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효부상-2

진짜 효, 나답게 살아내는 용기

by 지은담

아침을 여는 소리는 언제나 어머니의 밥 짓는 소리였습니다.
내 기억 속 어머니는 늘 허리를 굽혀 일하시는 모습이었고,
그 손은 평생 가족을 위해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그 긴 세월의 희생과 인내를 나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내가 어머니의 자리에 서고 나서야,
그 고됨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게 사는 것이

늘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자각도 생겼습니다.


그 깨달음은 자연스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지요.

어머니처럼, 나 또한 관습과 기대 속에 묶여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채 살아왔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배움을 나누며,

우리는 조금씩 삶의 족쇄를 풀어 나갔습니다.
만약 배움도 자각도 없이 그저 참고만 살았다면,

그 고단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각이 찾아왔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틀을 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고집이 세어, 일이 과하게 몰려도 거절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못했지요.

연휴마다 지인들은 자유롭게 여행을 계획하고,

아이들과의 추억을 쌓았지만,

나는 관습과 의무에 묶여 먼 시댁을 찾거나

주변인을 위해 내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었습니다.

휴가는 쉼이 아니라

집안을 위해 더 많은 긴장과 노력이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삶이 당연하다고 믿었습니다.

“지금은 참고 고생해라. 즐기는 건 나중에 해도 된다.”

그 말이 처음엔 당연하게 들렸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이웃과의 교류를 막고, 변화를 차단하며,

가족을 위한 역할자로만 살으라는 무언의 그 족쇄가

늘 나를 묶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허리와 다리의 극심한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말했습니다.

“아직 30대시네요. 그런데... 중증 골다공증입니다.

몸 상태가 칠팔십 대 수준이에요."

이른 폐경 증상과 통증은 내 몸이 보내는 구조 신호였습니다.


나는 늘 누군가의 딸, 며느리, 아내, 엄마였지만

정작 로 살아본 기억은 거의 없었습니다.

젊음을 잃은 듯한 충격 속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기대와 관습에 끌려다니며

나를 돌보지 않은 세월이,

가족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나를 방치한 시간이었음을.

이대로 가면 내가 오히려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불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효는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나를 바로 세우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오랜 습관과 굳은 관계의 틀을 바꾸기 위해

외면해 온 감정과 뿌리 깊은 고집을 하나씩 마주했습니다.

삶의 중심을 되찾자,

나를 얽매던 관계들이 자연스레 정리되었습니다.

이제는 누구의 딸도, 아내도, 며느리도 아닌

오롯이로 설 자리가 생겼습니다.

그 변화는 부모님과의 관계에도 스며들었습니다.

예전엔 걱정과 불편이 앞섰지만 지금은 편히 마주합니다.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오랜 원망의 그림자도 서서히 걷혔습니다.

어머니께 스마트폰을 사드리고 사용법을 알려드렸습니다.

그 작은 화면 속에서, 모녀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손자 보고 싶다는 말 대신

예쁜 꽃 사진과 유익한 영상을 보내오십니다.

유튜브로 배우며

어머니의 생각도 한결 젊고 유연해졌습니다.

나를 묶던 오래된 짐을 내려놓자

부모님은 부모님의 일상을,

나는 나의 성장을 위한 일상을 살게 되었고

그 여유 속에서 대화는 더 자주, 더 깊어졌습니다.

웃는 자식을 보는 것,

그 웃음 속에서 자신의 빛을 내며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부모에게 가장 큰 기쁨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예전의 효부상이 전한 메시지는

묵묵한 헌신과 희생이었지만,

이제 내가 믿는 효는

스스로를 바로 세우고 단단히 성장하게 하는 힘에서 시작됩니다.

그 힘이 있어야만 부모를 향한 사랑과 돌봄도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서로가 단단해질 때,

불필요한 아픔이나 불행은

자연스레 멀어집니다.

어머니는 말없이 인생을 견뎌내셨고,

나는 늦게서야 효를 배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깨달음이 조금 더 이른 시작이 되길,

그래서 너무 늦기 전에

스스로를 세우는 그 길 위에 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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