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어서 차분히 앉아서 글을 쓸 수 없었고, 쓰고 싶은 주제의 글을 참 많았는데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그렇게 1년이 지나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얼마 전
셋째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외동딸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해 행복한 유년 생활을 보냈지만 조금은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결혼을 해서 내 가족이 생긴다면 아이들을 많이 낳고 싶다는 바람을 오랜 기간 가져왔습니다. 감사하게도 임신을 계획한 후로 아이들이 바로 찾아와 주었고, 임신 내내 살이 쪄서 힘이 들긴 했지만, 입덧도 심하지 않았고 조산기도 없어 큰 걱정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매일 회사를 출근하고 집에 올 때는 일부로 두세 정거장 전에 내려서 1시간씩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 선생님께서 매일 누워 있는 사람의 자궁경부 같다며 좀 더 운동하라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그렇게 건강한 자궁 경부를 가지고 있던 저는 출산도 첫째는 예정일 전날, 둘째는 예정일에 출산을 하였고 가진통조차 없었기 때문에 출산 마지막 날까지 일을 하다 출산을 하였습니다. 출산 역시 둘 다 자연분만을 하였는데 첫째와 둘째 출산 시 무통의 효과를 톡톡히 보아 첫째는 마지막 무통 없이 40분 정도 진통을 하다 출산을 했고, 둘째는 힘 한번 주었더니 출산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쉽게 임신과 출산을 겪었기에 회복도 매우 빨랐는데 출산 다음날부터는 일반 생활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당시 주변에서 다 말렸지만 무슨 자신감으로 저는 산후조리원도 가지 않았는데, 엄마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와 같이 지내다 보니 그렇게 힘들지 않았고 산후조리원을 가지 않은 것이 후회되지 않았습니다.
첫째 육아는 부모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게다가 아이가 크게 예민하지 않았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았습니다. 한 가지 힘들었던 것은 아이가 밤에 잠을 늦게 자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일하고 늦게 와도 아이와 오랜 시간 같이 있을 수 있었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저희 회사는 사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내 어린이집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에 대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급한 일이 있을 때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잠깐 아이를 부탁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원후 육아 품앗이도 가능했기에 첫째가 3살 정도 되었을 때는 육아가 많이 수월해졌습니다. 그렇게 3살 터울로 둘째를 출산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과 달리 둘째 육아는 많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육아가 처음이 아니었기에 좀 더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고, 둘째 역시 예민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둘째 육아가 수월해질 때쯤 셋째를 가져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상하지도 못했던 미국 주재원 발령을 받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 대한 오랜 열망을 가지고 있던 저에게 이 기회는 여러모로 너무나 감사한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셋째 임신에 대한 계획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세웠습니다. 미국에서 출산을 하면 산후조리원도 없고, 출산 휴가도 거의 없고,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도 없어서 걱정이라고 하지만 저는 첫째, 둘째의 임신과 출산을 통해 산후조리원 없이 회복하고 육아하는 법을 익혔고, 임신 당시에도 힘들지 않았지만 출산 후에도 바로 회복이 되어 재택근무를 한다면 꼭 출산휴가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했고, 흔히들 셋째는 발로도 키운다고 하여 육아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민 없이 행동에 옮겼고, 다행히 임신 계획과 동시에 셋째가 찾아와 주었습니다.
막상 임신이 현실이 되니 주변에 알리는 것이 자신이 없었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 왔는데 임신을 했다는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고, 이유 없는 죄책감이 생겨서 많이 불안했었습니다. 솔직히는 '미국 주재원 가서 출산을 했데'라는 말들로 사람들 입에 오르락 내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업무능력이 임신으로 인해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일이 벌어진 것이고 내가 원했던 일이므로 둘 다 완벽히 해내자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스스로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어쩌면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이라 혹시나 일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두려웠던 것도 있었습니다. 임신 초반에는 입덧도 심하고, 매우 피곤해서 일에 100% 집중을 하기도 쉽지 않았기에 더더욱 자신감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임신 중기부터 체력을 많이 회복하여 한동안 소홀했던 업무를 메우고자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약 30주 정도 임신 사실을 주변에 숨긴 채 출근을 하였습니다. 제가 살이 많이 찌긴 했는데, 다들 제가 힘들어서 살이 찐 줄 알았지 임신을 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하였습니다. 출산 후에 주변에 소식을 알렸을 때 몇 명은 30주쯤 의심스럽긴 했는데 물어볼 수 없어서 못 물어봤다고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33주 정도 되니 임신을 숨기기 어려울 정도로 배가 불러왔고, 그때부터는 되도록이면 재택근무를 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최소화하였습니다. 이때까지 숨겨왔더니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더욱 얘기를 하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어차피 재택근무를 한다면 출산하는 것도 모를 텐데 아예 임신과 출산 모든 것을 숨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 용기를 가지고 36주 공식적으로 주변에 임신 사실을 알렸습니다.
돌이켜보면 뭐가 그렇게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어 알리지 못하고 임신기간 동안 불안하고 조심스럽게 지내왔는지 아쉬움이 남지만 임신 당시에는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다행히 회사에서는 제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무척 축하해 주었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출산 휴가를 8주나 받게 되어서 마음 편히 출산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출산 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상생활이 가능한 회복은 한 달 정도 걸렸고, 이것저것 처리할 일들이 많아서 출산 휴가를 감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 참고로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출산 휴가가 필수는 아닙니다. 메사츄사츠주는 출산휴가를 출산 후 1년까지 부모 (엄마/아빠 둘 다 가능)가 8주까지 요구할 수 있고 유급일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회사의 경우 8주까지 유급이고 추가 4주는 무급으로 쓸 수 있었는데, 저는 8주만 쉬었습니다. 메사츄세츠주의 경우 무급의 경우 주에서 보조를 해준다고 하는데 많은 금액은 아니라고 합니다.
비록 셋째 임신 역시 아무런 조산 증상이 없었고 컨디션도 너무 좋았지만 내심 37주 후에는 아이가 나오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셋째 역시 예정일까지 소식이 없어서 결국 예정일에 유도분만으로 낳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섯 가족으로 완전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셋째는 이제 85일이 되었습니다. 셋째는 정말 너무 귀엽습니다. 셋째는 우는 것도 귀엽고, 웃는 것도 귀엽고, 자는 것도 그저 귀엽습니다. 지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이 셋째를 낳은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