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과 절망, 슬픔과 눈물, 꿈과 현실 그 사이에서 모든 것이 다 날아갔다고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에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한 사람,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눈물 가득한 눈으로 앙다문 입술을 하고 거울 속에 비친 나를 응시하다 보니 내 모습이 점점 또렷하게 보인다. 기대하고 준비하던 많은 것들이 다 날아갔지만 그 사실과 네 생명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물어본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네가 지금 여기 서있는 것이라고 말해본다. 썩어 문들어져 새까맣게 타버린 그 마음에 아무리 약을 발라본다 한들 그 상처가 너무 커 언제 괜찮아질지 모르는 그 마음을 덜어낼 수는 없지만 너의 눈물은 덜어내고 너의 환한 미소는 간직하라고 끝끝내 견뎌야 하지 않겠느냐고 토닥이듯 말해본다.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만들었고, 나는 아이를 만나게 되어 분명 행복하다 느꼈지만 내 마음속 숨겨져 있던 나는 많이 울고 있었다. 산전 우울증인지, 산후 우울증인지, 그냥 우울한 건지 이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기쁨과 슬픔 사이를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가며 이 힘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체력이 좋지 못한 점, 평생 공부만 하며 살아온 점, 좁은 인간관계, 오랫동안 유학을 준비해 온 점, '아기'에 대한 부족한 지식, 이 모든 것들은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감정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양육자의 환경을 조성하기에 충분한 원인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몸이 힘드니 눈물이 나고, 책상에 앉을 시간이 없으니 답답하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20대를 바쳐 걸어온 길에 대한 포기는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필요하고, '아기'에 대한 부족한 지식은 나의 부족함으로 직결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선 오늘 하루만 살아보자고 다짐할 뿐인 매일을 살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아기'를 양육하는 것이었다. 서적들을 읽고 다른 양육자들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으며 오늘의 우리 아기가 편안하게,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아기야, 부족함이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완벽하지 못한 엄마의 손길이 사랑으로 완전해지기를 오늘도 기도할게. 사랑한다.' 간절한 나의 마음을, 떨리는 나의 손길을 아기는 알아주는 것인지 나를 찾고 나를 보고 웃어준다. 아기의 맑은 울음소리와 퍼지는 웃음소리가 안도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나는, '생명'의 한 편을 고스란히 느끼며 아기의 숨소리와 함께 잠을 청해보았다.
잠시 눈을 감은 꿈 속에, 웃고 있는 나를 보았다. 가진 것도 없어 보였고, 이룬 것도 없어 보였고, 얼마나 울은 건지 퉁퉁 부은 눈에 살이 빠진 야윈 모습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두 손을 심장에 얹고 살포시 미소를 짓고 있으니 절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모습 그대로여도 괜찮으니 멀리 달아나려 하지 말고, 내 곁으로 오라고, 어서 오라고 말했다. 아기 엄마이면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균형의 때가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해보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눈물이 마르기 시작하고 옅은 웃음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이. 조금 멀어도 괜찮다. 나에겐 아기가 있으니,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니까. 함께 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알 수 없는 이 길을 걸어가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위로해 본다. 우리 조금만 힘내보자. 눈물이 나지 않을 때까지, 다시 건강해질 때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이렇게 꾸역꾸역 걸어가자고 다짐해 본다. 오늘의 다짐은 오늘의 나를 세울 것이라 믿으며 눈물을 삼키고 힘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