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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Jan 12. 2024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아냐, 아냥, 아니야아"

아기가 부정어를 사용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말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아기의 모습에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뻤는지 모른다. 말이 트일 때쯤 보터 '아니야 아니야'병에 걸려 아기들이 다 아니라고 말하기 시작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우리 아기는 말도 좀 늦을뿐더러 크게 부정하는 것들이 없어서 아기가 답답하진 않을까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좋은 점은, 반대로 '아니지 않은 것', 그니까 '좋은 것, ' '괜찮은 것'도 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기의 '아닌 것'과 '아니지 않은 것'의 구분으로 우리의 일상은 새롭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니야"라는 한 마디로 그동안 두리뭉실했던 아기의 세계 속에 아이의 관심사와 성향이 눈에 띄기 시작하고 높낮이가 생기며 다채로운 물감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듯 더욱 아름다운 아이의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말을 이해해 줄 때 만족해하며 끄덕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다. "이게 싫었구나." 이해하기도 하고, "바지를 입기 싫어도, 추워서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까 입어야 하는데?"라고 알려주기도 하고, "엄마랑 같이 안 잘 꺼야?"라는 물음에 "아니야 아니야"대답하는 아기를 보며, '나랑 함께 있고 싶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면서 행복하고 좀 더 원활한 소통도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아니야'라는 말을 잘하지 않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뭐가 그렇게도 괜찮은지 매일 "괜찮다"는 대답만 입에 달고 살았는데, 나와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가까운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럼에도 나를 수용하고 늘 함께해 주던 가족들과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문제에 대해, 혹은 어떤 주제나 이슈에 대해선 오히려 확실한 입장과 결론을 지어 말했던 나였기에 나는 내가 나의 색깔을 분명하게 말하는 편이라 생각했지만, '나 자신'에 관해서는 아무에게도 알려주려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나를 수용하고자 그리고 알아가고자 사랑의 눈으로 하염없이 물어주고 들어주고 보듬어줄 때에도 나는 '아니야'라는 말을 잘하지 못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나는 나에 대해 '아니야'라고 말할 용기가 없는 연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애꿎은 마음으로 변론해 보자면, 진짜 괜찮을 때도 많았기에 나의 표현으로 상대방이 나를 배려하고 의견을 바꿀까 괜한 노파심이 늘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건 , 누구에게나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를 많이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사랑을 내 몸이 자연스레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를 되돌아보고, "아냥"을 연신 외치는 아기를 보니, 내가 너에게도 배우기 시작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엄마도 아니거든?"이라고 반문을 외치며 씨름도 해보고,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는 우리의 시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아 새로웠다. 너의 펼쳐질 삶이 궁금하다. 그리고 앞으로 그려질 나의 삶도 너와 함께 기대해보고 싶다.


이제는 내 인생에 아기가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혼자 남겨진다 하더라도 아기를 사랑할 수 있다면 외롭지 않다. 외면을 당하여도 아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오늘 하루를 살아낼 힘이 있다. 아기는 나의 목적도, 나의 행복의 수단도, 그 어떠한 이름으로도 설명해 낼 자리에 있지 않다. 오히려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며 기쁨이기에 그 순간들에 감사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된 것 같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자리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엄마가 된다는 건, 말 그대로 내가 엄마인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 좋은 엄마, 멋진 엄마, 무슨 엄마가 되려고 내 모든 것을 맞추려고 시도하는 것부터 부자연스러워진다. 아기의 필요를 채우다 보면 어느새 좋은 엄마가 되어 있고, 멋진 엄마가 되어 있다. 느리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이 새로운 환경이 내 삶에 녹여내질 수 있도록 그렇게 차근차근 열심히 걸어가고 싶다.


나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이제야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나는 너와 함께하는 이 모든 순간이 처음이므로 실습생과 같은 마음으로 실습서를 작성해보려 한다. 그렇게 너와 함께하는 이 소중한 모험의 시간들을 지긋이 다독거리며 따뜻하게 이곳에 새겨보고자 한다. 사랑하기에, 아기가 너무 사랑스럽기에 그 사랑이 나보다 더 커서 나 역시 그 사랑으로 성숙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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