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 희망

by 하지은



유치원때부터인지,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지만, 당시 경험 그대로를 반영하기 위해 국민학교로 표현합니다.)때부터 인지 정확히는 기억 나지 않지만, 장래희망,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적어오는 숙제들이 종종 있었다. 가정통신문 같은 종이에 적어서 제출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나 확실한 것은 국민학교 때 장래 희망을 적어가면, 교실 뒤 게시판에 각자의 꿈을 이쁘게 붙여 놓았었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내가 어릴 때만해도 대부분 친구들의 꿈은, 선생님, 의사, 과학자, 대통령 등이었다. 혹은 예체능 분야로 피아니스트가 많았던 것 같다.

'의사'가 되고 싶어요.


당시에 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유치원에서도 병원놀이를 할 때 가장 재미있었다. M&M 초콜릿을 약처럼 싸서 친구에게 주고, 청진기로 진찰을 하는 내 모습. 항상 다른 역할은 하지 않고 의사를 했던 것 같다.


하지은 꿈: 피아니스트


헌데 국민학교 때 교실 뒤 게시판에 붙은 나의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유치원을 4살 때부터 다녔고, 그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10살차이 나는 언니가 있었는데, 언니 또한 피아노를 배웠었다. 언니는 콩쿨대회에 나갈정도로 열심히 했고, 언니가 피아니스트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언니는 피아니스트를 포기했고, 그것이 나에게로 옮겨졌다. 예상하는 대로 엄마의 바램이 포함된 꿈이 나에게로 온 듯 했다.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던 나는 ‘의사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야. 공부도 잘해야 하고, 집에 돈도 많아야 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어린나이에 이런 말을 듣고 바로 수렴을 했던 것도 참 이상하면서도 웃기다. 그렇게 해서 내 꿈은 생활기록부에 피아니스트로 공식적인(?) 기록이 남았다.


피아노는 중학교때까지 계속 배우다가 그만 두었다. 피아니스트가 되기에 나의 피아노에 대한 열정은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치원에서 피아노 배울 때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것을 봐서는 어지간히 큰 상처였던 것 같다. 높은 음 ‘도’를 찾지 못하면 선생님에게 혼날까봐 악보를 보는 척 하면서 눈이 잘 안보이는 듯 눈을 비비며 눈물 나는 것을 숨켰고, 그 와중에 교실 한켠에서 저녁 식사 하시는 선생님들이 나를 보지는 않을지 눈치도 보는 멀리 플레이를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내가 안쓰럽다. 하지만 만났던 피아노 선생님들이 모두 그렇게 엄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중학교때까지는 순조롭게 배우고 실력을 쌓아왔었다. 하지만 결국 내 꿈이 아니었기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요즘은 가끔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다. 하지만 취미로만. 음악을 즐기고 내가 누군가에게 연주해주고 싶을 때가 종종 있는데, 지금이라도 조금만 연습하면 가능할 것 같다. 몸이 기억해 줄 테니.


왜 인적성도 잘 알지도 못할 때부터 학교는 장래희망을 적어오라고 하고, 꿈을 적어오라고 하는 것일까? 어떤 직업이 무슨일을 하는지도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데 그것을 일찍부터 정하라고 하는 것일까? 또 그 선택에 부모님들의 의견이 아예 개입되지 않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


당시 나는 그 꿈을 이루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압박도 있었던 것 같다. 매년 피아니스트로 장래희망을 적어 내며, 왠지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누군가에게 핀잔을 들을 것 같은 느낌. 다른 친구들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늘 그러한 감정이 한켠에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살면서도 여러 번 변하고, 나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이 계속 찾아오는데 굳이 그때부터 꿈을 딱 정해 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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