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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보다 중요한 것

공공기관 기관장 코칭스토리

by 김지엘

상근컨설턴트로서 청년창업자들을 돕고, 코칭하고 학습하는 모든 시간들이 나의 삶을 되찾아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업무는 무르익어가고 공단 내의 동료 전문위원님들, 직원들과 부서장님들, 본부장님들과도 친분이 쌓여가고 있었다.


나는 코칭학을 전공하고자 대학원에 입학하였고, 스타트업 대표들과도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깊이 있는 코칭을 해나가고 있었다.


딸아이 분유값이 없을 정도로 곤란한 처지였던 나였다.


대학원을 진학했다는 뜻은 그만큼 비교적 안정된 가장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더 깊이 전문성을 갖추겠다는 의지가 담긴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공공기관에서 전문위원으로 코칭을 한다?

주변에 독특하게 비춰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경력 때문인지, 유사 관공서나 학교, 공무원 조직에서 종종 러브콜이 있었다.


날 불러주는 일이 참 감사하다. 무조건 응하고 달려가야함이 마땅하다. 내 재능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데 망설일 필요 있겠는가. 예전부터 나는 고객이 부르면 무조건 먼저 달려가고 돈이나 처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예전부터 내 생존 비결은 다른강사들이 이런저런 조건 따질 때, 나는 하겠다고 하고 먼저 움직였던 바로 그것 아니었나.


그러나 감사한 러브콜을 나는 마다하고 있었다. 배가 부른것인가. 벌써 그럴 때는 아닌데...


나는 왠만해서는 겸직하고 싶지 않았다. 돈 좀 더 받는다고 이직하는 일 역시 신중하고자 했다. 누군가의 소개로 혹은 추천으로 일터를 옮기는 것 역시 누군가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일이니 만큼 나는 조심하고 싶었다.


당시에도 오로지 내 머릿속은 코칭이 사람을 변화시킬수 있는 가장 훌륭한 도구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가급적 내게 코칭과 무관한 경력이 붙는 것은 경계하고 싶었다.


코칭을 할 수 있는 고객 대상층이 다양해지면서 많은 기회들이 찾아오고 있었지만 나는 분별하고 싶었다.


일터의 배경과 경력은 인생의 자산이다. 일터의 구조와 순환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 깨달은 코칭경험을 한가지 소개할까 한다.






공공기관 업무는 대체로 단조롭다. 겉으로 보기엔 말이다.

종종 서류떼러 관공서를 들르게 되면 항상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그래도 경쟁은 하지 않겠지? 자기 할 일만 꾸준히 하면 되지 않나. 때 되면 진급하는거고...'


모든 공공기관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 누구든 한번씩은 하지 않는가.


특히 이 공간에서 제일 윗사람인 분은 별로 하는 일도 없어 보인다. 본인의 방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서 일만적인 민원으로는 만날 일도 없다.


이런 생각으로 살고 있던 나였는데, 내가 공단에서 일을 하고 있다니.


막상 접해보니 예상과는 많이 다른 공동체다. 단조롭기는 커녕 치열하기 그지없다. 포지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어떤 일은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하고 업무 카테고리나 사이즈도 천차만별이다.


조직문화를 살펴보면, 구세대의 유물같은 문화가 바탕인데 요즘세대의 문화 또한 강력하게 포지셔닝 중이다. 더불어 달라지는 민원의 레파토리 또한 읽어가며 대응해야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조직문화.


어쩌면 예비창업자나 기존 창업자들을 주로 만나는 내 업무가 단조로운 것이지, 공단의 부서장, 임원의 업무는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연말이 되면 타지역으로 발령이동을 고려해야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특히 관리자급들은 연말평가와 발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마음으로 가을을 보내곤 했다.


그 시기즈음 소개가 이루어져 타 공공기관 기관장(센터장급)을 코칭하게 되었다. 우연히 성사되었다고 믿었던 이 만남이 사실은 매우 조심스럽고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자리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고객이신 센터장님은 공공기관의 경영과 내부흐름에 대한 통찰과 경험이 있고 CEO, 임원대상의 코칭경력이 있는 전문코치를 찾고 계셨다. 코칭펌 몇군데에도 의뢰를 했었으나 마땅한 코치를 찾지 못했다 하셨다.


적임자가 있다며 소개받게 된 코치가 바로 나였던 거다.

차근차근 코칭계약부터 진행했다. 나는 무료코칭으로 가닥을 잡고 1~2회 세션만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무료라는 말에 센터장님은 많이 놀라신 듯 했다.

나는 센터장님께 내가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무료코칭으로 진행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라 얘기하고 무료라 할지라도 진행 중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코칭을 중단하셔도 좋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넉넉한 미소가 사라지고 송구하다고 말씀하신 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날 대하기 시작하셨다.


"사실은 이슈가 좀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이런 이슈가 지금 터지는건 제게 좋질 않아요."


요약하면, 인사 이동 시기이고 센터장님은 중요한 보직으로 전환이 계획되어 있는 상황인데, 몸담고 있는 조직 내에 소통이슈가 터지면서 자신의 대외적 평판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올해 정말 공들여서 진행해 온 사업들이 잘 마무리 중이어서 내 외부의 평판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바지에 이런 일이 터지니까 많이 답답하군요."




'평판을 다시 뒤짚고 싶다' 라는 주제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연말 연시에 공공기관의 기관장의 평판이 얼마나 중요한가.


대화는 평판에 대한 내용처럼 보이지만, 나는 기관장님이 갖고 있는 인식의 틀(Frame)에 대해 발견하는 중이었다.

고객이 자주 사용하는 언어를 살피면 인식이 보이기 마련이다. 말은 생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센터장님이 자주 하셨던 말들은 이러했다.


"직원들이 예전과는 달라..."

"다 설명을 해줘야 납득을 하려고 하죠."

"내 편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고"

"내 말을 이해했는지도 모르겠고"

"부서장(팀장)들은 수습을 못한다고 하고"

"이해가 안되요"

"이해를 안하려고 해요"

"답답해요."


자주 사용하시는 언어, '이해'


코칭주제가 조정되었다. '소통과 이해'로. 분명한 코칭주제 합의가 이루어진 후, 센터장님은 더이상 평판 운운하지 않으셨다.


지금 정말로 집중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조직의 소통을 잘 핸들링 하지 못하면 후임자에게도 면목이 없을거라며 다부지게 마음을 잡는 모습이셨다.


평판을 뒤짚는 묘책을 강구하기 위해 전문코치를 만난 것인데, 코칭 1회기 1시간 만에 리더인 자신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게 된 거다.

사업의 추진과 평판 관리에 힘쓰다 보니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신경쓰지 못했다고 하셨다. 최근 부서장을 제외한 직원의 80%가량이 MZ세대로 채워졌고 인력구성이 이렇게 되다보니 부서장들이 조직관리가 힘들다는 얘기가 많았다고 했다.


이 때마다 센터장님은 부서장들에게 좀 더 강력한 리더십을 장착해야한다고 조언했다 하셨다. 부서장들에게 화를 내면 그때는 좀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에 더 화가났다고 하셨다.


게다가 부서장 몇몇은 휴직을 하기도 했고 이직을 강행한 경우도 발생하고 있었다고 말씀 하셨다.


하지만 센터장님 본인은 이 흐름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는데, 어느순간 본인의 지시가 부서장들에게 호소력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경험했다고 하셨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일 추진은 해야겠고, 밑에서는 따라오질 않으니..."


하루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이 아닌거였다. 조직이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징조가 있기 마련인데, 무시하고 돌보지 않으니 간극이 벌어지고 수습이 어렵게 된 것 아니겠는가.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이해하려는 의도가 있을 때 조직은 유지된다. 조직에서 의도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겠는가. 일하기 위해 조직에 몸을 담는다.


팀단위 일을 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인 신뢰이고, 신뢰는 서로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MZ세대가 기존과 달라서 벌어진 일이라고 책임을 넘긴다면 조직은 개선되지 않는다.


센터장님은 조직 인력구성의 80% 가량이나 차지하고 있는 MZ세대가 자신의 평판을 망치고 있다고 원망하고 계셨다.



2회기 코칭을 일주일 앞두고 센터장님은 타지역으로 발령이 났다며 직접 연락을 주셨다. 센터장님을 연결해 주었던 소개자로부터 센터장님이 직급이 강등되어 이동하게 된 것이라는 얘길 들었다.


센터장님은 좀 더 일찍 김코치를 만났더라면 좋았을 거라며 감사히 아쉬운 마음을 표현 해주셨지만 그 날 이후 나는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만일 센터장님이 코치형 리더였다면 어땠을까?'

'만일 코치형 리더가 아닌 센터장과 일하는 부서장님들이 코치형 리더였다면?'

'만일 센터장님의 조직에 코칭마인드로 일하는 직원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색다른 아쉬움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뜨겁게 내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고있는 코칭의 기본 방향은 '상대중심' 이다. 상대중심으로 생각하고 표현하고 경청하며 대화한다.

상대를 이해해보고 수용해보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갖고 들어가는 것이 코칭이다.


나보다 상대의 관점과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대화. 조직에 정말 필요하지 않은가? 리더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 후로 센터장님이 소개해주신 몇몇 공공기관 임원, 부서장님들과 코칭의 기회를 갖을 수 있었다. 개인코칭임에도 사적인 이야기들 보다 본인 소속의 조직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본인들은 기성세대라 위에서 시키는대로 해오며 이자리까지 왔는데, 그 길이 결코 쉬웠겠는가. 이 악물고 그 자리까지 왔건만 이제는 이러한 방식이 더이상 요즘세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


'하긴 요즘 공사, 공기업 입사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인데, 스스로 노력해서 입사한 요즘 신입직원들 기특하기도 하지만 막상 함께 일하는 입장에서는 관리도 안되고 소통에 있어서 어려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마치 입을 모아 짠 듯 하나같이 비슷한 말씀들을 하시는 걸 보고 많이 놀랐다.


그리고 MZ직원들 눈치보고 신경쓰느라 스트레스를 두배로 받고 있다는 하소연 뒤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지곤 했다.


공공기관 리더들과의 코칭이 내게 남기고 있는 메세지는 간결했다.


'조직과 리더들에게 코칭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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