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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Feb 06. 2024

파도가 울렁인대도 함께한다면야,

다 내려놓아도 우리 모두는 소중하다

벚꽃처럼 눈발이 흩날린다.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번뇌와 고민들도 이 눈발처럼 흐트러져 다 날아가기를 바라는 날이다. 아기와 나는 감기에 허덕이며 새해부터 근 한 달을 고생한 것 같다. 약기운과 아픈 기운 가운데 그간 우리가 해오던 규칙적인 일상들이 하나, 둘 지켜지지 못하다 결국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밤에 잠드는 시간마저 모든 것들이 제멋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마치 우리 아기가 들쑥날쑥 제멋대로 쌓아 올려놓은 블록들처럼 말이다.


아기의 건강과 나의 건강을 위해 2년간 규칙적으로 해오던 모든 루틴이 깨지면서 나는 일상 속에서마저 무언가 모든 걸 내려놓게 되었다. 그러자 오히려 마음이 편했고 아기가 건강한 것만이, 귀한 이 생명이 하루를 그토록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다시 온전하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를 찾았다. 아이의 생명만큼 나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아이의 곁에 있으면서 아이가 웃고 행복해하는 것만으로 내가 행복한 것처럼, 나의 부모님도 내가 건강하게 그리고 기쁘게 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사랑의 결과를 왜 이렇게 늦게 깨닫게 된 것인지 어리석게 느껴지는 반면, 그것이 어쩌면 나의 교만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건강하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던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들을 그저 안부로서 좋은 말로써 진심으로 듣지 않았던 것은, 사랑의 풍요 속에서 그 사랑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나의 교만하고 좋은 것을 값없이 여기는 욕심쟁이 모습이었던 것 같다.


아기에게 좋은 환경과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제공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결같은 사랑으로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엄마라는 존재를 넘어서 그렇게 든든하게 누군가의 곁에서 변함없이 응원해 주는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


아이가 아프더니 부쩍 커버렸다. 말도 잘 알아듣고, 제법 말도 잘 따라 하고, 싫은 것과 좋은 것, 다른 것과 틀린 것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가장 기분이 좋은 건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표현되기 시작해서 아기가 주는 사랑을 받는 것이 너무나 큰 기쁨이고 위로가 된다.


같이 앓아누웠던 지난한 밤을 지새운 후 맞이한 어느 아침, 먼저 깬 아기가 나를 여느 때와 같이 흔들어 깨웠다. 너무 아파서 내가 일어나지 못하고 약기운에 다시 잠에 들어버렸는데 그 잠결 속에서 이 아기가 나의 볼을 쓰다듬어 주며 내 품으로 들어와 나를 안아주었다. 행복한 눈물이 났다. '우리 아기가 벌써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마음에 감사했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을 품어주고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두서없는 내용들이라도 모든 게 괜찮게 여겨지는 지금 이 순간, 파도에 모든 것이 휩쓸려 가도 다 괜찮다 여겨지는 요즘의 날, 나는 가족이 있어 그 안에서 온전한 행복함을 느끼고, 신앙이 있어 늘 변함없는 평안을 누린다. 잠잠하기 그지없던 지난날의 시간들이 이제는 꽤 오래 머물렀다 떠나려나보다. 새로운 시작이 또 한 번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너무 오래 머물러 다시 시작할 용기마저 저버렸진 않았기를 나 자신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내본다.


사랑하는 아가야, 엄마랑 아빠랑 이번 한 해도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보자. 엄마에게도 너에게 보이는 그 환한 미소가 만족해하는 포효가 일기를 원해. 이 세상에 온 지 2년이 되어가는 너의 삶에 싱그러운 봄향기의 꽃들처럼 아름답고도 향기로운 감정과 느낌들이 풍성하게 쏟아지기를 정말로 바라. 엄마도 노력해야겠지, 사랑한다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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