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나비

나비가 날았습니다

by 이지희

만삭이 되던 그 달 2월, 용마산 밑자락의 바람은 차디 찼고 나는 아기랑 함께할 행복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건, 최선을 다한 끝이기에 나에게 희망이 없다고 느껴졌기에 처음으로 나는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제대로 된 태교 한 번 하지 못했지만, 그저 배를 만지며 '사랑한다'는 수천번의 말로써 뱃속의 아기와 함께해 왔기에 이 아기가 세상의 빛을 보기 전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준 것만 같이 느껴졌다. 아직 눈앞에 나타나지 않은 아기였지만, 발길질을 열심히 하는 이 생명을 온몸으로 느끼던 그때의 나는 두려웠고 무서웠다. 혼자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침묵과 암흑을 울며 견뎌냈지만 더 이상 내겐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누구나 말 못 할 비밀 하나쯤 있지 아니하냐'는 흔한 말 한마디가 별로 공감되지 않던 내게, 누구에게도 풀어낼 용기가 없는 비밀을 지니게 되었다. 나는 임신하고 있던 10개월을 정말 외롭게 보냈다. 사실 지금은 그 기간이 기억이 날아가버린 것처럼 어렴풋한 느낌으로만 남아있긴 해도, 이렇게 꾸역꾸역 굳이 그 마지막과 같았던 날들을 기억해 내는 이유는 지나고 보니 그 마지막이 새로운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은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문제로 다가오는, 그리고 나에게는 어려운 문제였기에 말할 수 없는 비밀로 묻히는 것이 덜 상처받는 길이라 생각하며 굳이 그 기억을 꺼내고 싶지 않음에도 왠지 모르게 어떠한 적정선 안에서 용기를 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야 새롭게 시작된 이 삶의 경주를 깨끗하게 집중하여 달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노란 나비를 좋아했다. 흰색 나비들은 많은데 가끔가다 나타나는 노란 나비는 내 마음을 싱그럽게 해 주었기에 혼자 산책하는 길에도 노란 나비가 날아올 때면 늘 혼자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소중한 노란 나비가, 이 무명의 노란 나비가 더 이상 내게 날아오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혼자라고 느껴졌고, 정말 혼자였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어찌 된 마음인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가족에게마저 '도와달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벽돌이 하나둘씩 쌓여 어느새 높디높게 쌓인 이 담을 내가 살기 위해 넘는다 해도 나는 그대로 떨어져 죽을 지경에 처해버린 것이다. 하늘을 봤다. 겨울바람은 이리도 찬데 하늘은 왜 이렇게도 파란지 눈에 힘이 풀려 그저 주저앉고 싶었다. 뱃속의 아기가 다칠까 걸음마저도 한 발짝 떼는 것이 이렇게 조심스러운 만삭의 몸은 내 마음을 꽁꽁 묶어 버렸고, 나는 또 눈물만 흘린 채로 멍하니 옥상에 서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멜로디의 리듬마저 민감하게 느껴지기에 음악을 듣지 않은지도 한참이었다. 무서운 정적 가운데 한참을 서있다 침묵을 깨고 오랜만에 휴대폰을 켰고, 때마침 좋아하던 가수의 새 노래를 발견하여 듣게 되었다. 나비가 날았다는 노래의 제목이 나에게 와닿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노래를 듣길 참 잘한 것 같다. 평온한 목소리와 함께 내 마음은 위로를 받았고 그 노래는 그 순간만큼은 눈에 보이지 않는 노란 나비가 되어 나에게 날아와 주었기 때문이다. 우두커니 서있는 내 앞에 고맙게도 와주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그 느낌이 너무 오래간만에 들어 눈물이 흘렀고 나는 힘을 내었다. 조심히 빌라 옥상에서 내려와 집으로 향했다. 내 마음을 그곳에 내려놓은 채로.


집에 돌아와 나는 눈을 감고 기도했다. 평온한 마음으로 나비가 되어 날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밤 9시 혼자 잠드는 이 밤, 사랑하는 아기와 나 이렇게 함께 나비가 되어 더 평안한 그곳으로 함께 날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죽고 싶다'든지, '살고 싶지 않다'든지 이런 말과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10개월을 버텼다. 사랑하는 우리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 뛰는 심장이, 강인한 생명력으로 크고 있는 이 태아가 죽음의 '죽'자도 알지 못하도록 나는 절대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버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비'가 되고 싶다는 말은 어쩐지 그렇게 말하고 싶던 그 말을 아기가 알지 못하게 대신해 주는 것 같아서 진실된 고백이 되어버렸다. 그 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눈 녹듯이 평안해졌고, 이렇게 눈을 뜨지 못한다 하더라도 눈을 감을 때 내 몸 깊숙이 느껴지는 이 태동과 함께 평안한 그 세상으로 손잡고 함께 영원히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오래간만에 편안하게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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