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품격

산골 마당에서 피어난 생명의 기개

by 지은담
모두가 움츠러든 계절에도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자가 진짜 보스다



봉수산 자락, 산그늘이 길게 드리운 어느 오후.

해맑게 웃으며 마당을 들어서는 두 아들의 품에

요란한 종이상자 하나가 안겨 있었습니다.

이웃 골짜기 교수님 댁에서 얻어온,

햇살을 품은 노란 병아리들이 그 안에서 재잘대고 있었지요.


그날부터 병아리들은 우리 가족의 하루에 자연스레 스며들었습니다.

아이들은 곧장 쪼그려 앉아 반짝이는 눈으로 이름부터 지어주기 시작했지요.

파닭이, 후라이드, 양념이... 그리고 유일한 수탉, ‘보스’까지.


너른 잔디마당을 누비며 벌레를 쪼던 병아리들은 금세 의젓한 성계로 자라났고,

그중에서도 보스는 단연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화려한 깃털, 느긋한 걸음.

암탉들이 다투다가도 보스만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습니다.


“꼬~끼오~~~”

어느 새벽녘, 보스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처음 들려왔습니다.

그날 이후로 날마다 새벽이면

온 가족이 보스의 울음소리에 맞춰 단잠에서 깨어났지요.


“얘들아, 쟤 좀 말려봐.”

성가신 척 투덜거리면서도,

제 할 일을 잘 해내는 보스가 내심 기특했습니다.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에,

먼저 하루를 여는 그 울음은

묘하게도 마음 깊은 곳에 든든함을 심어주었습니다.


암탉들이 하나둘 알을 낳기 시작했고,

매일 아침, 따뜻한 알을 손에 쥘 때마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의 뒤편에 도사린 위협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빽~!”

어느 날 오후, 공포와 혼란이 뒤섞인 날카로운 비명이 터졌습니다.

황급히 달려 나가 보니,

마당에서 닭들이 혼비백산해 날개를 퍼덕이며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었지요.

절에서 내려온 개 한 마리가 수탉 보스를 덮치고 있었습니다.

보스는 홰를 치며 가까스로 몸을 빼냈건만,

이내 다시 붙잡혀 화려한 꽁지깃을 몽땅 뜯기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보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날개를 퍼덕이며 도랑 쪽 가시덤불로 몸을 던졌고,

그렇게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요.

하루가 지나고서야 모습을 드러낸 보스는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습니다.


마당을 장악하던 위용은 사라지고,

텅 빈 꽁지깃과 절룩이는 걸음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저리게 했습니다.

그날, 두 마리의 암탉도 개에게 희생되었고

친구를 잃은 슬픔은 온 계곡에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마당 한켠에 숨진 닭을 묻으며 참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을 단풍이 소리 없이 내려앉은 산골 마당엔

생명의 활기 대신 낯선 적막만이 길게 머물렀습니다.


이후에도 절집 개는 예고 없이 나타나 닭들을 해쳤고,

결국 살아남은 건 보스와 치킨이 단 두 마리뿐이었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허름한 닭장을 치우고 철제 구조물로 튼튼한 새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했어야 했습니다.

자유라 믿었던 선택은 결국 상실이라는 대가를 안겨주었습니다.


다음 해, 보스와 치킨이는 네 마리의 귀여운 병아리를 얻었습니다.

유독 더운 날씨 덕분이었을까요.

어미 닭이 품지 않았는데도 기적처럼 자연 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작은 생명을 품은 시간, 아이는 웃으며 어른이 되어갔다

어미는 병아리들을 제 새끼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걱정이 된 아이들은 병아리들을 거실로 데려와 정성껏 보살폈고,

조금 자란 뒤 처음으로 잔디 마당에 풀어놓았습니다.

작은 부리로 벌레를 쪼고, 잔디 위를 종종거리며 뛰노는 모습은 무척 사랑스러웠지요.


그러나 첫 산책의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풀숲에서 튀어나온 뱀이 병아리 하나를 순식간에 낚아채갔고,

그 혼란한 틈을 타, 나머지 병아리들마저 무성한 잔디밭 속으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마치 갑자기 끊긴 영상처럼 모두 멍하니 짙은 마당만 바라보았습니다.

말도, 움직임도 없이.

그렇게 한참을.


그날 이후, 산골 집 가장은 조용히 결단을 내렸습니다.

가족들 몰래 남은 닭들을 지인의 식탁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우리 가족의 닭 키우기 일상은

그렇게 되돌릴 수 없는 상실 속에서 끝이 났습니다.


그 소중한 시간 동안,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생명에 대한 섣부른 간섭은 더 큰 고통으로 돌아온다는 것.

자연의 질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냉혹하다는 것.

생명은 끈질기지만, 보살핌이 부족할 땐 너무 쉽게 무너진다는 것.

아이들과 함께 생명의 소중함을 뼈아프게 배웠습니다.


이름의 무게 또한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름은 붙인다는 건,

그 생명을 품고 책임을 함께 지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장난처럼 지어진 이름들은,

그 이름처럼 허무하게 사라졌습니다.

보스 또한 책임감 속에서 무거운 시련을 감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섣불리 이름을 지어준 대가로 아이들은 한동안 스스로를 자책했습니다.

"음식 이름으로 짓지 말걸... 그럼 죽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새삼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급박한 상황에서는 닭도 십미터쯤은 훌쩍 날 수 있고,

배고픈 뱀은, 풀 그림자 속에서 빛처럼 튀어나와, 눈 깜짝할 새 먹이를 낚아챈다는 것.

그리고 절집 개라 해서 특별히 ‘견성(見性)?’을 이루는 건 아니라는 것도.

개는 개일뿐.

본능 앞에서 도리나 존중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요.


봉수산 품속에서 펼쳐진 보스의 생존기는,

어쩐지 봉황의 기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사나운 개에게 허벅지를 물리고, 화려했던 꽁지깃마저 잃었지만,

그는 끝내 스스로를 지켜냈습니다.


위용을 잃고도 다시 일어난 그 모습은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우리 인생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절룩이던 걸음은 한 달여 만에 제자리를 찾았고,

텅 비었던 꼬리깃은 오히려 더 화려하게 자라났습니다.

시련 이후의 보스는 전보다 더 늠름하고 의젓해졌으며

마침내 새 생명까지 품어냈습니다.


사람도 짐승도 마찬가지입니다.

끝까지 버틴 존재는 전보다 더 강인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더 지혜롭고, 더 용맹하며, 때로는 더 우아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잠든 세상을 깨우고,

삿된 기운을 몰아내며,

밝은 새 아침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존재.

닭이지만, 봉황의 기운이 깃든.


이 혼란의 시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보스처럼 단단한 기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렁찬 울음일지도 모릅니다.


그 울림에 깨어난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아침을 연다면,

이 세상에도 봉황의 날갯짓이 다시 시작되겠지요.


이제,

누구의 울음이

잠든 세상을 깨울지,

조용히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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