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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Jul 08. 2024

그러니까 엄마는 말이야

아기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또 일상생활 속 대부분의 말귀를 다 알아듣고 있어 순간순간 놀람과 새로움을 만끽 중이다. 그러나 또 다른 면으로는 늘 한계였던 나의 체력은 적신호와 황신호를 왔다 갔다 하며 겨우 하루하루를 연명 중이라 할 수 있다. 하다 못해 아이템과 같이 아껴 쓰던 가족들에게 내미는 SOS신호는 갈 길 잃듯 잃어버려만 가고, 그렇게 나는 "할 수 있다!"를 매일 외치지만 '잘할 수 없는 나의 모습'만 매일 밤 확인할 뿐이다.


"포테이토 칩! 잠이 오면 잠 좀 자자!"

"포테이토 칩! 엄마 때리는 거 아니야!"

"포테이토 칩! 내려와 다쳐!"

"포테이토 칩! 제발....!"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씩 웃으며 뽀뽀를 하고 안아주는 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앞으로 아들의 이름은 포테이토 칩이라 명하겠다.


2-3주 사이에 아기가 미친 듯이 큰 느낌이 든다. 독박육아로 2주를 버티고 있는데 그 사이에 아기는 부쩍 성장한 것 같다. 우선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고 말이 늘어서 자려고 누웠다가도 정말로 사랑스러운 어눌한 말투로 "놀아(놀자)! 노라(놀자)! 불 커(불 켜)... 제발!"을 외치는 너를 보며 나는 벌써부터 두 손 두 발을 다 들은 것 같다. 오늘은 참다못해 아이에게 언성을 높여 혼을 냈다. 두 손을 허리춤에 대고 혼을 내니 똑같은 포즈로 고래고래 나에게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고개를 휙 돌리며 숙이는 아기의 모습에 마음이 아렸지만 단호함을 잃지 않고 기다렸다. 조금 있으니 기운이 수그러져 죄송하다는 표시를 하는 아기를 꼭 안아준 채 마음을 헤아려주려 노력했다. "앞으로는 그러면 안돼!"라는 말에 "눼!!! 눼!!!"를 외치는 너의 우렁찬 모습에 내 마음이 풍성해진다. 가엾은 너의 놀란 가슴에 괜스레 미안하면서도 이렇게 옳고 그름을 배워가며 단단해져 가야 할 너의 인생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그저 꽉 껴안아 주었다. 이유 없는, 명분 없는, 그저 사랑하기에 나오는 미안하다는 말은 꾹 삼킨 채로.


오늘은 왜인지 폭풍이 지나간 듯하여 네가 잠든 시간이 고요 속에 잠긴 것 같다. 네가 잠들고 나서야 긴장이 풀리고 힘들었던 모든 감정들이 쏟아져 눈물이 왈콱했다. 잠든 너의 얼굴을 한참이고 바라보다가 뒤돌아 누워서는 조용히 눈물만 삼켰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만 네게 말해본다. "그러니까 엄마는 말이야. 네가 원하는 만큼 놀아주고 싶은데 지칠 줄 모르는 네 체력과 이미 지친 지 오래인 내 체력 때문에 자꾸 한계가 와서 그래서 마음만큼 너를 다 만족시켜주질 못해. 엄마의 진심은 아닌데 보채는 너에게 연신 화를 참게 되어 그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미안해. 엄마도 쉬고 싶고 자고 싶고 휴가도 가고 바람도 쐬고 싶어. 도서관에 가서 책도 좀 읽고 싶고 운동도 가고 싶고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다 할 수가 없어서 그게 참 아쉬워. 그래도 너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니까 다 괜찮은 거야. 화내서 미안해."  


요즘 둘이서만 집에 있다 보니 점점 고립되는 감정에 길을 헤매기 일보 직전이다. 이 시기만 잘 버티면 된다고 지혜롭게 하루하루에 집중하자고 감사하며 오늘 최선을 다해보자고 그렇게 나아가고 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아기가 잘 때 시작한 밤공부는 지속하긴 하지만 턱없는 비효율성에 만족함보다 덧없는 마음만 크다 느끼며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미친 듯이 주어진 것만 하면 되는지에 대한 의문과 집안 살림에 더없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는 없는지에 대한 아련한 답답함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늘 버스 안 옆자리에서처럼 옆에만 앉아있는 듯한 원하는 일들은 바라만 본 채 그렇게 오늘도 굴러가는 바퀴에 몸을 맡긴 채 들려오는 다음 정거장에 귀기울기만 할 뿐이다. 더 나은 내일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기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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