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버스가 끊긴 노르망디의 어느 겨울 저녁, 나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한없이 걷고 있었다. 지나가던 푸조 승용차가 멈췄다. 한 남자가 차장을 열고 사정을 묻더니 일단 자기 차에 타라고 했다. 그는 자기 집으로 데려가 따뜻한 커피와 쿠키 같은 것을 내왔다. 그는 자기 가족들도 여행을 좋아하고, 특히 아시아에서 현지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노르망디 토박이인 그는 버스가 끊긴 시간에 배낭을 메고 걷고 있는 나의 곤란을 금세 이해하고 공감했던 것이다.
이런 환대는 어떻게 갚아야 할까. 언젠가 읽은 여행기에서 나는 답을 발견했다. 저자는 북유럽을 여행하던 중에 버스를 타게 되었는데, 그제야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당황하는 그녀 대신 현지인 할머니가 요금을 내주었다. 나중에 갚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에게 갚을 필요 없다, 나중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갚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그렇게 아침이 되었고, 다행히 독일 공항이 정상운영이 되며, 저희는 예정된 시간에 독일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부푼 꿈을 가지고 프랑크 프루트 공항에 도착을 했고, 바로 제 학교가 있는 Bruchsal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Bruchsal 은 하이델베르크 근처에 작은 도시였습니다. 8개월간 사용할 짐이 들어 있는 큰 캐리어를 들고 곧 학교에 도착할 꿈에 부풀어 있던 저는 기차에서 마지막 몽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이델베르크까지 3 정거장 정도 남아 있는 역에서 갑자기 독일어로 안내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역이 환승역도 큰 역도 아니어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기차에 타 있던 사람들이 다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내리는지 의아해하는 저에게 갑자기 동양인으로 보이는 한 여자분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만일 그곳에서 그 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무슨 일인 거예요?"
"다음 역에 폭발물이 설치되었다는 정보가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확인 전까지 역이 폐쇄된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인가요?"
"저도 독일 온 지 3년이 넘었는데 이런 일 처음이에요. 독일에는 오늘 오신 건가요? 어디까지 가세요?"
"저는 Bruchsal까지 갑니다."
"여기서 택시 타면 돈이 꽤 나올 텐데, 어디 갈 곳 없으면 저희 집에서 하룻밤 묵으실래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 되는 일인가 싶을 정도로 영화 속에나 나오는 일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테러범이 역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의심으로 역이 폐쇄가 되었고, 그 기차에 한국인 언니가 있었고, 그 언니가 본인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라고 제안을 준 것입니다.
당시에는 너무 당황했고, 갈 곳도 없어서 일단 알겠다며 따라갔습니다. 제 성격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워낙 당황했고, 의지할 곳이 없어서 순수하게 따라갔던 것 같습니다. 언니는 저녁도 사주었습니다.
저에게 너무도 큰 호의를 베풀어 준 언니는 독일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다른 악기 반주를 하는 것을 전공한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큰 히트를 친 오케스트라 드라마를 본 직후라 저도 언니와 즐거운 대화를 하려 여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특히 그 드라마에서는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솔리스트가 되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려서, 다른 악기의 반주를 전공하는 언니가 조금은 의아스러웠습니다.
"언니는 솔리스트가 되고 싶지 않으세요?"
"왜 모든 사람들이 솔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내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반주가 없으면 다른 악기들이 빛을 보지 못하잖아."
당시에만 해도 승부욕이 강해 1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저에게 언니의 그 한마디는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던 저희는 밤이 늦어 잠이 들었고, 그다음 날 언니는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딱 한 가지 부탁을 하였습니다.
"한인 교회를 다니는데 한번 와 주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언니와 헤어지고 저는 교환학생 생활에 익숙해지느라 언니와의 약속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음식이 그리웠고 주말에 특별한 일정이 없던 저와 제 친구들은 한인교회를 방문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갔던 교회에서 언니는 무척이나 반가워했고, 저희는 마음껏 한국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가던 길, 언니는 제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었습니다.
"와줘서 너무 고마워"
언니가 쥐어준 것을 보니, 저와 제 친구 4명의 왕복 기차료보다 훨씬 큰 금액의 돈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바쁘다는 핑계로 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도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저희는 더욱 바빴고, 저희 학교에서는 꽤 먼 곳이라 교통비가 부담이 되어 더 이상은 언니를 만나지 못했고, 그 후 저 책을 읽기 전까지 약 10년 간 언니의 존재에 대해서 잊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메일을 찾아보니, 다행히 언니와 주고받았던 메일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일을 보냈습니다. 답장이 올지 안 올진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고마워한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저에게 버킷 리스트가 생겼습니다.
배낭여행을 온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그들이 하지 못할 경험을 하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기회가 오지 않았고 제 용기도 부족했네요. 코로나로 언제 여행이 가능해 질지 모르겠지만, 저도 언니처럼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고마움으로 남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