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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Nov 21. 2023

부담(burden), 너를 그리다

너는 네 자리에서, 나는 네 앞에서

가끔 나는 내가 참 부담스럽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하냐면,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공기가 느껴질 때나 내 일상이 혹은 내 현재의 삶이 잘 돌아가고 있지 않는 느낌을 받을 때와 같은 경우에 그러하다. 이럴 때 나는 '내가 잘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내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내 나이에 맞게 혹은 내 위치에 맞게 혹은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 남들이 보기에 내가 현재 평균과 같은 일정 수준엔 미치고 있는지 그것도 부담스러우면 남들의 기준과 상관없이 나 자신 스스로에게는 만족하는지와 같이 복잡하고 진지하면서도 지루한 질문들을 하다 보면 정말이지 엄청나게 부담스러워진다.


이러한 생각들이 사실 결국엔 내게 유익을 주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생각보다 부담이 덜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반대로 잘하는 부분이 있다면 스스로 칭찬도 해주며 어깨가 올라간다. 이런저런 나 홀로 평가를 하다 보면 짐과 같이 느껴지던 부담감이 그래도 지고 가고 싶은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그 본연의 자리를 되찾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부담감이 한계치를 넘어섰을 때이다. 내 능력이 너무나 희미해 보이거나 내 체력이 한계를 느껴 숨 쉬는 것마저도 버겁게 느껴질 때,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눈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으면 그 모든 일들이 아주 큰 짐덩어리가 되어 나를 짓누르기에 나는 생생한 위기감마저 느낀다. 감사하게도 지금껏 잘 극복해 왔지만 여전히 부담은 부담스럽기에 나는 지난 과거를 떠올려보며 내가 그런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담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새로운 방법이나 똑똑한 전략이 아닌 '즐거움'에 있었다. 짐이 어깨에 얹어지기 시작한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놓는다. 즐거운 그 리듬에 맞춰 눈앞에 놓인 일을 하나라도 시작하다 보면 어느새 '그 짐'은 내 어깨가 아닌 내 손 위에서 다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되돌아보니 나는 이미 내가 즐겁게 일하는 방법들을 터득하고 있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음악과 함께 일을 시작하는 것도, 몸에는 좋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 라테를 옆에 두고 일하는 내내 마시며 그 기분을 만끽하는 것과 같은 별 것 아닌 방법들은 내 능력(capability)을 이끌어내고 부담(burden)을 조절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요즘 힘든 육아에서 아주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육아는 나를 매일 당연하게 반복적으로 지치게 한다.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어 아기에게 더 이상 새로운 것을 해줄 능력이 없음을 느낀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는 힘을 다 써버렸는데 아기는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일 때이다. 아기를 안고 거울 앞에 서서 내 눈과 아기 눈을 비교해 보면 정말이지 헛웃음이 나온다. 여전히 말똥말똥한 아기의 눈빛과 배시시 웃으며 쳐다보는 사랑스러운 아기 앞에서 나는 가끔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정말 피곤할 땐 사실 엄청난 부담감이 다가온다. '아기가 잠들 때까지 나는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아니 어떻게 버텨야 하지? 그냥 쉬면 아기한테 유익하지 못할 것 같은데 그래도 되나?' 이런저런 생각에 오늘 하루 잘하고 있었음에도 갑작스럽게 육아에 대한 부담감을 한 짐 떠안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럴 때, 나는 그 방법을 쓴다. 나는 그 부담감에 깊이 빠지지 않고 우선 아기에게 노래를 틀어준다. 아기는 즐겁게 춤도 추고 리듬에 맞춰 몸도 흔들며 행복해한다. 그 모습에 어느새 나도 몸을 흔들고 긴장을 풀고 있다. 그리고 아기와 나는 함께 그 고비를 넘긴다. 아기와 행복하게 그 시간을 채움으로 부담감은 내 어깨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에 서서 나로 하여금 행복한 엄마가 되게 한다.


부담은 책임과 의무로부터 비롯한다. 적절한 부담은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부담은 내 뒤를 따라오는 것이지 내 앞에서 나를 이끌어 주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부담을 다루는 것도 내게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책임과 의무가 제자리에서 이탈하는 순간 그 부담은 나보다 커져서 내 역할을 방해한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책임과 의무의 역량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도 역시 '부담'이다. 그렇기에 그 부담이 제자리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잘 다루는 주인이 된다면 나는 여러 방면에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미래는 걸어보지 않은 길이기에 이따금 부담스럽고, 그 길 위에 더 알지 못하는 새로운 길, '육아'가 더해져서 나는 종종 그 부담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져 내 발목을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오늘의 부담을 잘 다루며 내 길을 올곧게 걸어가고 싶다. 그렇게 하루하루 가다 보면, 탄성력이 강해져 더 단단하게 내 삶을 살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너무 깊은 생각도 너무 많은 염려도 모두 다 멀찌감치 보내고, 오늘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 힘 있게 하루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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