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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09. 2018

낚시 광고

지난 4월 조금 특별한 경험을 했다. 홈쇼핑 CF에 출연한 것. 사연은 다름 아닌 3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 부모님이 하는 낚시 사업에서 이번에 TV 홈쇼핑 광고를 내기로 해, 친구가 그 광고에 딸로 출연한다고 했다. “신기하네.”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1-2주 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혹시.. 나랑 TV 출연 같이 할 사람?”


낚시라기에 실내 스튜디오에서 찍는 광고일 줄 알았고 30만원이라는 나름 파격적인 아르바이트 비에 해보겠다고 했다. 망설였지만, 신기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서울에서 찍는 게 아니라 군산, 심지어 1박 2일 촬영인데 첫 날 새벽 4시에 출발해야 하는 탓에 친구네 집에서 그 전날 밤 자고 같이 출발한 2박 3일 일정이 되었다.


가뜩이나 대본을 보니 난 당연히 친구와 같은 “딸” 역할일 거라 생각했는데 나의 역할은 다른 가족의 30대 엄마. 맙소사, 25살에 애 딸린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니! 1박 2일동안 촬영, 기다림, 촬영, 기다림.

심지어 선상 낚시 장면을 드론으로 촬영하는데 드론이 물에 빠졌다나 같은 장면을 그 다음 날 재촬영까지.


“웃어주세요~” “맛있게 회 먹는 표정!”

각종 연기와 억지 웃음으로 점철된 촬영을 마쳤다. 몇 주 뒤 친구가 방송 날짜가 나왔다며, 영상도 나왔다며 알려주었는데 의식적으로 날짜를 망각했다.

인터뷰나 영상은 내 생각보다는 잘 나왔지만, 굳이 TV로 확인할 필요까지야.


값진 것 역시 있다. 처음으로 촬영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사회생활’을 간접 경험했으며 시간이 아주 많아 한 배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무술 감독에 연기자로 일하고 있는 그는 어디선가 본 인상의 소유자로 (얼굴이 익숙한 느낌), 자기를 ‘배우’라고 소개했다. 연기 이야기를 할 때 누가 봐도 “나 좋아하는 일 하고 있소.”라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다른 팀이 촬영을 하고 있어, 우리 팀은 텐트 치고 캠핑 도구들과 함께 대기중이었다. 배우도 촬영 감독님의 콜로 배우가 아니라 보조 스태프로 촬영을 도와주러 왔다. 그런데 텐트 앞에서 캠핑 의자에 앉아 있으니 그 모습이 영락없는 ‘힐링캠프’ 방송이다. 그는 자기의 인생이야기와 우리가 쏟아 붇는 각종 연기에 대한 질문을 받아주었다.


“연기 너무 어려워요!”

야외 낚시 신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원래 어려운 거라고, ‘몰입’을 해야 한다고. 그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심지어 손가락 하나를 움직여도 왜 내가 이 손가락을 움직이는지 알아야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하단다. 그게 쉬우면 연기 아무나 하지 않겠냐고.


그 순간이 너무 영화의 한 장면같아 그 배우님과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폰은 저 멀리 있고 그냥 그 순간이 내 기억 속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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