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도보다 실천을 시작할 때
정월대보름.
하늘이 흐린 오늘,
달에게는 오랜만의 휴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보름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원이 쏟아지는,
달에게는 가장 바쁜 날이니까요.
언제나 밤하늘을 밝혀주던 달.
오늘만큼은 고요히 안식의 밤을 누리길 바랍니다.
달 나이도 지구와 비슷하다면
대략 46억 년쯤 되었겠지요.
해는 대지를 살찌우고,
달은 갯벌을 어루만지며 조석의 리듬으로
기름진 땅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생명들이 길러졌고요.
이처럼 우리를 살찌워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해와 달은 또 다른 은혜도 나눠주었습니다.
해는 일출의 찬란한 빛으로
새해의 희망을 밝혀주고,
달은 정월 대보름의 둥근 얼굴로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을 받아주었지요.
한민족의 집단 멘털 케어까지.
참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대자연에 기대어
문화를 꽃피우고, 철학을 일구어왔습니다.
자연은 언제나 묵묵히 우리의 스승이 되어주었지요.
어쩌면 지구는,
인간 영혼이 배우고 자라는
거대한 배움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부신 과학 기술의 발전 끝에
인류는 이제 신의 영역까지 넘보며 우주를 탐험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 지구는 지금,
전쟁과 재해, 재난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지구가 아픈 건,
그만큼 지구인들이 지쳐 있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은 너무 복잡해졌습니다.
기도와 도움의 손길은 넘쳐나지만
세상의 상처는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삶의 방식이 달라져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달에게 더는 빌지 않기로 했습니다.
고요히 빛을 나눠준 달.
이젠 우리가 달에게 쉼을 건넬 차례입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올렸던 수많은 바람들조차
달을 더 지치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건강을 바라면서도 내 몸은 돌보지 않았고,
여유를 원하면서도 할 일은 미뤘습니다.
그날의 말뿐이었던 덕담과 인사말,
나조차 실천하지 못한 바람들을
남에게 떠넘기고 있었던 겁니다.
앞으로는 하늘보다
내 안을 먼저 들여다보려 합니다.
작은 것부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내게 주어진 삶을
책임 있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나의 진짜 소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바람은, 아마 나만의 것이 아닐 겁니다.
많은 이들이 삶의 무게를
스스로 견디기보다
타인이나 운명에 기대며 살아갑니다.
저 또한 그런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내 삶을 외면하자
마음은 무거워졌고,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리는
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흔들리자
관계도 무너졌습니다.
그 사이,
나의 어려움은 주변의 걱정으로 번져가고
내 세상은 서서히 빛을 잃어갔지요.
그렇게 무너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나 하나의 회복이,
어쩌면 세상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요.
내 마음이 가벼워지자,
일상도 조금씩 부드러워졌습니다.
관계도 서서히 안정되어 갔고요.
그렇게 시작된 작은 변화는
내 삶을 차츰차츰 평온으로 이끌었습니다.
차갑게만 느껴지던 세상도,
어느새 따뜻하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빌기보다
먼저 움직일 때입니다.
달에게 빌고 결과를 기다리기엔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까요.
해야 할 일을 마주하고,
한 걸음씩 실천해 나가는 편이
오히려 소원을 이루는 지혜처럼 느껴집니다.
기도은 하늘에 올려도
복은 땅에서 지어야 하니까요.
내가 선 자리에서 먼저 움직여야,
그 정성에 하늘도 답해주지 않을까요?
정월대보름은
예로부터 한 해의 맑은 기운을 받아들이며
성장을 다짐하던 날이었습니다.
그 옛날, 우리는 소지를 태워
소망을 하늘에 띄웠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모든 답을 하늘에 맡기던 시절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삶을 가꿀 도구도,
길을 찾을 힘도
우리 안에 모두 있습니다.
길은 스스로 내어야 합니다.
그 길이 곧 기도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 손끝에 마음을 담아
정성껏 키보드를 두드리겠습니다.
이 글이 기도가 되도록.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넘어,
생행복사(生行福死)를 이야기해야 할 때입니다.
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가 걷는 걸음마다
내 손길이 닿는 곳곳마다
아름다운 그림으로 피어납니다.
복을 그리는 일은
내 안의 빛으로 세상을 물들이는 일이고,
내 영혼의 향을 입히는 일입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건
살아 있는 동안
복을 다 지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이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복된 향기로 남아
남은 생들을 품을 테지요.
달은 좀 쉬게 둡시다.
오늘은 달 대신
우리가 누군가의 하늘이 되어봅시다.
우리가 조금 더 따뜻해지면
세상도 그만큼 따뜻해질 겁니다.
복 지으러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