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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Oct 23. 2023

성취와 인정에 대처하기

아픔과 기쁨의 양가감정

"아빠! 뭐 하나 알려줄까?"


다소 상기된 듯 보인다. 기분이 좋아 보이기도 하고..

냉큼 큰 아이의 에너지에 맞춰보기로 한다.


"뭔데?"


내용이 궁금하다기보다, 큰 아이가 기분 좋아 보이는 모습 자체가 좋다. 내용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내 아이의 기분이 좋으면 그냥 좋은 거다.





"아빠, 나 회장 될 거래."


"엉? 무슨.."


"회장! 고등부 회장"


교회 고등부를 말하는 거다. 딸아이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덩달아 나도 미소 짓는다. 아니 살짝 얼떨떨하다. 나는 회장이라는 단어가 입에 붙지 않아 다르게 표현한다.


"임원? 아.. 임원 중에 회장?"

(쓸데없이 돌려 말하기)


"응. 목사님이 그렇게 이야기하셨어."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덤덤하게 반응하기로 한다. 우리 딸 그 정도는 당연히 가능한 일이었다는 듯.


아이는 꼬맹이 시절부터 빠지지 않고 교회 주일학교의 제자훈련을 받아왔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바쁜 시간을 할애하여 제자훈련을 받고 있다. 사춘기가 한창이던 중학교 때에 역시 임원으로 활동했으며, 코로나가 창궐하던 때에도 예배에 빠짐없이 출석해 왔다.


어렸을 때에야 나와 아내의 권유에 의해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어디 권유한다고 듣는 시기인가. 딸아이 자발적으로 교회와 예배를 섬겨오고 있다. 다른 일은 몰라도 교회일은 FM이다.


처음 교회에 다닐 때부터 나는 기도해 왔다. 큰 아이의 성장에 예배와 말씀이 있기를. 주님께서 아이를 사용하시고 우리 가정이 주께 사용되기를..





감동이 가득한 순간에, 자꾸 엉뚱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엄마의 반응은 어땠어?"

(아내는 공부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고 염려하곤 했다)


"엄마도 축하한다고 말해줬어."


"진짜?"


"응. 엄마가 축하한다 그랬어."


신앙적 관점에서 일은 경사 중 경사다. 내가 그토록 기도해 온 응답이기도 하고, 우리 가문에서 고등부 회장이라니.. 당연히 일생일대의 사건이지.


그런데

아이와 나, 둘 다 엄마가 축하를 해줬다는 말에 더 감동하고 있었다. 아이가 자꾸 같은 말을 한다.


"엄마가 축하해 줬어"


내 앞에서 같은 말을 세 번이나 하고 있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뭉클하다.


  


큰 딸은 액티브한 활동가 기질을 갖고 있다. 학교와 교회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았고 과감히 도전하곤 했다.

'와. 성취욕이 나보다 더 강하구나.. 우리 딸.'

나는 종종 아이가 일을 완성도 있게 끌어가는 근성과 의지를 확인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동적인 큰 딸은 정적이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경험하곤 했다. 대체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스트레스, 염려들이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활동적이니 문제도 생기는 거다. 이게 참 맞는 말이긴 한데, 부모 입장에서는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보고 있기 힘들 때가 많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들이 스민다.


'꼭 회장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이런저런 관계들 속에서 겪는 상처들을 극복하며, 아이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기준을 잡기 위해 애써왔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인정을 얻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인정욕구!


만일 내 추측이 맞다면, 아이는 그동안 치열했을 거다.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잘했겠지만, 목사님과 선생님들께 기왕이면 더 좋은 모습으로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보았을 테고, 얽혀있는 친구들 관계 속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민하며 자신을 보았을 테고..


이게 내 모습인지, 저게 내 모습인지.. 대체 나는 누구여야 맞는 건지 계속 고민했을 거다


자신 있고 당당하게 나는 누구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는 비전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부단히 아이는 자신을 찾고 찾아다녔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누구다라고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작은 인정에도 뛸 듯이 기뻐했을 아이가 그려진다.


그리고 지금.

회장이 되었다며 미소 짓고 있는 아이의 해맑음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아이 속이 어땠을지,

많이 노력해 왔고, 힘들었겠다는 생각에 속이 꽉 막힌 듯하다.







엄마가 축하해 줬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내 마음을 아이에게 표현하기로 한다.


"아가! 아빠도 많이 기뻐. 네가 원했던 거잖아"


아프고 기쁘다. 사실 나는..


큰 아이는 나를 이렇게-

아프고 기쁘게 만드는 존재다.


"아빠, 나 때매 교회에서 쫌 유명해질 수도 있어!"


작고 잔잔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너 고등부 회장 됐다고 아빠가? 헐, 아빤 교회에서 조용하게 지낼래"







성취욕구와 인정욕구에 대해

나는 책을 써도 좋을 만큼의 전문성을 갖고 있다.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지, 어떨 때 사람은 삶의 기쁨을 얻는지 잘 알고 있다. 반대로 멀쩡한 사람이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거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도 알고 있다.


큰 아이에게 이번 성취와 인정은 보상과 회복의 의미로 다가온다. 아픈 마음과 기쁨이 동시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 그렇다.


유전적 측면에서 아빠인 나에게 있는 면면이 딸아이에게서 드러날 때 긴장이 되곤 하는데, 청출어람이다. 예상보다 더 잘 자라주어 참 감사하다.


언젠가 아이는 알게 될 거다.


사람들로부터 얻는 인정이 참 기쁨은 아니란 것을,

성취욕과 인정욕구는 진정 수위조절이 핵심이란 것을,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균형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나를 인정하는 그들 역시 부족한 인간일 뿐이란 것을..



하지만 당장 나는 아이를 통해 알아가고 있다.


나는 그저 사소한 자식일에 연연하는 아빠일 뿐임을,

아이의 진취적 사고와 도전이 부럽기도 한 아빠일 뿐임을,

할 말은 많아도 그 많은 양의 말들은 아이에게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앞으로도 양가감정(아프고 기쁨)이 자주 생길 수 있을 것임을,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그저 너라는 존재만으로 난 기쁨이 가득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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