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부의 가르침

잃어버린 흐름을 다시 걷다

by 지은담
흐르는 말이 흐르는 마음을 만든다

늦은 오후, 산책을 나섰습니다.

호숫가에 다다르니 천천히 걷는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할아버지 곁에서 할머니가 다정이 말을 건넸습니다.

“다리는 좀 어때요?”

손을 맞잡고 나란히 걷는 두 분의 모습엔

따뜻한 마음이 공기처럼 감돌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오가는 길목이었지만,

유독 그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차마 앞지를 수 없어,

잔잔한 물빛도 바라보고 살찐 물오리도 찾으며

일부러 걸음을 늦추었습니다.

그 와중에,

낮에 읽은 자료에서 본 문장이

온라인 강의 속에서도 그대로 흘러나왔습니다.

귀가 번쩍 뜨였지요.

“사람을 바르게 대한다는 것은,

겸손한 태도로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다.”

늘 무심히 흘려듣던 말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마음을 때리고 지나갔습니다.

‘나는 가족을 진심으로 존중하지 않았었구나.’

결혼.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막연한 기대만 안고 시작한 여정이었습니다.
대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고,

마음의 간극은 점점 벌어졌습니다.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했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걷기엔 너무도 달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바뀔 거란 희망은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체념으로 기울었고,

가정의 균형은 무너졌습니다.

각자의 욕심과 고집은 고장 난 열차처럼
폭주하며 충돌을 거듭했습니다.

멈출 방법을 몰랐습니다.
연료가 다 탈 때까지, 선로 위를 질주할 뿐이었지요.

집은 화목보다 불화에 더 익숙한 공간이 되었고,

아이들은 조용히 방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무겁게 닫힌 문 너머로

마음도 함께 닫혀갔습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이들이어야 함에도

서로에게서 가장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툭 던진 한마디가 가슴을 찔렀습니다.

“막내를 볼 땐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데,

남편을 볼 땐 표정이 딱 굳어지셔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요.”

몰랐습니다.

내 얼굴에 그렇게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걸.

산책길에서 마주친 노부부가

그토록 아름다워 보였던 이유.

이제야 알겠습니다.

걸음을 맞추고 안부를 묻는 그 짧은 순간 속에,

오랜 세월 쌓아온 존중과 신뢰가 깃들어 있었던 거죠.

“갖춘 자라야 겸손할 수 있다.”

그 말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렸습니다.

나는 너무 오래,

겸손도, 존중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잃어버린 흐름,

말이 흐르고 마음이 흐르는 그 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호숫가 산책로를 반쯤 걸었습니다.

눈앞에 구명정 비치 안내 표지가 보입니다.

“구명정이 이곳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위급 시 사용하십시오.”

호수가 내게 가만히 건넨 선물 하나.

겸손과 존중이라는 이름의

참 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이제 안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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