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비 Jul 30. 2020

마사지 덕후의 단상

엄마의 시간이 필요해

만일 200만 원이 있다면 당신은 마사지를 받을 것인가? 명품백을 사겠는가?


20대 초반 미용실에서 읽었던 잡지의 칼럼이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계속 기억이 남는 칼럼입니다. 지금이야 200만 원으로 살만한 가방이 많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15년 전이니 그땐 200만 원이면 웬만한 것은 살 수 있는 때입니다. 스무 살의 저는 당연히 가방을 사고 싶었지만, 기자님은 마사지를 선택하겠다고 하셨던 칼럼이었습니다.


주변에 부자 언니가 있었는데, 언니는 겉으로는 부자라곤 생각이 안들 정도로 옷이나 겉치레에는 큰돈을 쓰지 않는 수수한 이미지였습니다. 그러나 먹는 것, 바르는 것, 배우는 것, 마사지 등에 대해서는 돈을 전혀 아끼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면 돈 아까워."라고 얘기를 해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았던 명품에 관심이 많던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는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5년 후 25살, 저도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회사 입사한 기념으로 친구와 집 앞에 있는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곳에 같이 가서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받은 마사지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10회권을 끊고 주기적으로 꾸준히 받았습니다.

"넌 어린애가 그렇게 마사지받는 것 괜찮아. 중독된다?"라고 엄마가 걱정 어린 얘기를 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상과 같은 생각이 들었고, 특히 마사지를 받고 나면 이상하게 만성 피로가 풀려, 그다음 또 기분 좋게 일을 시작할 수 있어서 점점 져 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런저런 운동을 많이 하던 20대 에는 이상하게 운동을 하면 몸의 이곳저곳이 아파서 마사지로 풀어주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혼을 했고, 임신을 했고 두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정말 정신없는 몇 년을 보내고 나니 지금은 마사지샵 근처도 자주 못 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명품에 관심이 많던 나의 20대는 어디로 간 것인지, 요새는 "옷은 편하고 건조기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최고이며, 가방은 가벼운 것이 최고이다."라는 생각에 더 이상 겉모습에 신경을 쓰는 것도 옛날 일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옷 좀 사라"라고 하기도 하지만, 아들 둘을 아침에 등원시키고, 하원 시키고 놀이터에서 놀리는데 이쁜 옷은 더 이상 좋은 옷이 아니었습니다. 한참 돈 쓰는 재미로 살던 20대 중반 친한 언니에게 "언니 저 나중에 씀씀이 줄이기 어려워서 결혼하기 겁나요."라고 얘기했더니, 언니가 "여자들은 결혼하고 육아하면 많이 바뀌게 된데 괜찮아."라고 해줬는데, 저는 그 말이 딱 맞게 절약하려 노력한 것도 아닌데 생각지도 못하게 들어가는 돈이 워낙 많아서 쓸 엄두도 안나거니와 돈을 쓰는 것들에 신경을 쓸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인지 저를 위해 쓰는 돈은 먹을 것을 제외하곤 거의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없지만 몸이 찌뿌둥하니 꿩 대신 닭처럼 마사지 용품을 사모았습니다. 요가 링, 폼롤러, 마사지볼부터 인터넷에 핫하다는 것은 꼭 사서 써봤습니다. 남편은 "어제 SNS에서 봤던 물건들이 집에 다 있네?"라고 할 정도로 새롭다 하는 것은 꼭 써봤습니다. 그런데, 마사지를 정말 좋아하는 저도 마사지 용품들은 몇 번 쓰고 나면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정말 어깨가 뭉쳐 신경이 쓰일 때 마사지볼, 요가 링 정도는 쓰곤 했지만 다른 제품들은 거의 방치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안마의자 등 마사지 관련 시장이 커진다 하더라도, 사람이 직접 해주는 것을 대체하긴 어렵겠구나, 기술발전이 되더라도 마지막까지 사람의 손길이 남는 곳이 있다면 아마도 마사지 산업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 내기는 정말 하늘의 별따기이지만 시간이 나면 저는 제일 먼저 마사지샵으로 달려갑니다. 얼마 전 거의 두 달 만에 애들이 일찍 잠에 빠진 어느 주말 남편이 "얼른 마사지 다녀와"라고 해주어, 몸이 찌뿌둥하지 않음에도 마사지를 받으러 달려갔습니다. 7시 전까지만 타임 할인을 해 주는데, 집에서 출발할 때 시계를 보니 6시 50분이었습니다. 매번 할인된 가격으로 받다 보니, 어떡하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7시 전에는 어떻게든 도착을 해보겠다는 생각에 달려가니 6시 56분쯤 도착했습니다. 단골 사장님은 저의 마음을 읽으셨는지 "오랜만에 오셨네요. 7시 전에 오셨네요. 할인가로 받으실 수 있습니다." 라며 기뻐해 주셨습니다. 이게 뭐라고 꽤 뿌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궁금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마사지가 좋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왜 이렇게 까지 좋아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2시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생깁니다. 애들이랑 있다 보면 저만의 시간을 내기란 어렵거니와 시간이 나더라도 스마트폰을 잡고 있거나,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무엇인가를 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2시간을 멍하니 비몽사몽으로 있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특히 스마트폰이란 것이 안 하고 싶다가도, 괜히 궁금해서 눌러보게 되고, 한번 인터넷의 바다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고급의 정보를 얻게 된다거나 그렇기보다는 계속되는 갈증만 있을 뿐 좋은 정보를 얻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엄마들이 집에 있으면 쉬는 것이 더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 것처럼 계속할 일이 보입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먼지들은 왜 그렇게 잘 보이는지, 정리할 생각도 없던 서랍장은 왜 갑자기 정리가 하고 싶어 지는지 그냥 있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마사지를 받는 2시간은 정말 다른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특히 스마트폰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 방안은 새로운 공간에 들어온 것과 같이 오롯이 저에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저만을 위한 시간입니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내는 것이 다양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사지가 왜 좋은지 모르겠다는 친구는 대신 미용실을 좋아합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친구의 미용실과 저의 마사지는 같은 속성의 것 같았습니다. 그 시간 저만을 위한 시간이 생깁니다. 그 시간 잠도 자고, 몽상에 빠지기도 하지만 순수하게 저만을 위한 시간입니다.


셋째는 피로 회복입니다. 그렇게 2시간을 푹 쉬고 나면 당연히 기분도 좋아지고, 체력도 좋아집니다. 저희는 침대방에 매트리스를 3개 깔아 놓고, 아들 둘과 저 남편 다 같이 자고 있습니다. 이제 애들과 수면 분리를 해야 할까 생각만 하고 있지만, 아직도 둘째가 밤에 자다 깨서 제가 없으면 찾는 둥에 같이 자고 있습니다. 한 번은 둘째를 2층에 재워 놓고, TV를 본다고 1층 소파에서 잠이 들었던 어느 날, 갑자기 무거운 기분이 들어 일어나 보니 제 위에서 둘째가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같이 자는데, 어떤 날은 첫째 재우다 같이 잠들고, 어떤 날은 둘째를 재우다 같이 잠들기도 합니다. 아니면 둘 다 재워 놓고 혼자 스마트폰을 보다 잠들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매우 건강하지 못한 수면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애들 재우다 잠이 드니 불을 켜 놓고 자기 일쑤라 중간에 깨서 끄기도 합니다. 첫째는 그래도 얌전히 잠이 들지만, 둘째는 잠도 일찍 안자거니와 재우려면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재운다고 같이 누우면 제 배 위에 올라가서 점프를 하기도 하고, 안경을 뺏어서 가져가 버리기도 하고, 콧구멍에 손을 넣기도 합니다. 그래도 피곤하니 그 상태로 잠이 들 때도 많습니다. 또 어떤 날은 일어나 보니 아들의 다리가 떡하니 제 배 위에 있기도 합니다. 그런 날은 온몸이 찌뿌둥합니다. 그런데 마사지샵에 있는 침대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정말 불편해 보이는데, 누우면 세상 편합니다. 어떨 때는 눕자마자 잠이 들 때도 있습니다. 마사지 침대를 집에 들여놓고 싶다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면 너무나도 개운합니다. 아마도 혼자 양질의 수면을 취했기 때문에 피곤이 완전히 풀리는 것 같습니다. 잠깐을 자고 일어나도 푹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더 잘 풀린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더욱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결국 제가 원하는 것은 "마사지" 뿐이 아니었습니다. "저를 위한 양질의 휴식 시간" 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뭉친 근육까지 풀어주면 땡큐입니다. 그게 제가 마사지를 좋아하는 이유였습니다. 애들 때문도 있지만 코로나 때문에도 마사지를 받으러 못 가는 요즘입니다. 작년만 해도 정말 마사지가 받고 싶은 날은 4시에 퇴근해서 마사지받고, 애들 하원 시킨 적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코로나가  저의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얼른 마스크와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전에 마사지 말고도, 저만의 양질의 시간을 내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힘내자 4월의 마지막 월요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