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오늘의' 너 말이야

by 이지희

차근차근 우리의 나날들을 펼쳐 보이는 요즘, 나는 참 행복하다고 느낀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여러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하여도 괜찮다 느껴지는 요즘이다. 아니, 오늘이다. 그리고 나의 오늘의 시간 위에는 늘 우리 포테이토 칩이 서있다. 어제의 네가 아닌 오늘의 너는 나의 하루를 밝힌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집안 곳곳 스위치를 켜는 것처럼 너의 존재는 나의 하루의 스위치를 켠다. 자고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기지개를 켜고, 피로가 풀렸던 그렇지 않던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야만 한다. 너를 씻기고 아침을 챙기고 손잡고 어린이집 등원을 해야 하니 어찌 됐건 나는 꿋꿋하게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오늘 아침은 어쩐지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무언가 하루를 시작할 마음이 준비가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한숨을 푹 쉬고, 밀려오는 걱정과 염려를 막아선 채 나는 박차고 일어섰다. '5분만 더 잘게'라고 외치고 싶지만 '10분만 더 뭉그적 대고 싶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할 대상이 없음을 느꼈을 때 괜스레 울컥하는 마음이 든 것이 발단이었던 것 같다. 박차고 일어선 잠깐의 그 힘이 민망 해질 정도로 나는 곧바로 침대 위에 털썩 내려앉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이놈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버겁다 느껴지던 그 순간에, "엄마!"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5초도 되지 않아 내 품으로 뛰어오는 포테이토 칩을 끌어안았다.

"잘 잤어?"

"응! 엄마도 잘 잤어? 보고싶어짜나~"

꿀 떨어지는 목소리로 아침부터 나를 웃게 하는 네 앞에서 잠시 움츠러들었던 경직된 내 어깨는 무장해제되어 힘이 풀려버렸다. 그렇게 나사가 하나 풀린 채로 나는 하루를 시작해 보았다. 너와 함께, 그렇게 너를 바라보며 일상의 날개에 몸을 맡기고 오늘의 시곗바늘과 함께 오늘 하루를 날아보았다.


오늘 아침, 멈칫하게 되는 그 순간이 왜인지 낯설지가 않았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를 망설이게 하는 그 순간이 언젠가부터 꾸준히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떨 때 그러하냐면, '인관관계'에 관해 생각할 일이 있거나 심지어 언젠가부터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될 때 더욱 망설임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아직 있지도 않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망설임을 느끼다니...'

이런 내 모습을 알아차리고 나니 당황스러웠다. 요즘 MBTI로 말해보자면, 나는 E(외향형)은 아니지만 지금껏 사람들과 늘 무탈하게 잘 지내왔다. 또 먼저 잘 다가가는 성격은 못되어도, 다가오는 사람들과 늘 잘 지내왔어서 사람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아직 있지도 않은 새로운 관계들에 대해 주춤하고 있는 모습으로 '앞으로 내 행실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에 관한 낯선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고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과거의 어려웠던 굵직한 인연들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에 구애받고 싶지 않기에 이러한 걱정과 감정이 드는 것이 싫었다.

'나.. 상처가 있는 것일까?'

자세히 내 마음을 살펴보니 사람이 좋으면서도 '또' 상처가 될까 어려워하는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불안함'이 정체를 감춘 채 내 마음에 계속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멈칫함은 오늘 아침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멈칫했던 내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 아니면서 코앞에 있는 오늘마저도 그렇게 버거운 것이었더냐고 솔직한 내 심정을 묻고 싶어졌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더니 뭐를 숨기고 있는 것이었냐고 똑바로 들여다보라고 그렇게 마주하고 싶지 않던 약한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


포테이토 칩과 함께 하면 없던 사랑도 새로 솟아나는 기분이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들을 볼 때면 가끔 이성을 잃고 싶지 않아 그 마음을 꾹꾹 자제하기도 한다. 물론 화가 차오를 때도 너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 꾹꾹이를 열심히 부르며 자제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요즘의 나를 돌아보니 늘 무언가 '사랑'이라는 원초적인 그 따뜻한 감정을 가족에게 느낄 때마저도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 바람이 새는 듯한 느낌을 가졌었고, 그 느낌을 몰아내려 더욱 사랑하는데 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새는 바람이 바로 '불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불안'하게 아기를 사랑하고 싶지 않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 그저 받는 느낌으로 알게 되는 '그 따뜻함'이 아기를 향할 때에 온전하게 전해지기 위해서는 그 구멍은 꼭 메꾸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에 나는 '불안'이라는 구멍을 메꾸기 위한 방법을 찾고 싶었다.


나는 내 눈앞에 있는 너에게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들을 더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너를 살피기 시작했다. '내일 너에게 무엇을 해줄까?' 혹은 '어제 너한테 무엇을 좀 더 해줬어야 하는가?'가 아닌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오늘의 너에게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네가 지금 뭐라고 내게 말하고 있는지, 네가 지금 무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지, 네가 지금 왜 웃고 있는지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속에 있는 구멍이 집중하는 순간들만큼은 전혀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서 시선을 돌려 나 자신을 바라봤다. 나에게 말했다. '그래, 오늘의 너 말이야!' 있는 모습 그대로 오늘을 살면 된다. 오늘 살아가다 맞닥뜨리는 그 순간에 집중하고 진실하게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수학 문제 푸는 것을 좋아했다. 아니 세 살부터 숫자를 좋아했고 열 살이 되기 전까지는 그냥 수학이 좋았다. 고학년이 되면서는 수학문제를 푸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내 앞에 놓인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 시간이 그리고 내가 있는 공간이 가득 채워지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풀리지 않는 문제도 며칠이고 고민하다 보면 그 문제가 미운 것이 아니라 되려 정이 들었다. 풀리지 않는 그 자체로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문제가 안 풀린다고 조급함과 불안함이 나를 덮치거나 혹은 풀어야겠다는 집념이 나를 몰아세운 것이 아니라 그 문제 앞에서 나는 그저 앞뒤로 좌우로 같은 문제를 살펴보며 온전히 집중하는 것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곤 했다.


그렇다. 바로 그렇게, 오늘의 너에게 그리고 오늘의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집중해보려 한다. 그러면 문제가 풀리듯 나의 삶에도 새로운 기쁨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네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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