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주립대학에 입학한 엄마!
5박 7일의 하와이여행에서 첫날과 둘째 날은 패키지여행이었다.
패키지..
표현자체가 개성이 없다. 자유를 박탈당한 채, 작은 버스에 이리저리 실려 다니는 상상.
삐죽거리며 별별 이상한 소리들을 아내에게 늘어놓았었다.
"장시간 비행과 시차 때문에 전혀 즐거울 것 같지 않아."
"엄청 피곤할 텐데 패키지가 웬 말.."
"아.. 나랑 정말 안 맞을 것 같아"
아내는 이런 나 때문에 입술을 몇 번이나 깨물었겠는가.
참 고쳐지지 않는다. 이 철없음. 까다로움.
실제로 예상과 전혀 다르지는 않았다.
나는 체력이 바닥난 채 아내가 사진 찍을 때만 억지로 미소를 짓는, 피곤한 한국아빠.
그 좋은 곳에 가서 그러고 있었으니, 사실 우리 여행은 시작부터 빨간불 들어왔던 거다.
귀국해서
당시에 패키지로 다녔던 곳곳을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아름다워서 기절할 정도인데, 내 몸이 힘드니 감각도 감흥도 떨어지더라.
떠나기 전 어머니가 해주셨던 감사한 말씀이 떠오른다
'여행도 젊었을 때 가는 게 좋은 거야. 잘 한 선택이다.'
아 더 젊었을 때 좀 다닐걸..
나는 여행을 왜 그렇게 사치라고 여기며 지내왔던가.
5년 전이었다면? 10년 전이었다면?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거다.
이틀간 작은 버스에 실려 다녔다.
내려주면 나가서 사진 찍고, 화장실 가고
먹으라면 먹고,
몇 시까지 나오라면 나가고..
아.. 난 정말 안 맞다.
이런 조직생활.
물론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큰 만용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데에 얼마 안 걸렸다.
지금은 패키지가 참 생산적이고 효율 높은 여행이라 말하고 다닌다.
미리 찾아보고 알아보지 않아도 되고,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효율성에
여행지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볼 수 있다.
별 고민 없이 말이다.
게다가 가이드가 해주는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재미난데..
이틀간 라디오처럼 듣다 보면 하와이를 독파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당시의 이틀 패키지는 어색하고 힘들었다. 그 당시에는 그랬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이틀이 하와이 여행 모든 시간들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보았던 여행지들 때문이 아니라,
만났던 사람들 때문.
우리 가족과 경로가 같았던 가족이 있었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보였던 부모님과 30대 초반의 따님이 팀을 이룬 가족.
우리와 같은 호텔에 패키지 경로도 같았다.
패키지 첫날, 점심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고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졸리고, 비염 돋고, 체력이 안돼서 빌빌대던 내 눈이 번쩍 뜨인 건 그분들과의 대화 때문이다.
"하와이에서 20년 살았어요. 여기 와이키키 말고 옆 섬에서요. 지금 같이 온 딸아이와 아들 모두 중고등학교를 하와이에서 나왔어요. 남편이 이십 년 넘게 기러기 아빠로 살았고요."
와!
"아빠와 함께 이렇게 하와이를 여행하는 건 처음이니까. 또 새롭네요.."
아빠분은 별말씀 없으시지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영예롭고 기쁘시겠는가. 이십 년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희생을 하시다니.. 어머님은 또...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어머님을 향했다.
돈 많다고 해서 그런 결정이 쉬운 게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게다가 하와이 아닌가. 자녀의 힘든 출세를 위해서라면 적합한 나라들 많을 텐데.. 하와이 말고..
"와! 정말 말문이 막히네요. 이십 년을... 어떻게 그런 엄청난 결정을 하실 수 있었어요?"
"오 호호..(얘 질문이 꾀나 진지한걸?) 한국사회는 치열하잖아요. 힘들고.. 하와이에서 순수하게 얘들 키운 거 같아요. 공부도 열심히 하긴 했죠. 결과도 좋고요."
자녀에게 풍요로움을 주고 싶어서.
이것이 가족이 모두 고생하며 이십 년을 보낸 이유.
나는 자꾸 어머님에게 시선이 머문다. 남편 없이 하와이에서 20년을.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고생? 별 고생 없었어요. 하늘에 돈 뿌리고 다닌 건 맞아요. 오호호.. 그렇지만 고생이라기보다 저는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교육시스템 잘 되어있어서 큰 걱정 염려는 없었어요. 오히려 저도 공부했어요. 얘들 공부시키면서 저도 하와이대학을 입학해서 복수전공 졸업을 했어요. 호호"
헐.
위인을 만났네.
공부하는 엄마의 진수를 본 듯.
한국이었다면 이 분 이렇게 공부하실 수 있었을까.
"타국에서 남편 없이 아이들을 이렇게 잘 키우신 것만으로도 엄지 척인데, 어머님의 시간도 유용하게 활용하셨네요. 정말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오신 면면들이 보여서 참 존경스럽습니다."
내가 보내는 진심의 인정에 어머님은 기분이 좋으신지,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 계속 웃으셨다.
여러 가지 알짜 여행정보들, 하와이에 대한 정보들을 얘기해 주시는 건 덤.
덕분이었다.
지겨웠을 법한 이틀의 패키지가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겨져 있다.
여행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90이다
패키지를 함께 했던 그 가족. 특히 어머님 생각이 종종 난다.
자연의 풍요 속에서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본인도 공부한다.
참 고생스러웠겠구나..라는 첫인상과는 전혀 다른 성찰거리들이 남는다.
보는 관점이야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어머님이 최선의 선택을 해오신 것이라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부모의 삶 속에 있는 결핍이 자녀의 삶에 투영된다.
본인들의 삶이 척박하고 힘에 부쳤으므로 자녀에게는 좀 넉넉하고 여유로운 환경을 주고 싶었을 거다.
환경세팅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더 말해 무엇하랴.
중요한 성찰 또 한 가지는,
하와이에서 어머님은 자녀들의 어머니로서 살면서
자신의 삶도 살아내셨다.
공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신 거다.
하와이대학 입학 전, ELA 3년 과정을 1년 반 만에 마치셨다고 하니,
말 다한 거다.
가장 잘하는 것을 하신 거다.
Key!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가장 잘하는 것을 한다.
귀국 후 인천공항에서-
헤어지며 보았던 그 가족의 넉넉한 미소가 종종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