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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Jul 27. 2023

이혼 만은 피해보자

부부관계의 결핍이 주선한 코칭과의 만남

새삼스런 얘기지만...


연애기간이 짧았다. 만나서 결혼까지 1년이 걸리지 않았다. 기혼자들은 알 것이다. 몇 년을 연애하고 이 사람이다 싶어 결혼했지만 연애생활과 결혼생활은 많이 다르다. 분명히 같은 사람인데 살아보니 다르다. 이미 살고 있으니 어쩔 도리도 없다. 배우자 교환 환불을 위해선 극단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A라는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했다고 여겼다. 결혼 후 시간이 지날수록 A가 아니고 B와 살고 있다.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많았다.  워낙 연애기간이 짧았으니 알아도 얼마나 알았겠는가. 사정은 아내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들 그런가?


첫째를 출산하고 자연스레 싸움이 잦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참 못난 남편이었다. 그저 좀 더 배려하고 아껴주고 살림 같이 하면서 몸빵(허드렛일)하면 되는 거였는데 나는 좀처럼 몸빵이 잘 되지 않았다.


앞서 내 겁쟁이 기록 중 한 부분(도망자)을 들추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얼마나 못나니였는지 한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부부가 이혼하는 데에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연애하고 결혼하는 데에는 오로지 한 가지 이유만 있다. 

그건 바로 '사랑'. 너무 사랑하니까. 


반대로 이혼하는 데에는 꼭 한 가지 이유만 들 수는 없다. 함께 살면서 문제는 늘 있고, 늘어나기 마련이다. 


결혼생활 초반부를 떠올릴 때, 아내가 나를 일컬어 자주 하는 표현이 있다.

'항상 날카롭게 신경이 서 있는 사람'     

100% 인정한다.


 대한민국 30대 가장이 회사를 그만두고 강의를 본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방향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의가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시에는 요즘처럼 창업이나 1인 기업에 대한 개념도 빈약했던 시절이었다. 


유튜브가 없어서 편히 알 수 있는 오늘날의 평범한 지식조차 습득이 어려웠다. 나는 강의를 하기 위해 지인 CEO로부터 소개를 받고 맨손으로 영업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항상 허기진 30대 가장


젊은 청년 비스므리한 가장이 살아보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걸 보고 강의일정을 만들어주신 고객 대표님들도 있었고, 잠깐 씩은 작은 회사에 들어가 본업을 바꿔보기도 했다. 규모가 있는 교육회사로부터 중부권 지사장 제안을 받아 일을 하기도 했고, 정말 어려웠을 때에는 고시학원 홍보 벽보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아르바이트한다고 가족을 부양할 정도로 수입이 생기느냐. 그렇진 않다. 

그렇다고 집에 있을 수는 없다. 

움직여야 불안함을 떨칠 수 있고, 바빠져야 허기짐으로부터 무감각해지니까.


부지런하게 움직이지만 결실이 없고, 늘 허기지며 준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심정으로 30대를 살아간다. 내게 일을 주시던 분들은 당시의 나를 이렇게 회상한다.


'열정과 패기로 일을 하고 일처리도 깔끔하지만 어딘가 결핍되어 있고 불안해 보였다.'

아내가 표현한 나의 날카로움에 대해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갓 결혼한 남편은 때론

갓 엄마 품을 떠난 어린 아들에 불과하다!

결혼 전까지 엄마 품에서 삶의 중요한 습관들이 만들여졌으니...

그저 함께 사는 여자만 바뀌었네.



 

못나니인 나는 아내에게 나의 결핍을 드러내며 내면의 불안을 비추는 일이 빈번했다. 어느 여자가 이런 남자를 신뢰하며 평생을 동행하겠는가. 그럼에도 아내는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소규모 교육사업을 열고 협업하는 과정에서 삐걱거리는 일들이 있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내게 좋은 경험으로 축적되었다고 믿지만, 못나니 아닌가. 

배운 것도 많지만 잃은 것에 골몰하는 내 모습이 나조차 싫었다.


하나 둘 사업을 해나가면서 망하지 않기 위해 날카롭고 꼼꼼하게 일처리 하는 것에 골몰했다.

이러한 모습이 가정에서도 종종 드러나곤 했다. 


아내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달콤함이 사라진 관계.



나는 그 와중에도 '진짜 변화를 일으키는 교육'을 개발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교육을 받는 등 분주한 생활을 이어갔다. 낮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연구했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생활하는데 아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구멍이 난 것 같았다. 


아내의 마음은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아내로부터도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큰 결단을 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되겠다 싶어 결단한 한 가지!

태어나 처음으로 심리상담소를 찾아갔다. 부부관계로 방문하게 되었다고 말하자 소장님은 내 부모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가 어떠했냐는 거다. 내 부모님은 화목하시다. 너무 사랑하시지. 


다시 내 어린 시절 부모와 나의 갈등에 대해 질문하셨다. 왠지 내 지난 과거 속에서 문제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시간 동안 내 문제를 찾아다녔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평소 안 하던 말들 이기도 했고. 

최대한 솔직하게 상담을 받고,  끝나자 나름 속이 후련했다.


일주일 후, 두 번째 심리상담소를 방문했다. 역시 문제 찾기가 이어졌다. 아내와의 갈등을 중심으로 대화가 진행됐다. 끝나자 역시 후련했다. 


그런데 내가 상담 이후에 대체 뭘 해야 할지 알 수는 없었다. 그저 나는 말하고 위로받고 마음 좀 녹이고 그 장소를 벗어나면 다시 현실이었다.


귀가하면 아내는 냉랭하고 내 마음은 지쳐있다. 심리상담소를 다녀왔다는 노력에 대한 어필에도 아내는 무반응이다. 


소장님은 아내와 함께 방문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아내는 한사코 싫다고 하였다. 나는 이대로 가정이 깨어질 까봐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






코칭과의 만남



그러던 중, 코칭에 대해 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진짜 변화를 일으키는 교육'을 찾기 위해 온갖 논문과 해외 자료를 찾던 나는 국내에도 20시간 코칭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참여하게 되었다.


이틀간 코칭을 배우며 코칭이 일반적인 교육들과는 방향 자체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 더 실전적인 대화기술이 담겨있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보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교육 중 강의를 하시는 코치님이 코칭시연을 보여줄 테니 코칭을 받아보고자 하는 사람은 나와보라는 거다. 


나는 코칭의 효과를 경험해야 했다. 코칭이 변화를 일으키는 교육인지 확인해야 했다. 무엇보다 없는 형편에 백만 원 넘는 돈을 투자했으니 나는 뭐라도 체험해야 했다. 


스무 명가량의 교육생들이 보는 앞에서 코칭을 받는 것은 담력이 필요했다. 내 속마음을 이야기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코치님은 나와 마주하고 앉더니 어떤 주제로 대화 나눌 것인지 질문하셨다. 몇 가지 대답을 했더니 그중 가장 중요한 주제를 다루자고 제안하셨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다 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긴 하지만 내게는 당시에 가장 절박하고 중요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코칭대화는 심리상담과 모양새가 비슷하다. 1대 1로 앉아서 대화 나누는 것도 비슷하고 내 말에 경청과 공감도 풍부하게 이루어진다.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다른 건 또 엄청 차이가 난다. 대화의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코치님은 내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내가 원하는 결과를 궁금해하셨다.




"저는 아내로부터 인정받는 남편이고 싶어요. 살고자 애쓰고 있다는 것을 존중받고 싶어요. 예전처럼 친구 같은 부부관계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이 말을 하자 코치님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나도 이 말을 하고 속에 일렁이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내 안의 진짜가 나온 것이다. 정말 원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부부관계가 회복되었으면 좋겠다는 주제로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남편으로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말은 내가 어디에 가서도 해본 적이 없는 표현들이 아니던가. 인정, 존중...


"그렇게 아내분으로부터 인정받고 존중받으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코치님의 이 질문에 나는 신이 나서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우선 제 마음이 회복될 겁니다. 회복되면 바깥에서 하는 일들도 즐거울 거예요. 시너지를 받아서 강의도 더 잘되고 일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겠지요. 기쁠 것 같아요"


"아내분이 선생님께는 어떤 존재인가요?"


이 질문을 받았는데, 눈물이 핑 도는 거다. 

말로 대답하기 전에 감정으로 먼저 대답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너무 소중하고 나를 이렇게 안달하게 만들 정도로 영향력이 큰 존재. 내 아내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대화의 몰입도가 커지고 나 역시 대화에 깊이 참여하고 있었다. 


대화 진행 중 문득문득 깊이 생각해야 답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었고 전반적으로 다운되는 내용은 아니었다.


아내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변화하면 가능성이 열린다는 형태로 대화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 깨달음도 사실 엄청난 것이었지만 더 큰 자각 포인트는 다름 아닌,


"아내분을 위해 아내분이 원하는 것으로 선생님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요"





나는 몸빵을 해야 했다. 아내가 내게 원하는 것은 집안의 허드렛일이었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을 내가 딱 맡아서 하면 아내가 좋아할 것 같았다. 나는 이틀간의 교육을 마치고 귀가하여 바로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을 실행했다. 계속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눈치였다.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행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서서히 관계가 회복되었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라는 뚜렷한 실행요소가 도출되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날 코칭 교육을 받으며 시연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내 가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코칭시연은 고작 20여분 정도였다. 20분 만에 내 인생은 터닝포인트를 만났다. 


코칭은 내게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결핍이 채워지고 불안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 역시 부부관계가 회복되면서였다. 코칭 덕분인 거다.


뜨거운 코칭과의 만남은 내 안의 결핍 때문이었다. 고작 20분의 코칭이 나와 내 가정을 살린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나 말고 필요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코칭이야 말로 내가 찾던 진짜 변화를 일으키는 교육으로 적합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며들어

나는 코칭을 더 깊이 공부해 보고자 마음먹게 되었다.








[에피소드 I]

아내와 헤어질 수 없었던 이유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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