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새봄을 입다

by 지은담
combined_spring_mother_image.jpg 굽은 허리 위로도 봄은 옵니다. 조용히 피어난 마음 하나, 이제는 제 방식대로 살아보렵니다.

묵은 계절을 벗고

우수도 지났건만, 봄비는 좀처럼 그칠 줄을 모릅니다.

이토록 길게 내리는 걸 보니, 씻어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은 듯합니다.


지난 설, 친정 부모님은 평생 이어오시던 제사를 마무리하셨습니다.

어릴 적엔 매달 제사를 지냈셨지만, 세월이 흐르며 명절과 조부모님 기일 정도로 줄어들었고, 올해부터는 모든 제사를 접고 설날 하루, 천제로 대신하기로 하셨지요.


그날 아침, 어머니는 처음으로 제사상 앞에 나란히 서서 하늘을 향해 조용히 마음을 올리셨다고 합니다.

“하느님, 그리고 조부 조상님들, 그동안 이 자손들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제사를 설날 천제로 대신하겠으니, 그리 허락해 주십시오.”


평생 부엌을 지키며 제사 음식을 준비하셨던 어머니.

어머니는 정작 제사상 앞에 함께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야 부엌과 제사상 사이, 그 먼 거리가 가까워졌습니다.


천제는 대자연과 조상, 부모에게 감사드리는 예식입니다.


형식보다 마음을 담는 데에 중심을 두며,
함께 모여 감사하고 화목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이처럼 간결하고 진심 어린 방식이,
오히려 제사의 본뜻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긴 세월 제사상의 굴레에 갇혀 지내신 어머니를 떠올리면

마음 한켠이 늘 무거웠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2년 전 추석을 앞두고

조심스레 제사를 접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신 적이 있습니다.

몇 차례 말씀하셨지만, 아버지는 별다른 반응 없이 듣고만 계셨지요.

어머니는 그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이셨고, 그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명절 전날,

아침상을 물리고도 제사 음식을 준비하지 않자

아버지는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셨습니다.

“이번부터 제사는 모시지 않기로 한 것 아니냐”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불호령을 내리며

제사 준비를 강하게 재촉하셨지요.


그날 어머니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은 채

결국 뜻을 접고 다시 제사상을 차리셔야 했습니다.

50여 년 만에 처음 꺼낸 목소리는

그렇게 조용히 침묵 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쉼 없이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새겨진 어머니의 손

희생은 의무였고, 말은 금기였던 시대,

어머니는 그렇게 집안의 일꾼으로만 존재해야 했던 억눌린 세대였습니다.


오랜 노동으로 굽어진 허리, 손가락 마디마디는 할미꽃처럼 곱아들었고,

늘어가는 약봉지만큼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으셨지요.


대를 이을 자손도 끊어진 집안에서

제사는 이미 명분과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고집을 내려놓지 못하셨습니다.


생전 조부모님께 특별한 효를 보이신 적도 없던 아버지.

그런데 왜 그토록 제사에 집착하셨을까요?

늦은 효심이었을까요, 묵은 죄책감이었을까요,

아니면 점점 희미해지는 가장의 권위를

끝내 지키고 싶었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요?


우리 집은 유서 깊은 가문도, 넉넉한 살림도 아니었습니다.

손님이 북적이지도, 값진 나눔이 풍성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제사를 고집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또 한편으로는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제사는 우리 집에서

가부장적 문화 속 남성 권력의 상징이었고

여성의 낮은 위치를 매번 확인시키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께 제삿상 차림의 고됨보다 더 힘들었던 건,

그 모든 것을 당연히 여겨야 했던 억압의 굴레였을지도 모릅니다.


손가락 관절염이 심해져 더는 제사 음식을 준비할 수 없게 되자,

그제야 아버지도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어머니께 그간의 마음을 여쭈었더니 짧은 말씀이 돌아왔습니다.

“인자 다 편하다”


가슴에 얹혀 있던 큰 돌덩이를 내려놓은 듯

어머니의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기운이 도셨는지, 생전 잘하지 않던 말씀도 꺼내셨습니다.

“새 옷 좀 사야겠다.”

그 한마디에, 낡은 계절을 벗고 새봄을 맞이한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산뜻한 새 옷과 가방을 보내드리며

이제 묵은 것은 훌훌 털어내고

맑고 고운 것들과 벗하시라 인사드렸습니다.


낡은 관습에 머무르며 사시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스마트폰으로 새로운 지식을 챙기며 차분히 내면을 채워가십니다.

변화는 결국, 새로운 배움에서 시작되더군요.


오래 묵은 굴레를 벗고

맑은 기운을 두르고 선 어머니를 보며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새 삶이

지금, 다시 시작되고 있음을.


오랜 침묵을 지나

마침내 어머니는 자신의 생을 되찾으셨습니다.


굽었던 허리가 펴지고,

닫힌 입술이 열리는 순간,

어머니의 봄은 조용히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봄비는 거침없이 내립니다.


맑게 씻긴 그 길을 함께 걷겠습니다.

다시 흐르기 시작한 어머니의 삶 곁을,

고요한 바람처럼 함께 걷겠습니다.



어머니의 봄

나는 늘 부엌에 있었지.

자식들 굶기지 않으려고,

조상님들 노여움 사지 않으려고,

매일같이 쪼그려 앉아, 불을 지피고 또 지폈단다.

아무도 모르게 허리가 굽어가도,

그게 내 몫이라 믿으며 묵묵히 견뎠지.


하지만 언제부턴가 몸이 말을 듣지 않더구나.

이제는 나도 조금씩 쉬고 싶어져.


평생 짊어져 온 이 등짐,

이제는 좀 내려놓고 싶어 졌단다.


설날 아침,

하늘을 향해 두 손 모아 마음을 올렸지.

‘이제부터는 제 방식대로 살아보렵니다.’

그 말을 속으로 되뇌며, 나는 나를 살짝 꺼내 보았단다.


네게 말했었지.

나도 새 옷을 입고 싶다고.

오래 묵은 냄새가, 이젠 나도 싫어졌거든.

맑은 봄 햇살 같은 웃음을 입고 싶었어.

그 마음을 알았는지, 너는 새 옷과 가방을 보내주었지.


봄 심술이 여전히 고약하지만,

어느새 나는 좀 느른해졌고,

그늘진 마음에도 볕이 들기 시작했단다.

정말이지, 봄이 왔더구나.


딸아,

내 봄이 이렇게 시작될 수 있었던 건

네가 곁에서 믿고 기다려주었기 때문이야.

나도 알고 있단다.


그래서,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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