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닌 Mar 19. 2022

코로나에 걸리니 이제야 알겠네

우리 집도 당했다. 그렇게 소독 티슈를 달고 살고 사람 없는 곳을 피해 다녔지만 결국 피하지 못했다. 첫 아이의 어린이집 선생님이 코로나에 확진되면서 두 아이부터 나까지 꼼짝없이 집에 갇혔다.


코로나 격리 5일째. 몸이 좀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그렇지 못하다. 코가 꽉 막혀 겨우 숨을 들이쉬고, 모든 걸 토하듯 기침을 하면 다시 목이 아파온다.


아이들이 작은 몸으로 바이러스를 견뎌내는 걸 지켜보는 건 또 다른 고통이다. 첫째야 별 증상 없이 넘어갔지만 둘째는 온몸이 펄펄 끓었다. 해열제를 먹여도 40도 가까운 열이 떨어질 줄 몰랐다. 꼬박 3일을 열과 싸워야 했다.


태어나서 이토록 열이 심한 적이 없었다. 이제야 16개월인 아이는 쌕쌕 가쁜 숨소리를 냈다. 첫째도 열 경기를 했던지라 더 불안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119에 전화했지만 걱정만 더 커졌다. 음압 병상이 꽉 차서 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이 없단다. 나중에도 열이 안 떨어지고, 심하게 처지면 연락하라지만 그런다고 해도 사정이 나아지진 않을 듯했다. 구급차를 타고 병상이 날 때까지 병원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 때문이다. 이마저 위안으로 삼아야 할지, 난감했다.


다행히 둘째 아이의 열은 4일차 되는 새벽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얼굴도 한결 편해 보였다. 걱정을 한시름 놓았지만 몸은 말이 아니었다. 한 방에 아이와 나 둘 뿐이니 아이를 돌보느라 내 몸이 뒷전이 됐던 탓이다. 긴장이 풀리니 온 몸이 더 쑤셔대고 으슬으슬 춥기까지 했다. 없는 입맛에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약을 털어 넣었다. 약 기운이 돌자 좀 괜찮아졌지만 힘이 없어서인지 앉아있는 것조차 지쳤다. 코로나에 걸려도 별 증상 없이 넘어갔다는 지인들의 말이 딴 세상 얘기 같았다. 그 말을 믿고 안심할 게 아니었다. 정말이지 힘들고 아팠다.


혼자였으면 약도 못 챙겨 먹겠다 싶었다. 코로나19 전화 상담이 가능하다는 병원 목록에서 가까운 병원을 찾고 비대면 진료를 보려는데, '대리인'이 올 수 있는지 물어왔다. 두 곳에 전화했는데 둘 다 그랬다. 환자들이 몰려 의사와 바로 전화 통화는 어렵고 대리인을 보내면 그 사람을 통해선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남편마저 코로나에 걸렸다면 또 다른 병원들을 찾아보며 계속 전화를 돌려야 했겠지. 그나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혼자이면 아플 수도 없는 이 현실이 씁쓸하다 못해 아렸다.


코로나에 걸려보니 안 보이던 것들 보였다. 정부나 지자체가 내놓은 대책이 현장에선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집에서 제일 먼저 확진된 첫째가 확진 문자를 받고 하루 있다가 보건소로부터 격리 안내 문자를 받은 건 그나마 나았다. 둘째와 나는 확진된 지 3일째 되는 날 시청으로부터 재택치료 기간과 비상시 연락처 등이 적힌 메신저 알림을 받았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어플인 '국민비서 구삐'도 재택치료 유의사항을 안내했는데, 소아든 성인 확진자든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알림을 보내왔다. 두 딸과 내 것까지 똑같은 톡 알림을 세 개나 받은 셈이 됐다.


우리와 같이 확진된 시어머니는 60세 이상이라 코로나 치료제 처방 대상이지만, 결국 받지 못했다. 보건소에 처방 여부를 물어보니 지정 병원에서 전화가 갈 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확진된 지 나흘 만에 전화가 온 병원에선 증상을 듣고 그냥 '일반 감기약'을 지어줬다. 듣고 보니 제주에는 이미 먹는 코로나 치료제가 동이 났단다. 만일 남아있었더라도 다 아프고 나서야 약을 받는 희한한 상황이다.


구태여 누군가를 탓할 의도는 없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일선 현장에는 지금도 쉼 없이 일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잘 안다. 그 노고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세심한 방역 행정이 아쉽다. 정부나 지자체의 발표와 현장이 심히 동떨어져선 불신만 키운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