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를 꺼내려던 순간, 오래된 기억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니, 어제가 무슨 날인지 아나? 내 생일~. 가시나, 또 잊었제”
“아이쿠야! 미안.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그땐, 남편의 사업 실패로 집도 예금도 모두 잃고, 아이들과 친정에 얹혀살던 때였습니다. 그날 아침, 내 지갑엔 천 원짜리 두 장. 애들에게 우유 한 통도 사주지 못해 속이 타들어가던 날이었죠. 그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 생일은 잘 보냈고?”
“애들 아빠 야근 수당 모아 진주 목걸이 사주더라고. 괜찮은 데서 밥 먹고, 집에 와서 와인도 마셨어...”
하루를 세세히 읊던 그녀는 이내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근데 나만 두고, 어떻게 혼자 방에 들어가 자버리냐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위로해야겠단 생각은 있었지만, 그 순간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멍하니 수화기를 든 채 서 있었습니다.
전화를 끊고도 오래 마음이 찜찜했습니다.
뭔가 서운한 듯도 하고, 한편으론 어이가 없었습니다.
‘뭣이 문제여, 그런 남편이라면 나 같으면 업고 다니겠구먼.’
내 사정을 뻔히 아는 친구가 왜 그런 얘길 했을까.
질투인지 죄책감인지 모를 감정이 뒤엉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순간엔 친구의 속마음보단 내 아픔이 더 컸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의 눈물이 진심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자상한 남편이라 기대가 컸던 만큼, 그만큼 실망도 깊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아주 사소한 무심함에도 무너질 만큼 외로웠던 순간이 있었겠지요. 당사자만 아는 아픔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지칠 대로 지쳐,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일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그녀의 아픔 앞에서도 나는 오직 나의 결핍만 들여다보고 있었던 겁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느낀 서운함은 친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내 탓이었습니다.
늘 나를 지우고 상대에게 맞추며 끌려다녔던 나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도 쉽게 뒤흔들릴 만큼 여전히 약하고, 고집스러웠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한 일로 울음을 터뜨린 친구나, 그만한 말을 듣고 마음에 생채기를 남긴 나나 별반 다르지 않았지요.
모든 건, 내가 무심히 자라게 둔 가시덤불 속에서 내가 찔린 일이었습니다. 고통의 원인은 친구가 아니라, 늘 나를 방치하고 소외시켜 온 내 삶의 방식이었지요.
결국 탓해야 할 대상은 누구도 아닌, 그런 삶의 환경을 직접 만들어온 나 자신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 창업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치고 문제를 겪으며 내 상식이 얼마나 좁았는지, 고집이 얼마나 셌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이었습니다.
아픔의 이유도, 갖춘 것과 부족한 것도, 분노하는 지점과 견디는 힘까지 각기 달랐습니다.
누가 더 힘들고 덜 힘든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했습니다.
고통은 각자의 삶에서 생겨난 것이고, 그걸 느끼는 깊이와 무게 또한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삶의 경험도 살아온 방식도, 감내해 온 시간도 모두 달랐으니까요.
고통은 언제나 내가 만들고, 또 내가 감당해야 할 내 몫의 감정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 순간, 내 오랜 방황이 멈추었습니다.
얼마 전, 아들에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엄마도 나름 잘 살아왔다고 여겼는데, 요즘은 참 많이 부끄럽더라.”
“열심히만 하면 다 될 줄 알았지.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어.”
일을 하려 들면 몸부터 탈이 나고 자신감도 점점 쪼그라들었습니다.
겨우 벗어난 족쇄에서 자유로워졌나 했더니, 이번엔 내 몸이 또 다른 족쇄가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영웅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힘든 일도, 다들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는 아이들 앞에서 잔소리도 쉽지 않습니다.
내 삶 하나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부모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자꾸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 있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그런 나에게도 다행히 할 일이 생겼습니다.
바로, 지난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일입니다.
갱년기를 맞은 지금, 어쩌면 말 그대로 인생을 고쳐 살아야 할 시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집에서 나는 “저 항우 똥고집”이라 불렸습니다. 혼이 나도 내 잘못이 아니면 좀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던 아이였고, 그 고집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했습니다.
세상과 타협할 줄 몰라 늘 속을 끓였고, 그렇게 속을 삭이며 살다 보니 사람들과 멀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집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무기력한 집순이로 살아가고 있었지요.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웠던 것도, 변화를 두려워한 몹쓸 고집 때문이었습니다.
“난 그냥 하자는 대로 따를게.”
의견을 내지 못했던 건, 부족한 실력을 들킬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지요.
배우기를 거부했던 고집, 그게 내 삶의 많은 불행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습관처럼 굳어져 쉽게 떨어지지 않았던 그 고집.
결국, 고집과 이별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사람과 환경을 받아들이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내 오래된 습관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경청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상대의 말을 듣는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늘 분주했고, 생각은 꼬리를 물며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지요.
몇 년을 의식적으로 연습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중, 상대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몰입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내 머릿속은 고요했고, 오직 그 말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관계는 한결 편안해졌고 내 고집은 자연스레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경청은 내 안의 소음이 잦아들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물러선 그 자리에 상대의 말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제야 대화에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경청의 바탕에는 상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태도는 결국 나에게도 풍요로 되돌아왔습니다.
매 순간이 그러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나는 이제 막, 경청이라는 비법서의 첫 페이지를 열었을 뿐입니다.
하루를 버터기도 힘들었던 내가, 요즘은 아침마다 시간을 내더 인성 강의를 듣고, 온라인 콘텐츠로 세상을 둘러봅니다. 짧은 그 시간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공부의 눈으로 일상을 보니, 굳어있던 몸과 마음이 시나브로 풀려가며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엔 “그러면 안 돼.” 하던 내가, 요즘은 “뭐 그럴 수도 있지.” 합니다.
공부는 학창 시절에만 하면 된다더니, 순 거짓부렁입니다. 배우지 않으면 넘어지고, 깨닫지 않으면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더군요.
살아내기 위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공부는 평생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엊그제, 책상을 새로 들였습니다.
아이들 알레르기를 이유로 오랜 시간 식탁에 스스로를 묶어두었지만, 이제는 부엌데기를 벗어나 나를 위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책상에 앉은 지금, 나는 나를 다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고집을 내려놓고, 생각을 고쳐나간 순간부터, 내 인생은 다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삶은 단숨에 바뀌지 않지만, 오늘 하루 나를 바꾸려는 작은 시도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죠.
어딘가 고장 났던 내 삶도, 이렇게 하나씩 수리 중입니다. 그렇게 괜찮아지고 있습니다.
일상 공부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나를 붙잡고 있던 건 상황이 아니라, 끝내 놓지 못했던 내 안의 고집이었습니다.
그 고집 하나로, 나는 참 많은 기회와 소중한 인연들을 흘려보냈습니다.
놓쳐버린 진심만큼, 내 인생은 허해졌지요.
틀렸다에서 다르다로 생각을 바꾸기까지, 인생의 반이 걸렸습니다.
이것만 알아도 남 탓은 줄고 세상살이는 한결 편해지는데...
그놈의 고집이 참 무섭습니다.
알고 나면
알고 나면 무섭지 않아
알고 나면 무릎 꿇지도 않지
알고 나면 끌려다니지도 않더라
모르면 겁이 나
모르면 무릎 꿇어야 하지
모르면 끌려다닐 수밖에
알고 나면 용기가 절로 일어나지
아는 만큼 뭐든 이루어내는 실력자가 될 거야
모르면 겁쟁이가 될 수밖에
몰라 두려운데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두려워 멈춰버린 시간 동안
너도 네 자욱도 세상에서 잊혀 가지
세상은 쉬잖고 나아가기만 하거든
기다려주는 친절함 따윈 없어
모르면 말이야
꽤 많이 슬퍼질 거야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모르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