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차 가족 모두가 친정에 왔다가 아기와 나는 2주 정도 더 머무르기로 했다. 책과 나의 물건들로 가득했던 내 방은 아기와 나의 것으로 바뀐 지 오래, 바닥에 쳐진 펜스 안에 누워 아기와 함께 잠을 자니 내 방이 이렇게 넓었나 싶다. 깊은 밤, 너무나 고요하고 평안한 밤 아기의 숨소리만 들릴 때 눈을 감고 그 순간에 집중하며 잠을 청하는데,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고 깊은 감사가 흘러나온다.
다음 달에 아기는 두 돌이 된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처음 갈 계획이다. 어떻게든 세 돌까지는 데리고 있으려 했으나 꽤 오래전부터 아기가 또래 친구들을 보면 너무 좋아하고 또 활동량이 워낙 많아 집에 있는 시간도 한계가 있다 보니 어려운 결정을 했고, 그렇게 우리가 '어린이집 다니기'라는 일상의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한다. 아직은 보육차원이니, 그저 그곳에서 즐겁고 신나게 지내는 시간으로 아기에게 기쁜 일상의 자리가 되기를 기도하는 밤이다.
떨어져 있어도 우리가 맞잡은 이 두 손의 끈이 놓치지 않은 채, 아니 너의 손을 잡은 내 마음의 끈을 놓치지 않고 이 마음 이대로 너에 대한 책임과 사랑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위에 조금 더 정신을 차리고 긴장감 속에 열심히 살려고 한다.
그리고 내 일상에도 새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얼마 전, '이제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남편의 응원과 또 나의 결정이 있었다. 어느새 내 일상과는 멀어졌던 나의 공부가 떡하니 고대로 그 자리를 지키며 다시 오라 손짓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언제든 달려가서 다시 내 것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쉬울 줄 알았는데, 왜인지 마음이 가볍지 않고 발걸음도 떨어지지 않는다.
왜 유독 시간보다 마음이 지체되는지 생각해 보니,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내 하나뿐인 아들에게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분산되는 것이 걸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럼에도 자연스레 접어든 이 상황에서 아기도 자기의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고, 나는 다시 내 것을 해내가야 하지만, 익숙해져 버린 지금의 환경에 나는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또 한 번의 환경의 변화로 다가와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다.
그래서 나의 현재의 최선은 아기가 세 돌이 될 때까지는, 뒤를 보고 걸으려 한다. 아기가 잘 가고 있는지 내 눈은 너를 보고 나는 뒤를 보며 천천히 걸어갈 것이다. 손만 잡고 앞을 보고 걸어갈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너를 지키고 싶다.
겹겹이 쌓아 올린 마음의 시간들이 강한 사랑이 되어 책임감이라는 방패 아래 뿌리를 내고 굵은 줄기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에 잠길수록 깊어진 사랑으로 네가 걸어가는 길이 빛 가운데 밝게 비치는 삶이 되기까지 끝끝내 내 자리를 지켜 너를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