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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Dec 11. 2023

어머니의 우울에 압도당하다

치매에 대장암 십여 년간의 아버지 병치례와 장례, 동시에 진행되었던 누나의 교통사고와 장애판정..

어머니의 우울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모든 일들이 결론이 났고, 끝났구나 싶은 3~4년이 지난 지금.

모진 시간들을 정면으로 받아낸 어머니는 우울하다.


보살펴야 할 가정이 있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고생들에서 틈틈이 배제되어 오곤 했던 아들-

밝고 순수한 아내를 만나 그보다 더 밝고 긍정적인 자녀들을 낳고 살아온 나의 세월. 


어머니의 지난 세월과 지나온 나의 세월은 어울리지 않아.

비슷한 듯 다른.. 두 세월은 좀처럼 섞이기 쉽지 않아 보인다. 


양쪽을 오가며 어머니께 죄송하고, 스스로에게 답답하면서도 

나는 전진했다. 내 가정을 알뜰히 챙기고자 노력했고, 전문성과 커리어에 있어 최고의 경험에 도전해 왔으며, 신앙은 내 삶의 모든 것이 되어왔다.


현재-

어머니의 우울은 업그레이드되고 진화했다. 


어머니와 마주 앉아 있으면

우울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나는 정면에서 어둠의 쓰나미를 맞이한다.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은 늘..

어둠과 우울이 나를 덮쳐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다. 


기도를 해보지만, 속이 텅 빈 느낌이다.

집에 도착하지만 차에서 내리기 어려울 만큼 

몸과 마음이 눌려있다. 

;

;


어머니를 뵙고 오는 날은

반나절에서 하루는 어김없이 힘이 든다. 가슴이 눌리고 풍요로웠던 정서가 자취를 감춘다. 

어머니의 우울이 나를 압도한다. 

이런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 아내와 아이들을 볼 수 없어서

털어내려고 안간힘 쓰지만...


나는 아직 이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을 모른다. 

벌써 몇 년을.. 그냥 맞이하고 있는 듯싶다. 


그럼에도 나는 어머니가 보고 싶고 궁금해서 매일 전화를 드리고 자주 찾아가 뵙고 싶다. 

막상 뵙고 나면, 특유의 어둠과 우울함에 사로잡히게 된다. 

반복되는 패턴. 

그러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굴레.


 



'누구도 아프고, 누구는 죽었고, 누구는 죽어가고 있다.'

어머니와 마주한 자리에서 이 이야기만 네다섯 번을 듣고 있다.


어머니는 노인이 될 준비가 전혀 안되어있는 상태에서 노년을 맞이하신 듯하다. 

아버지로 인해, 누나로 인해 잃어버린 세월들.


나이 듦과 늙어감에 아무런 준비 없이 간호만 해온 어머니는 

현재 노년의 삶이 낯설고 서러워,

..

..





어머니는 지역의 부유한 집안의 셋째 딸로 태어나 자라셨다.

배우지 않고 나아지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의 재력과 환경을 버리고

야인 같은 아버지를 만나 연애소설 같은 결혼 하셨지만, 

세상은 급변했다.


종종 드라마에서 근현대화가 이루어지기 전, 고을의 부잣집 모습을 보곤 한다. 

어머니의 풍요로웠던 유년시절을 답습하듯 

나는 한 장면 한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어머니를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에..







이런 글은 쓰지 말아야지, 쓰는 게 아니지.. 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마음이 정처 없다. 


부모님 세대의 아픔과 어둠의 밈이, 

애쓰고 힘들기만 했던 유전자가 세대계승 되지 않게 하려고

이름까지 개명했던 나다.


그러나 여전히 어머니의 우울 앞에 옴짝달싹 못하는 내가 안쓰러운지. 

실없는 웃음으로 에너지를 전환해 주는 아내로 인해-

이 어둠이 지속되지 만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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