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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10. 2018

내가 꼭 아줌마란 법은 없다

상대방을 가두는 시선에서 벗어날 것

동네 기반 직거래를 할 수 있는 중고거래 어플에서거래하던 시절, 시간을 잡는 게 큰 일이었다. 종종

“애 유치원 하원시간이라서요~^^”

낮 시간이 안 된다고 하면, 돌아오는 답.

“일하시는 거에요?”


어플의 주 고객은 30대 엄마여서, 나 역시 30대 엄마로 규정되는 말을 들었다. “일하시는 거에요?”에서는 “가정 주부 아니고 일 다니시는 거냐”는 뉘앙스가 풍겼다. 나는 학생이라고요! 굳이 말할 필요성은 못 느껴서 잠자코 있었지만. 그러다보니 언젠가 나도 나와 대화하는 익명의 누군가를 ‘아줌마일 거라’고 은연중에 규정했다. 말투로 규정해버리면 안 되는데, 직거래를 나갔다가 요가매트를 사러 온 남성분에게 당황, 말투로 짐작치 못한 또 다른 남성분에게도 당황. 그 때 번뜩인 생각. 그들도 나를 이렇게 규정했구나. 말투만 보고 성별을 알 수 있는 게 아님에도 나는 당연히 상대방을 여성일 거라 생각했던 것처럼, 나에게 ‘하원’ ‘일’ 등의 단어를 꺼낸 분도 나를 당연히 아줌마일 거라 규정한 거다. “이 사람은/이 상황에서는 당연하게 이래야지.” 하는 건 없는데.  


얼마전에는 졸업을 하기로 했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돌아오는 답은, “어디 된거야?” 말인 즉슨, 취업이 된 거냐는 질문이다. “아니, 그냥 글 한 번 써보려고.” 이 답장을 꾹꾹 눌러 쓰는데 망설였다. ‘취업이 일반적인 길이니깐 그렇게 물어봤겠지.’ 하는 생각임에도 살짝 당황한 건 나 역시 내가 선택한 길이 일반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범대생이라고 말하면 “임용고시 볼거야?”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배민 마케터 장인섭씨의 책 <마케터의 일>에서 저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다. 주변에는 아이폰 쓰는, 40대, 직장인들이 가득했기에 실제로 아이폰은 5명 중 1명, 40대는 인구의 5%,인데 말이다. 저자는 어느 평일 낮, 만원인 지하철을 타고 “아니, 이 사람들은 대체 이 낮 시간에 회사 안 가고, 학교 안 가고 다 나와 있는거야?” 생각한다. 직장인이 아니라 개인사업자, 프리랜서들도 많음에도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가득하다 보니 세상을 그렇게 인식하는 거다.


학생은 학교에 가고 졸업하면 취업해야 하고, 낮에는 회사를 가고, 동네기반 중고거래 어플은 30대 애 엄마만 쓰라는 법은 없다. 10대든 20대든 학교를 안 다닐 수 있고, 졸업하고 사업을 하든 예술을 하든 내가 가고 싶은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낮에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도 있지만 백수도 있고, 휴가인 사람도 있고, 프리랜서도 있다. 중고거래 어플은 남자도, 아이도, 대학생도 쓸 수 있다. 가지고 있는 틀을 벗어야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내 블로그에 통계치를 보면, 60대 남자, 10대 여자 다양한 연령층이 본다. ‘대체 왜 내 블로그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독자가 읽고 싶다는데, 관심 안 가질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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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에 쓴 글을 다듬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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