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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Aug 23. 2023

1. 변상무의 속앓이

대화의 시작은 비교적 가벼웠다.


"김박사님, 요즘 임원은 부서장처럼 일해야 해요. 실무자처럼 일합니다."   


요즘은 '조직문화'가 업무 가운데 상당히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변상무를 만났다. 요즘은 우수한 인재를 얼마나 보유하고 유지하고 있는가가 임원의 능력이라는 말속에서  전해지는 긴장감을 느낀다


아무래도 성과를 잘 내는 조직이 분위기도 좋고, 전사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니 우수한 인재는 조직문화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우수 인재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공통의 제도를 설계하고 급여체계를 고도화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음도 강조하였다. 


구성원의 입사와 퇴사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기본이고 각종 인사제도, HRM도 전체적으로 손 보고 있지만 '조직문화' 만큼은 쉽지 않다며 여러 번 한숨을 쉬었다.  


"상무님,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내막은 이러하다. 

회사는 십여 년간 성장을 거듭해 왔고, 임원들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조직 전반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기업이나 성장이 둔화되는 시점을 경험한다. 이 조직은 올해가 그러했다. 임원들은 쉴 틈 없이 질주만 해왔기에 지금이야 말로 초심을 떠올려야 함을 자각했다. 조직의 비전을 상기하며 각종 제도와 전략들을 다시 설계해야 할 때임에 동의했다. 


임원들은 발 빠르게 경영 방향을 잡고 전략을 세워갔다. 그러나 구성원들은 달랐다. 성장이 꺾이자 우수한 인재들이 이탈하기 시작했고, 조직 내부에 크고 작은 소통의 이슈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근거도 없고 어느 누구에게 도움도 안 되는 소문들이 돌고 돌아 어느 임원의 귀에 들어갔을 때, 해당 임원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유치해서.  


집안이 시끄러우면 바깥일에도 파편이 튀곤 한다.

고객 CS에서 클레임이 터졌는데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회적 압력과 주주들의 원성은 고스란히 임원들의 몫이 되어가고 있었다. 초심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임원들은 하루가 다르게 이곳저곳에서 터지는 일들을 막아내는데 급급했다. 


"상무님, 우리 구성원들은 어땠습니까?"


나는 대화의 관점을 전환해 보았다. 그러자 큰 한숨과 함께 돌아온 말은,


"사실 김박사님 만나자고 한 게 그것 때문이에요"




 


외부상황을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 임원들은 회의를 거쳐 내부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슈들은 외부전문가에게 의뢰하기로 결정했다. 돈을 써서 실마리를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예산에서 거금을 지출하여 외부 전문가로부터 컨설팅을 받았지만 현재 회사 상황에서 실행하는 데에 무리가 있다는 결론이 났다.


부서장들을 모두 리더십 교육에 보내보기도 했다. 구성원 관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부서장들의 볼멘 목소리에 대한 대응이었다. 결과가 어땠을까. 부서장들은 마치 벌이라도 받듯이 마지못해 교육에 참여했다. 


늘 그렇듯 부서장은 일이 많다. 처리해야 할 소통이슈들이 산더미다. 교육에 참여하는 도중에도 자잘한 의사결정을 요청하는 문자가 쇄도했다. 리더십 교육의 효과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교육이 끝나고 부서장들은  후회했다. 이럴 거면 임원들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말 것을. 괜히 요즘 구성원 관리 어렵다는 얘길 꺼내서 더 바빠졌다며 원성을 높였다. 그때부터 임원과 부서장 간에 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변상무는 전문기관에 의뢰를 해서 임직원 모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문제를 더 정확히 파악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문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결과를 받은 변상무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었다. 


설문의 결과를 짧게 요약하자면,

임원, 부서장, 구성원 모두 현재상황에서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기고 있음 




이것이 변상무가 '조직문화'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이유였다. 사실 설문결과는 충분히 짐작이 될 법도 했다. 그러나 이 내용이 문서화되어 CEO와 각 임원들의 메일로 전달되었을 때 상황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던 잠재적 이슈가 그야말로 '문제화' 되는 시점을 만난 셈이다.  


"김박사님, 나름의 의견을 드리자면 최근 우리 회사 임직원들이 자신감이 많이 결여된 것 같아요. 터질 게 터진 건 맞는데 왠지 뭐가 더 남아있는 것 같거든요. 이후에 뭐가 또 터지면 어쩌나 하고 불길해요."


"상무님, 현재 이 사안의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이 진행되고 있나요?"


"봉합하고 있죠. 어떻게든 봉합을 해보려고 타운홀(Town hall) 미팅을 정기적으로 하며 분위기 붐업(Boom-up) 활동하고 있고, 경영상 긍정적 사례들은 부서별로 취합해서 소통채널에 실어서 계속 캠페인 중이에요. HR에서 고민 많이 해요. 아침에 구성원들 출근하면 모니터에 사례 관련 퀴즈 같은 거 맞추게 해서 점심시간에 포상도 하고 있고요."


변상무는 시종일관 '봉합'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각종 행사와 캠페인이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데에 궁극적 해결안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리더들의 솔선수범과 모든 임직원의 자신감 향상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좀 들여다 봐주시겠어요? 우리 조직을.."


"상무님, 아시겠지만 저는 코치입니다. 조직개발이나 조직문화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코칭적 시각으로 다양하게 바라보실 수 있을 거잖아요. 말씀드렸듯이 임직원 모두의 인식개선을 통한 자신감이 관건입니다. 이거 모두 코칭영역 아닙니까?"


미팅을 마치고 생각이 많았다. 

대화 속에 등장했던 단어 두 개가 유독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피해자', '봉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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