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잡고 있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계속해서, 타닥타닥.
나는 마음이 초조하다.
엄마 집으로 가는 길, 빨간불 신호대기 중.
아 진짜,
꼭 내가 가야 돼?
나 진짜 바쁘단 말이야!
엄마가 세 번째 전화를 했을 때는
목소리가 좀 과하게 다정했다.
그건 옆에 누가 있다는 뜻,
외숙모 아니면 이모겠지.
‘딸, 집에 갈 거지이?
수도 옆에 있는 꽃밭이랑 화분들은 호스로 뿌리면 되구우~
뒤뜰에 있는 블루베리 나무랑
방울토마토 화분에는
한 양동이씩 듬뿍듬뿍 줘야 해잉. 알지?
호호호홍
엄마? 엄마는 잘 있지~~~’
내가 묻지도 않은 대답을 혼자 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그래, 나는 친정 나들이 간 엄마를 대신해
화분에 물 주러 엄마 집으로 간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는 화분들이 넘쳐났다.
화분뿐만 아니라 노지에도 계절별로 형형색색의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났다.
결혼을 하고 나서 베란다에 놓아둔 화분들이
고향이 그리운 듯 시들해지면 엄마 집 앞마당에
슬그머니 가져다 놓았었다.
그러면 화초들은 거짓말처럼 건강해져 있었다.
정말 신기하고 대단한 엄마의 달란트 인건 인정.
하지만 이건 아니지,
나도 할 일이 쌓였단 말이야!
엄마 집에 도착해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앞마당에 화분이 가득하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까…
하나하나 차례대로 물을 주기 시작한다.
텅 비어있는 엄마 집에 혼자 들어와 꽃물을 주고
있자니 분주했던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이제 뒤뜰로 가볼까.
양동이 가득 물을 담아 펭귄처럼 뒤뚱뒤뚱 걸어
뒤뜰에 가보니 내 키만 한
블루베리며 방울토마토 나무들이
우쭐우쭐 자라 있었고,
화분 옆에도 들쑥날쑥 여러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어떤 화분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꽃들이
함께 심겨 있기도 했다.
제 멋대로 자라난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우리 어무니, 참 대단하시네.
잠깐 서서 꽃구경을 하고 있는데
지잉-- 지잉--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꺼내보니 이 꽃들의 엄마, 우리 엄마다.
딸, 잘 줬니?
아이고 꽃이 이쁘다궁?
애는 뭐 그런 소릴 호호호홍
혼자 저만치 달려 나가는 엄마표 대화의 기술.
엄마, 근데 못 보던 꽃들이 많이 생겼네.
뒤뜰에 말이야, 다 어디서 났대?
아 그거?
나도 잘 모르겠다.
돌아서면 새 꽃이 막 자란다.
아마 어디서 소문 듣고 찾아오는가 벼~~
호호호홍
엄마의 웃음소리는 아득히 멀어지고
엄마의 마지막 말만 내 옆에 멈춰 선다.
나는 잠깐 상상을 한다.
햇살마저 고요하다.
씨앗들이 영글 무렵
그 작고 까만 생명체들도
앞으로 살길들을 고민한다.
엄마품을 떠나 좋은 땅에 안착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미래가 불안하기만 하다.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던 착한 바람 아저씨가
어떤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려준다.
얘들아,
조 아래 붉은 지붕 집에 혼자 사시는 아주머니가
계시는데, 일단 그 집 담장만 넘어서 들어가면
너흰 안전할 거야.
그 집은 앞마당에도 뒤뜰에도 꽃이 가득해,
모두 건강하단다.
아주머니가 며칠 집을 비우실 때는
대신 와서 물을 주는 딸도 있어.
운전은 괴팍하게 해도 꼼꼼히 물을 잘 주더라.
햇살은 여전히 고요하다.
바람이 나를 조심스레 흔든다.
나는 웃으며 다시 일어선다.
얘들아, 언니 왔다.
물먹자.
걱정 말고 천천히들 마셔.
어느 여름,
엄마의 꽃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