 몸이 많이 지쳐있다. 아기는 왜 이렇게 하루하루 예쁘게도 빨리 크는 것 같은지 갑자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요즘 우리 아기는 19개월 차에 들어섰는데 말이 좀 느린 것 같아서 걱정이다. 그래도 깊은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의사소통이 매우 잘 되고 있어서이다. 의사소통이 잘된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이와 교환하는 눈빛에서 우리가 더 자주 그리고 잘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아기의 이름을 불렀을 때, 처음으로 아기가 나를 쳐다보고 내 두 눈을 바라보았을 때이다. 엉엉 울고 있는 아기에게 나는 '아가야, 엄마 봐바'라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아기는 내 품에 안겨 눈물을 그치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슨 뜻인지 몰라도 내 말을 들을 자세로 나에게 집중했다. '아가야, 지금 배가 많이 고파서 우는 거니?'라는 질문에 끄덕끄덕하며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서 나는 우리의 마음이 이제 서로 통하기 시작했다고 느껴 마음이 뭉클해졌다. 말을 하지 못해도 눈빛만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고 아기가 더욱 한 인격체로 내 삶에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아가야 엄마 봐바'를 외치곤 한다. 사실 아기는 좀 귀찮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에게 집중하는 아기의 눈빛이 너무나 좋아 자주 부르게 된다. 그러다 문득,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말에 경청을 잘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육아를 하며 더욱 바빠질수록, 할 일들이 쌓일수록, 사람보다는 일에 더 경청을 잘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참 내 일상 속에 인간미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아쉬움이 느껴졌다.


경청을 한다는 건 '상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태도'라 생각한다. 그리고 눈빛을 교환하며 상대가 나를 받아들이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마음이 닿고 그 마음의 진실함을 느낄 수 있다. 눈빛이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이유도 우리의 눈은 우리 마음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커갈수록 아니 말이 트일수록 눈대신 입으로 말할 시간이 많아진다면 조금 아쉬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아이의 눈을 보고 그 마음을 헤아리려는 내 모습은 잃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바라만 봐도 좋은 것, 바라만 봐도 온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것, 당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로 경청할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할 수 있는, 말로만은 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이제는 내 말을 경청해 달라고만 바라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말을 경청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내가 들어준다고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내 앞에 있는 상대의 외침을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그 가운데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것이 경청의 힘이라 생각된다. 듣기 좋은 말에만 집중하지 말고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들어주는 것은 경청하는 자의 기본 덕목이다. 상대가 시작한 그 이야기에 스스로 말의 끝맺음을 맺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간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장 귀한 시간이다. 백 마디 조언 보다 한 마디 수긍은 관계 속에서 무엇보다 강한 기둥이 되어 끈끈한 우정을 만들고 이 '힘'들은 그 자체로 '신뢰'를 쌓고 아름다운 관계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나, 너, 우리. '우리'로 함께 살아가는 우리네 세상이 좀 더 진득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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