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이 마음

3월의 감상(삼월이의 봄, 늦깎이 삼월이의 고백)

by 지은담

남의 삶에 힘을 쏟던 그 시간 동안, 내 삶은 조금씩 메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걸, 너무 늦게야 알았지요.

삼월이의 봄


삼월이는 요즘

들뜬 마음에

매양 설렁설렁입니다.

왜인지 들썩들썩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하네요.

봄햇살 따사롭고 찬 공기도 물러갔으니, 오늘은 재 너머 순이네 집으로 놀러 가겠다고 저리 안달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런! 큰일입니다.

할무이는 청소나 하라시며, 꼼짝도 말라고 하십니다.

곧 영동할매 오신다고요.

어쩌면 좋을까요?

삼월이 삐죽 나온 입술이 방문을 뚫고 나갈 기세입니다.


난 영동할무이 싫어!, 오시면 뭐 해.

맨날 공부 많이 했냐?, 올해는 뭐 하고 잡냐?

꼬치꼬치 캐묻기만 하시고... 아이 참.

영동할무이 잔소리 싫은데...

같이 오는 큰 엄마는 또 어떻고. 찬바람만 쌩~ 불고 지나가. 으으... 무서워서 싫단 말이야.

나갈 테야! 오늘은 꼭 나갈 테야!


어쩌지요? 삼월이 기어이 대문 밖으로 줄행랑을 치네요.

할무이 아시면 혼날 텐데 말이지요.


동구밖에 이르니 찬바람이 휘잉~.

신나게 달리던 삼월이, 어어! 하는 순간, 철퍼덕!

조그만 고무신 신은 발이 움푹 파인 물웅덩이에 빠졌습니다.

동그란 무릎에 바알간 진달래꽃이 피었지요.


삼월이 두 눈에 금세 눈물이 핑!

무릎이 아파서일까요? 아니요, 아니에요.

새 원피스 치마가,

엄지손가락 두 마디만큼 찢어져 버렸거든요.

순이한테 자랑하려고 입고 나왔는데... 이걸 어쩌죠?


바알간 무릎은 쓰리고,

고무신 속 시린 발은 곱아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앞산만큼 무거워졌습니다.


갑자기 휘~잉!

매운바람, 삼월이 등을 힘껏 밀고 지납니다.

영동할매 오셨나 봐요.


엉엉... 할무이, 나 엄마한테 혼날 거야...

그냥 청소나 하고, 호두알 깨 먹으면서

가만히 영동할무이 기다릴 걸 그랬어...


잔뜩 혼이 난 삼월이

그날 밤, 봄 몸살이 찾아와

무진장 아팠더래요.


가물가물, 잠들기 전 삼월이는 생각합니다.

내일은 내 동생 사월이, 얼룩 물든 치마에

분홍 분홍 예쁜 꽃 수놓아줘야지.


오월엔 모내기하겠지.

엄마는 또 국수 삶으시려나?

얼음 동동 미숫가루는, 내가 가져가야지!

돌아오는 길엔, 논두렁 옆 덤불에서

맛난 산딸기 한가득 따올 거야!


유월 함박꽃 피면, 서울 큰고모 오시겠지?

이틀 밤 자고 나면, 고모 따라갈 테야!

서울 구경이 제일 좋아!

칠월엔...

팔월엔...

Zzz

삼월이는 어느새 꿈나라로 떠났습니다.




늦깎이 삼월이의 고백


“늦게 피어도 괜찮다, 내 봄은 지금부터다.”


그 삼월이의 마음, 어쩌면 지금도 내 안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삼월이 일지도 모릅니다.

계획보다 마음이 먼저 달려가고, 그 마음을 쫓다 보면 어느새 무릎에 멍이 들어 있곤 했으니까요.

어릴 적, 몸이 유난히 허약했던 오빠는 가족 모두의 관심 아래 있었습니다.

나는 그저 ‘딸’이었고요.


사흘이 멀다 하고 오빠는 혼절하곤 했습니다.

한밤중, 열에 들떠 헛소리를 중얼거리던 오빠를 들쳐업고

부모님은 신발이 벗겨진 줄도 모른 채, 어둠 속을 뚫고 그 먼 의원까지 달려가셨습니다.

날이 밝아 돌아오면, 오빠 손엔 어김없이 새 장난감이 들려 있었지요.


오빠는 자라는 내내 병원 가는 날이 학교 가는 날보다 많았고,

집안의 모든 걱정은 그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나는 오빠가 싫었습니다.

아픈 몸으로 나를 겁먹게 만들고, 내가 받아야 할 사랑까지 가져가 버리는 것 같았으니까요.


보물찾기 놀이 중 몰래 열어본 할아버지 방 벽장 속 궤짝엔 오빠만을 위한 양과자가 가득했습니다. 창고 구석에도 오빠가 좋아하던 라면이 박스째 숨겨져 있었고요. 늘 오빠 손에 먹을거리가 들려 있었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마음엔 그게 참 불공평했고, 오래도록 서러운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오빠가 새총 놀이하다, 뒤꼍에 말려놓은 콩을 죄다 담장 밖으로 날려도 혼나는 건 늘 나였습니다.

심부름도, 쇠죽에 쓸 여물을 써는 작두질을 배우는 것도, 늘 내 몫이었지요.


오빠가 시를 쓸 때, 나는 일손을 도와야 했습니다. 시키는 일을 마지못해 하다 보니, 속으로 불평만 늘어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오빠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두 해나 호적에도 오르지 못했던 그저 가시나의 질투였고, 동시에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유치한 욕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골목길 달리기만큼은 절대 질 수 없었습니다.

“누가 먼저 가나, 요이 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전력 질주했고, 다리가 불편한 오빠를 앞지르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은 시원했습니다.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괜찮았습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나만의 자리를 갖고 싶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잘나지 않아도, 묵묵히 해낸 일로라도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마루에 앉은 할아버지께서 “옳다, 옳다” 하시며 내 일손을 반기실 때면,

‘내가 옳은 거구나, 나도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어 괜스레 뿌듯해졌습니다.

그 단순한 한마디는, 이후에도 선택의 갈림길마다 망설임 없이 나를 이끌어 주는 지시등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맡은 일은 곧 내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일을 잘해야만 사랑받는다는 믿음이 조용히, 마음 한켠에 자리 잡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믿음을 안고 자라 성인이 되었고, 어느새 가는 곳마다 일이 나를 따라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불평 한마디 없이 쏟아지는 일을 감당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 몫이라 믿었으니까요.


그렇게 나는, 손끝 야문 아이에서, 성실하지만 어딘가 답답하고 모자란 일꾼이 되어갔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나서도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일은 점점 많아졌고, 나는 점점 더 지쳐갔습니다.

즐겁지 않아도, 하고 싶지 않아도, 일도 부탁도 늘어만 갔고 어쨌든 해내야 했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법도, 내려놓는 법도 몰랐습니다.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말 없는 고집으로 마음 한쪽이 단단히 묶여 있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좋으니,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


지금 돌아보면, 저도 삼월이처럼

어딘가에 작고 보잘것없는 마음 하나를 꼭 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존재감이 없었던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나, 여기 있어.”


아마 그 작은 마음 하나가

줄곧 나를 달리게 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무작정 달리기보다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려 합니다.


조급함 대신 마음을 살피고,

지치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법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멍드는 일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 이상, 남의 밭을 대신 갈지 않으려 합니다.


누군가의 몫까지 짊어진 일을, 우리는 때로 의무라 부르고

희생이라 여겼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때때로 친절을 가장한 간섭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의 삶의 일부를 훔친 건지도 모릅니다.


남의 삶에 힘을 쏟던 그 시간 동안, 내 삶은 조금씩 메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걸, 너무 늦게야 알았지요.


이제는, 내 땅에서, 내 도구로, 내 방식대로 씨를 뿌려보려 합니다.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수확이 적으면 또 어떻습니까.

내 손으로 길러낸 열매라면, 그 기쁨은 온전히 나의 것이니까요.


조금 천천히,

내 웃음을 되찾기 위해 한 걸음씩, 조심스레 걸어가려 합니다.


늦깎이 삼월이의 마음에도,

드디어, 봄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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