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성이 만든 기적, 그 한 그릇의 팥죽처럼
“팥죽은 먹었어?
휴대폰 벨 소리에 눈을 떠보니, 어머니입니다.
동지팥죽은 꼭 먹으라며 신신당부하십니다.
절기마다 먹어야 할 건 꼭 챙겨 먹으라는 어머니.
멀리 사는 딸 걱정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전화 한 통으로라도 딸을 챙기려는 그 고마운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냥 넘기려다,
아쉬운 마음에 며칠 전 인터넷으로 팥죽을 주문했습니다.
오늘 오후, 부랴부랴 새알심을 빚고,
후루룩 끓여 내었더니 금세 그럴싸한 동지팥죽이 완성됐습니다.
한 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벌써 한 대접이 사라졌습니다.
하루 종일 걸렸던 죽 쑤는 일이, 지금은 삼십 분이면 충분합니다.
예전에는 동지를 새해라 여겼다지요.
한 해의 탁한 기운을 갈무리하고,
새해의 기운을 맞이하는 전환의 시기였다고 합니다.
동짓날이면 집집마다 붉은팥을 고르고,
정성으로 새알심을 빚어 팥죽을 끓였습니다.
붉은 기운은 액운을 막아주고,
정성 들인 하얀 새알심은 마음의 때를 걷어내 준다지요.
그 한 그릇의 팥죽은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이자,
가족이 함께 나누는 작은 잔치였습니다.
어릴 적 기억이 아른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날이면, 집안 곳곳이 빨간 팥물로 도배되곤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지저분해 보일 법도 한데,
그땐 으레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왜 그토록 팥죽에 정성을 들였는지,
왜 온 집안에 팥물을 뿌렸는지.
세월이 흘러 내가 직접 팥죽을 끓이는 나이가 되고 나서야,
그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향한 그 깊은 사랑을.
동지가 다가오면,
밤마다 할머니와 함께 팥 자루를 소반에 쏟아붓고
잡티를 골라냈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지만,
실한 팥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일은 은근한 재미가 있었지요.
그렇게 고른 팥은 새벽녘,
깨끗이 씻어 커다란 가마솥에 정성스레 담겼습니다.
할머니께선 이른 새벽부터 아래채 부엌에 큰 가마솥을 걸고,
오전 내내 정성껏 팥죽을 끓이셨지요.
아궁이에 솔가지가 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마루에 앉아 새알을 빚었습니다.
작은 손에 마음을 얹어 한 알, 두 알...
그렇게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우주를 빚어냈습니다.
태어난 새알들은 둥근 쟁반 위를 여러 번 오갔다가,
하얀 반죽이 거의 다 사라질 즈음이면 뜨거운 팥물 속으로
저마다 몸을 던졌습니다.
팥물과 하나 된 새알들은 뜨거운 시간을 견디고,
마침내 온전한 팥죽이 되어 밥상 위로 돌아왔습니다.
새해의 기운을 품은 채,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덥혀주었지요.
버거운 노동 끝에 먹는
가마솥 팥죽 맛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요?
장작불은 쉴 새 없이 타오르고,
인고의 시간이 흐르면 연기 따라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을 감쌌지요.
초겨울 냉기마저 물리게 하는 그 따뜻한 향기,
그보다 더 깊은 온기가 또 있을까요?
이윽고 스르릉 솥뚜껑이 열리면
하얀 김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습니다.
울 할머니,
제일 먼저 작은 소반에 팥죽을 뜨고 성주신께 정성스럽게 올렸습니다.
그리고 늘 그랬듯,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먼저 한 그릇씩 내어드렸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따끈한 팥죽을 함께 나눠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할머니께선 큰 대접에 팥죽을 담아
온 집안 구석구석을 돌며 팥물을 흩뿌리셨지요.
붉은 물을 내치듯 뿌릴 때면,
험한 귀(鬼)들도 혼비백산 달아났을 것만 같았습니다.
찬 바람 부는 날,
아래채 아궁이의 무쇠솥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를 바라보며
마루에 앉아 호호 불어 먹던 그 깊은 맛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습니다.
나이 수만큼 새알을 챙겨 먹으며,
난데없는 먹부림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땐 삶이 참 고단했지요.
사랑도, 관심도 늘 모자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의 먹부림은 정성과 온기를
온몸 가득 채우고 싶었던 간절함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사라져 가는 그 정성을 다시 지어,
삶을 한 번 더 따뜻하게 끓여 내고 싶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면, 우리 생활문화도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4~50년 전만 해도 집에서 콩나물을 키우고,
절구 찧어 떡을 빚고,
큰 가마솥에서 죽을 쑤어 먹었지요.
지금은 맛과 편리함을 앞세운 간편식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음식은 다양해지고 손쉽게 즐기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너무 쉬워진 일상생활 덕에 그 많던 정성은 갈 곳을 잃은 듯합니다.
담장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
예전의 가족은 담장 안에 머물렀지만
지금의 가족은 담장 밖에서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인연들입니다.
그러니 그 정성을 더 크게 세상과 나눠야 하지 않을까요?
담장 밖에서 넘어온 팥죽을 데우며
감사의 마음을 담장 밖으로 실려 보냈습니다.
내 시간과 노력을 대신해 준 이들의 노고를 떠올리며,
그들의 번창을 기원했습니다.
꽁꽁 얼었던 팥죽이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
얼어있던 정성도 다시 살아나는 듯했지요.
이제는 우리 각자의 삶을
따뜻하게 데워 나누어야 합니다.
한 그릇의 팥죽처럼,
지금 우리에겐 마음을 지필 작은 솥 하나가 필요합니다.
삶을 데우는 건
늘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에 매일 불을 지피는 작고 꾸준한 정성입니다.
그렇게 천천히 쌓인 마음은
어느 날, 평범한 날들을 기적 같은 순간으로 바꿔 놓곤 하지요.
지금 우리 삶엔 그런 온기가 절실합니다.
그러나 마음 없는 욕심과 계산만이
빠르게 퍼져가는 세상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오늘,
팥죽을 데우며 나의 마음을 함께 녹여보려는데...
세상은 여전히 차갑고 어지럽기만 합니다.
정성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기적이란 말만 허공을 맴도는 요즘,
올 동짓날은
유난히 더 서늘하게 가슴에 내려앉습니다.
기적을 만든다는 음료가 최근 논란의 중심에 올랐습니다.
사람들의 불안을 틈타 조용히 스며들고,
욕망을 부추기며 빠르게 퍼져갔지요.
지금은 무엇인가에 매달려 기복 할 때가 아닌 듯한데도,
불안과 욕심은 여전히 새로운 얼굴로 고개를 듭니다.
세상에 지식이 아무리 넘쳐나도,
두려움과 탐욕 앞에서는 어찌하지 못하나 봅니다.
액운 쫓던 팥죽 뿌리기조차 낡은 풍습이라며 사라져 가는 이 시국에,
불로유 같은 생뚱맞은 믿음은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동짓날,
붉은 팥물 대신, 희멀건한 얼룩을 남겼습니다.
경복궁 담벼락의 낙서는 그 위에
또 하나의 씁쓸한 흔적을 더했고요.
음료와 만병통치약? 낙서와 예술?
그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믿음과 책임의 선도 모호해집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대.
그러나 어떤 믿음이든,
그 끝에 남은 선택의 책임만큼은
스스로가 온전히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손수 데운 팥죽 한 그릇에
헛된 기적 대신, 진심을 담아봅니다.
이 한 그릇이,
다가올 날들을 다시 따뜻하게 지펴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