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그저 부양합니다
부양가족
회사를 다니면서 가족을 부양하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우리나라 40대 가장들 중 쉽게 사는 사람이 있으랴.
그도 그랬다.
40대 가장, 그의 이야기는 이렇다.
서른이 넘어 결혼을 하고 신혼과 출산의 단맛은 잠시.
현실적인 가족부양의 길에서 누구도 풍족하다거나 여유롭다 말하는 남자를 발견하긴 쉽지 않다.
우리나라 현실이 그렇다. 이유는 많다. 여기에서 그 이유를 열거해 봤자 다들 한숨만 쉴 테니 생략하기로 한다.
그는 20대, 30대를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전문성이 드러나는 전공을 택했고, 나름 성실을 기하며 취업도 했다. 모난 것 없이 온화한 성품에 그냥 평범하게 살면 되는 현재 40대 중반의 가장.
그러나 다들 알고 있지. 그 평범함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를.
그에게는 아내와 아이 둘이 있다. 연로하신 어머니도 한분 계시다.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 여동생도 하나 있다.
대한민국 40대 중반의 남자에게 이들의 존재는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녀들이 클수록 마땅히 해줘야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기본적인 생활비에 학원에, 책상에, 침대에, 아이들의 정상적 성장을 위한 품위유지 비용들, 휴가철에 아내는 또 어떻습니까. 요즘 아내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인스타를 봐요. 남들처럼 유럽은 못 가더라도 짧게 동남아라도 다녀와야 한다고요. 최근에 어머니 건강도 많이 안 좋아지셨어요. 백내장수술이 시작이었던 것 같은데, 어제는 무릎, 허리 보러 병원 다녀오셨거든요. 전화드리면 매일 어디 어디 아프다고만 하세요. 여동생은.. 그냥 살더라고요. 저한테 뭔가 요구하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은데 어머니가 막고 계신 듯하고요. 이게 제 현실입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40대가 이렇게 흘러갈 것을 말이다. 어떻게 아냐고? 다섯 살 터울의 선배들을 보면 미리 보기가 된다.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 안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예습다운 미리 보기를 제공한다.
쉽다. 우리 인생. 선배들 보면 답이 나온다.
그는 그래서 준비하기로 했다. 이미 5년 전부터 재테크와 부업에 관심을 갖고 관련 공부를 시작했었다. 회사생활을 유지하면서 주말에는 부동산 임장도 다니고, 평일 퇴근 이후에는 피곤하지만 주식투자 모임에도 참여했다. 아이들의 책이 대부분인 거실 책장 모퉁이에 부동산과 주식 투자 서적을 살포시 끼워놨다.
아내가 먼저 잠들면 그는 조용히 거실로 나와 두세 시간 책을 보며 유튜브로 공부도 한다.
그는 왜 이런 노력을 했던 걸까?
왜?
미리 보기 화면을 바꾸기 위해서다.
그의 5년 뒤는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들을 당연히 사랑한다. 그저 웃는 모습만 봐도 피로가 가신다. 연로한 어머니의 삶은 나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힘드셨다. 내가 사람 노릇하게 만들어 주신 것을 존경한다.
하지만
다소 불편하겠지만 생각해 보라. 가족이 부담스럽지 않나? 짐이 되고 있지 않나?
두렵다. 불안하다.
그렇다면 이미 짐이 되고 있는 거겠지.
그는 속도를 낸다. 공부만 하지 않고 실전에 뛰어들어본다.
모아놓았던 돈을 주식에 넣고, 임장 다녔던 부동산을 구입한다. 아내도 그의 생각을 이해해 주었다. 아내가 반대하지 않아서 투자 과정이 어렵거나 하진 않았다.
부동산 계약을 끝내고 귀가하는 길에서, 아내와 그는 핑크빛 미래를 그렸다. 그래봐야 지금보다 약간은 넉넉한, 그저 불안함을 가실 정도이겠지만 그래도 우린 희망이 있었다.
"여보, 10년 뒤엔 그 집 가격이 이 정도는 되겠지. 그럼 지금보다 더 나을 거야."
예상이 될 것이다. 해피엔딩이면 이 글을 썼을까.
주식은 눈에 띄는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올랐다 내렸다. 그의 심장은 매일 도파민 주사를 맞고 있다.
문제는 부동산이었다.
세입자와 건물주 사이의 어떤 어떤 무슨 무슨 사건 스토리.
별안간 그는 당장 8천만 원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자금 회전을 고려해 보지만 대출도 이미 받을 만큼 받았기에 더 이상은 어렵다는 판단이 든다.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는다. 메꾼다. 삼사 금융권에 대출을 알아본다. 또다시 메꾼다.
이미 그의 영혼은 사망의 길을 걷고 있다.
사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아내에게 토로한다. 간절한 마음이다. 아내에게 방법이 있을까. 그래도 답답한 마음이라도 위안을 받고 싶다.
아내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이 일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바로 그.
아내는 책임자가 아니다. 해결할 수 있는 인물 또한 아니다.
그는 아내와 서로 안타까운 마음에 대화를 시작했지만, 대화의 마무리는 씁쓸하다. 어떤 날은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싸우게 된다.
서로 기대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가 짐을 함께 지어줄 거라 믿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의지할 사람이라곤 아내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의 입장은 다르다.
아내는 남편이 이 어려운 일을 조금도 해결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힘든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마음이 힘들다.
둘은 예민해지게 된다.
서로를 탓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서운하다.
문제는 재정문제에서 가정문제로 번지게 된다.
결국 대화가 단절되고, 집안 분위기는 냉랭해진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불이 번진다.
아내 이름으로 구입했던 부동산 물건에 순차적으로 문제가 터지게 된다.
아내가 계약직으로 다니고 있는 직장에 대출업체에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아내는 그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전화가 왔다고!'
마치 세상사람들이 다 우리 부부의 사정을 알게 된 것 같다. 적어도 직장동료들이 알아서는 안된다.
그저 전화 한 통 온 것뿐이다. 그러나 아내의 멘털은 이미..
사실 아내는 남편에게 화를 낸 것은 아니다.
상황에 화가 난 것이다. 그러나 그 화는 남편과 공유할 수밖에 없는 것.
대화가 없던 부부는 화를 공유하고 있다.
남편은 오해를 한다.
"아내는 이 상황을 서둘러 해결하지 못하는 저를 원망하고 있어요. 그렇게 화를 내는 걸 보면 말이죠. 부동산 함께 계약할 때에는 그렇게 좋아하더니, 일이 잘못되자 저를 탓하네요. 처가에 손이라도 좀 벌려보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찼지만 차마 하질 못했어요. 이젠 아무것도 안 바래요. 그냥 아내가 제 마음이라도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의 생각!
'아내가 자신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저 정서적으로 아내의 배려를 원하고 있다.'
'함께 해결을 논의해 나가는 것이 부부 아닌가요'
부부관계는 끝을 향하고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 입을 닫고 있지만, 끊임없이 아내로부터의 이해와 지원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이 부부.
좋아질 수 있을까?
그에게 내가 했던 말은 이러하다.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시네요."
그는 내가 심리상담소를 방문하거나 부부코칭을 받아보라 권유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착각이라니.
그는 지금 아내와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지 않도록
아침과 저녁에 소소하게 아내에게 말을 걸고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했다. 물론 효과는 미비하고 행동도 크지 않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노력이 나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입장정리가 더 필요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서른 무렵 내가 겪었던 인생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재정문제는 악랄하고 악질이다. 카드 돌려 막기가 진행되는 순간 사람마음은 평온해지기 어렵다.
구겨진 얼굴은 배우자에게 상처를 준다. 배우자의 얼굴도 구겨버리는 행위다.
부부관계가 좋을 리 없다. 재정문제는 부부관계와 붙어있다. 거의 그렇다.
"분리하셔야 합니다. 분리해야 아내분과 더 나빠지지 않아요."
"네?"
"아내를 조력자로 두려고 하지 마세요. 아내는 당신의 부양가족일 뿐입니다. 이 사실을 뼛속까지 각인하세요."
부양가족(扶養家族)
: 처자나 부모형제 등 자기가 부양하고 있는 가족. 또는 부양하여야 하는 가족
한마디로 돌봐야 하는 존재.
'돌봄'
아내는 남편에게 돌봄의 대상이다.
당신에게 얹어져 있는 짐을 나누고,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동업자 이전에,
당신이 돌보아야 하는 부양가족.
그게 당신에게 아내라는 존재이다.
"그래도 살면서 파트너로서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지 않나요? 부부인데요?"
"그 시도가 실패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원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부관계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서로를 돌보는 것입니다. 먼저 돌보세요. 부양가족일 뿐임을 명심하시고 부양만 하세요. 문제해결 동업자로 보지 마시고 먼저 돌보셔야 합니다. 관계부터 회복하셔야 그다음이 있습니다."
"아..."
"큰 고난을 겪고 있는 중이세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난을 피하고 싶어 해요. 서둘러 해결하고 싶어 하죠. 힘드니까. 나눠 짊어지면 고난이 나눠질 거라 생각을 하기도 해요. 하지만 고난은 나눠 짊어져지지 않는 것입니다."
고난 앞에서 원인을 분석하고 잘잘못을 따지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나 알지 않나. 잘못이 없다면 원인도 없다. 그냥 벌어진 일이다.
고난이 왔다?
짊어지라. 감내하라.
상황과 사람 탓하다가 자칫 아무 관련도 없던 가정파탄, 직장해고 등으로 번지기 일수다.
그러니 스스로 감당하라.
숨이 차오르고 죽을 것 같은 고통이라도 인내해 보는 거다.
다른 소중한 것들에 상처 주지 말고.
나는 그렇게 고난 속에서 삼십 대를 보냈다. 처절하게.
먹구름이 걷히고 나서 알았다.
내가 잃은 것이 무척 많다는 것을.
하지만 감사했다. 내가 끝까지 지켜낸 것이 더 소중한 것들 이었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