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회사에는 각자의 역할 있다

다른 사람의 대한 평가는 되도록 하지 말자

벌써 한참이 지난 일이지만

후배가 신입사원 때 실장님(당시 이사님)께

이사님은 왜 하는 일도 없이 월급을 많이 받으세요?

라고 회식 자리에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당돌한 후배의 모습에 다들 웃고 넘어갔는데, 당시 왜 후배가 그런 말을 했을지는 충분히 공감이 된다.

회사에 10년을 다니고 나니 정말 1년 차엔, 5년 차에는 안보였던 것들이 보인다. 아마 15년, 20년이 되면 또 보이고 느끼는 것이 달라지게 될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래서 남에 대한 평가는 최소화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느낀다. 물론 누가 봐도 비이상적인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상대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신입사원 때는 초등학생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쉽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허드레 업무들 위주로 하다 보니,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고,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런 일들을 하다 보면 내가 이런 일을 하러 고생해서 이 회사에 들어왔냐 싶고, 더 나가서 나의 대학 생활까지 다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일조차 말도 안 되는 꼬투리로 혼이 나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고 다른 사람들은 중요한 일에 바쁜데 매일 혼자만 고군분투하는 것 같고 주변에 내 편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실장님이란 분은 매일 자리에 안 계시고, 오셔서 지시만 잔뜩 내리고는 또 사라지시니 약이 오를 법도 하다.

10년의 막내 생활에서 벗어나 드디어 작년부터 프로젝트 장을 맡게 되었다. 남들은 빠르면 대리 2-3년 차에도 맡는 프로젝트 장을 나는 과장 1년 차에 맡았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지금까지는 무엇을 하나 해도 사수님께 보고를 드려야 했던 10년의 나의 고생이 드디어 빛을 바란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이제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자유를 얻은 만큼 큰 책임감도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내가 다 감당해야 한다. 보직자가 아닌 실무 담당자는 열심히만 해도 된다. 일이 잘 안되면 욕만 조금 먹으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일에서 감당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우선 일의 양에 상관없이 이 프로젝트에 대한 것은 내가 다 감당을 해야 한다. 예전에는 내가 힘들거나 일이 생기면 내 일을 커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안 해 버리면 누군가는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다. 오히려 누군가가 안 해 버리는 일까지 내가 해야 한다.

두 번째는 결과물에 대한 책임이다. 나의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 그것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상사에게뿐 아니라 상대팀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를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봐야 하는 자료가 매우 많다. 꾸준히 공부하여 남들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달라진 점은 부사수를 챙기는 일이다. 사실 나는 일보다도 이 부분이 힘들었다. 지금 둘째가 아직 어려서 5시에 무조건 퇴근하겠다고 얘기를 해둔 터이다. 그러므로 나는 정말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은한 야근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후배에게 야근을 할 만큼의 일을 주고 있지 않은데,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아웃풋이 잘 나오고 있지 않다. 그럴 때면 답답하지만 잔소리하는 것 같아 꾹 참곤 한다. 그러나 그런 느낌의 나만의 느낌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후배의 부족한 아웃풋에 대한 질책이 나에게 오기 시작한다. 그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내 후배에 대한 평가는 곧 나에 대한 평가라는 것을 말이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팀플레이에가 되어야 하고, 후배 양성이 나의 업무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팀장님의 무게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오랜 막내 생활에 막내의 마음은 알 수 있지만 같이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더욱이 처음 나와 함께 일한 후배는 정말 누구나 탐내는 후배였다. 하나를 요구하면 열을 가져오고, 요구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것을 적재적소에 줄줄 아는 후배였다. 그래서 그런 것을 당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 하나를 요구할 때 하나를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어떤 후배는 하나를 요구해도 안 가져오고, 오히려 잃어버리고 오는 후배도 있다.

나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자신의 역할이 있다.

비록 내 관점에서 볼 땐 필요가 없어 보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생겼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 모르지만 괜히 나의 스트레스를 남을 비하하거나 다른 사람을 평가절하하며 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린 모두의 상황을 알지 못한다. 비록 그의 아웃풋이 내가 기대한 것만큼 나오지 않더라도, 그것은 다 사정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그만큼 구체적인 요구를 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얼마 전 목표를 세우기 위한 회의를 했었다. 나는 기획자의 역할로 조금은 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싶었다. 그러나 상대팀에서도 그 무리한 목표가 너, 나 더 나아가 우리 후배들 에게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 인상 깊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이 기업에서 제가 맡은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