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나에서, 작동하는 나로
약속 시간에 맞춰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차 문을 여는 순간, 또 배터리가 방전됐습니다.
이번 겨울만 벌써 세 번째였습니다.
그때도 생각했지요. ‘추위 탓이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그 판단이, 오판이었습니다.
며칠 뒤, 배터리를 교체하러 나섰던 그날에도 또다시 방전.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급히 수습하고, 조심스레 서비스센터로 향했습니다.
서비스 센터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다가, 문득 미안해졌습니다.
매일 나와 함께한 분신 같은 차였는데, 나는 필요할 때만 찾았구나 싶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운전석에 앉아 피식 웃었습니다.
‘자동차도 자식처럼 돌봐야 하나 보다.’
집에 도착하자 피로가 몰려왔고, 소파에 앉자마자 곧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눈을 뜨자, 이 차를 처음 샀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막 따고 지인과 차를 마시던 어느 날,
뜻밖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우리 회사 신사옥 1층에 카페 하나 열어보면 어때요?”
처음엔 망설였지만, 마음 한켠이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며 손 갈 일이 줄자,
이제는 나를 위한 삶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던 참이었습니다.
1년 동안 준비한 끝에 조그만 카페를 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오랜 시간 외면한 나라는 존재에 전원을 켜보려는 시도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지요.
‘삼년 만, 사회 공부를 해보자.’
가족의 허락을 구하고, 결혼 후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들였습니다.
아침엔 아이들 식사를 챙기고,
곧장 카페로 출근해 메뉴를 익히고 손님을 맞았습니다.
저녁엔 장을 보고 식사 준비, 집안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일터도, 생활 리듬도, 옷을 갈아입은 나 자신도
몸보다 마음이 더 바빴던 시간들.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렜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남편도 웃으며 말했습니다.
“잘해 봐”
하루하루 정신없는 와중에도 나는 좋았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로 사는 삶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남편은 매출을 점검하며 사소한 일까지 간섭하기 시작했고,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이름들도 하나둘 발목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응원은 사라졌고, 의무에 더해 무력감만 남았습니다.
이해보다는 눈치를, 성장보다 역할을 먼저 요구받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지금껏 외면해 온 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이 나를 부르면 달려 나가야 하는, 그때까지도 나는 이름에 갇혀 세상 밖으로 온전히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카페 일도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사내 휴게실에 불쑥 등장한, 정체 모를 카페와 낯선 사장.
직원들의 싸늘한 눈빛과, 곁눈질을 하며 수군대는 태도는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억울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시내도 아닌 시골 회사 안에
생뚱맞은 카페가 들어섰으니, 오해받을 만도 했지요.
나에겐 사회 진출을 위한 공부 시간이었지만,
그 속사정을 그들이 알 길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안팎으로 대인 스트레스가 누적되자,
어느 날 문득,
‘그만둘까?
이렇게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삼 년만 해보자’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방향을 조금 바꾸기로 했습니다.
카페는 어느 날은 동아리방으로,
또 어느 날은 강의장, 환영회장으로 변신했습니다.
겉보기엔 평범한 공간이었지만,
안에서는 쉼 없이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웃고 떠드는 동안,
나는 커피머신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출당하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멈추면 고장 날 것만 같아서,
쉼도 잊고 계속 작동만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에너지는 방전되었고, 나는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한 손님이 느닷없이 내 사주를 봐주겠다며 말을 걸어왔습니다.
“올해 죽을 운이네.”
순간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최근 피로와 함께 유독 잦았던 이상한 일들이 머릿속을 스쳤지요.
무더위 속,
에어컨이 고장 난 줄도 모르고 쏟아지는 졸음을 억지로 견디며 핸들을 잡았던 날들.
게다가 일주일 내내 출퇴근길마다 마주친 교통사고 현장의 잔재들까지.
‘혹시 그게 죽음의 신호였을까.’
가만히 듣고 있으니 그녀가 말을 이었습니다.
“지금은 귀인이 도와 간신히 넘기지만...
당신 나이 들어서도 힘든 팔자야.”
죽을 운이란 말보다,
나중이 더 힘들 거라는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무심코 웃으며 대답했지요.
“아이고, 지금도 힘든데, 나이 들어서도 그러면 우짜노.”
애써 웃으며 고맙단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잠시 뒤, 어수선한 분위기에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가 까맣게 질린 얼굴로 허둥지둥 카페를 뛰쳐나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더니,
말도 없이 황급히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함께 온 이들조차 어리둥절한 얼굴로
카페 문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며칠 뒤, 저녁 식탁에서 그날의 일을 무심히 꺼냈습니다.
“엊그제 카페에 이상한 손님이 왔는데, 내가 죽을 운 이래...”
남편의 표정이 굳었고, 식탁엔 긴 침묵만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남편은 아무런 말도 없이 카페에 나타났습니다.
“오늘은 카페 그만 접고, 어디 좀 가자.”
그가 데려간 곳은 자동차 대리점이었습니다.
전시장 가운데, 흰색 승용차 한 대가 환한 조명 빛을 받으며 서 있었습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차를 가리켰고,
잠시 뒤, 새 차의 운전석에 앉은 나는
낯섦보다 익숙함을 먼저 느꼈습니다.
‘내 차구나!’ 싶었지요.
처음 타보는 차인데도, 이상하리만큼 편안했습니다.
졸음은커녕 당장이라도 달리고 싶어 졌습니다.
그날 이후, 내 일상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가던 길이 바뀌었고,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졌습니다.
허약 체질에 만성질환을 안고 살던 나였지만,
지금은 훨씬 건강해졌습니다.
그분이 말한 사주요?
글쎄요. 나는 아직도 살아 있고,
날이 갈수록 더 건강해지고 있으며,
삶의 질 또한 나아지고 있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날 겁에 질려 그분에게 매달렸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지금쯤, 검증되지 않은 인연에 휘둘리며
나를 잃고, 남의 말에 기대 안쓰럽게 살아가고 있었을지도요.
요즘은 개명도 성형도 익숙한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운명도,
충분히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시절, 내 인생의 배터리는 자주 방전됐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고,
일상은 늘 벅찬 일로 가득했지요.
길을 잃은 줄도 모른 채, 살아내기에 급급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즈음, 상담 심리 공부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의 시작이 결국 나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 깨달음은 인성 공부로 이어졌고,
그 길에서 마음의 온기를 나눌 인연들을 만났습니다.
진심 어린 사람들과의 연결은 메말라버린 내 마음에 따뜻한 전류를 흘려주었습니다.
꺼져가던 내 안의 불빛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진리를 향한 공부, 그리고 마음을 나눈 사람들과의 만남은
내 안의 숨을 다시 흐르게 해 주었습니다.
그 온기가 나를 일으켜 세웠고,
나는 스스로의 삶을 향해 다시 걷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배터리가 자주 방전된다면,
더는 모른 척하지 말고 멈춰 서서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죽을 것 같아...”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내뱉는 이 말 안에는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절규와
‘그래도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두려움은 모를 때 커지고,
알고 나면 그저 처리해야 할 과제 하나가 될 뿐입니다.
죽을 것 같던 순간이,
돌아보면 삶의 새 출발점이었습니다.
어제의 나는 잘 보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새로워진 나를 다시 켜 보십시오.
더는 꺼진 채 머무르지 말고, 이제는 밝은 나로 살아가야 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