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효부상 -1

효라는 이름에 가려진 가려진 것들

by 지은담

“용아, 아이고 용아!”

해 질 무렵,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큰길로 쏜살같이 내달리셨습니다.

손에 든 모자는 담벼락으로 내던져졌고,

두려움과 간절함이 뒤섞인 눈빛은 마을 끝 큰 도로를 향했습니다.

놀란 이웃들도 뒤따라 달려갔습니다.

“아이고, 우짜노… 이 집 아들이란다, 용이…”

대문 앞에 선 나는 숨소리마저 굳은 채 얼어붙었습니다.

곧이어 울린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마을 공기를 칼로 베듯 갈라놓았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어머니가 돌아오시고서야

사고 당사자가 오빠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안도와 함께 낯선이의 죽음이 밀고 온 두려움이

우리집 마당까지 스며들었습니다.

마을 앞 도로에는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고 계셨습니다.

그날의 두려움은 이후로도 한참동안

마을의 공기 속에 머물렀습니다.

그 무렵 마을은 대규모 공단 조성 공사로 산은 깎이고 바다는 메워졌습니다.

누구도 다가올 변화를 깊이 헤아리지 못한 채,

대형 트럭들이 종일 마을 앞 도로를 질주했고,

아이와 노인들이 잇따라 도로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누구보다 착했던 아홉살 내 친구,

갓 태어난 우리 집 송아지도 그렇게 잃었습니다.

나 역시 하굣길에 거대한 트럭 바퀴를

간발의 차로 피해 살아남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시나브로,

마을을 가르는 엔진 소리가 재앙의 예고처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밤,

당산나무가 벼락을 맞아 반으로 쪼개졌습니다.

그날 이후 젊은이들의 죽음이 이어졌고, 마을을 떠나는 집들이 늘어났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몸빼 자락을 붙들고

“우리도 이사 가자”고 졸랐지만,

어머니는 말없이 허리숙여 일에만 몰두하셨습니다.

결국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산신제를 지내고 위령제까지 올렸습니다.

어느 새벽, 목욕을 마치고 흰 두루마기를 차려 입고 집을 나서신 할아버지는

오후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인자 됐다.”

길게 밭은 숨과 함께 나온 할아버지의 한 마디,

왠지 미덥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마을에는 더 이상 변고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직후 할아버지가 쓰러지셨고,

세 해에 걸친 어둡고 긴 간병이 시작되었습니다.

매립공사로 소금물을 생활 용수로 쓰던 시절,

어머니는 새벽이면 고무대야를 머리에 이고 먼 냇가로 걸어가 젖은 이불을 빨았습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시부의 밥투정과 욕설, 시모의 시집살이,

매일같이 술에 취한 아버지의 분노,

끝 모를 오빠의 병치레를 조용히 감당하셨습니다.

그 모든 고단함 속에서 어머니는

하루하루를 묵묵히 견뎌내셨습니다.

그 와중에 거센 태풍과 해일이 마을을 덮쳤습니다.

우리는 목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하룻밤을 버텨야 했지요.

아버지가 부력에 뜬 가구에 갇혀 있는 동안,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업은 채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옷은 물에 젖었지만, 그 등에 업힌 할아버지의 등은 끝내 젖지 않았습니다.

그 등에서 나는 숭고함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숭고함 위에 엊힌, 무지의 무게도 함께 보았습니다.


사실 그 재앙은 피할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안일한 판단과, 재난에 대처할 지식과 경험의 부재가 우리를

어둡고 깊은 물속에 가두었습니다.

물살이 빠진 뒤,

젖은 가재도구와 진흙더미 앞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가족은,

구호의 손길과 함께 일어나 복구를 시작했습니다.


마을이 다시 안정을 되찾을 무렵,

군에서 보내온 효부상과 고급 반상기 세트를

마을 이장이 손에 들고 집으로 전해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굳은 표정의 어머니는 상장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낮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훗날 그 날의 일을 여쭈었을 때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효부상 받은 집 자식들은 불행해진다고 하더라...”

그제야 알았습니다.

효부상은 어머니의 헌신을 기리는 표창이 아니라,

무거운 책임을 한 사람에게만 떠맡긴 증표였습니다.


한 사람의 희생을 효성이란 이름으로 감싸고,

겉만 번듯하지만 속은 비어 있는 포장지처럼,

그 상은 책임과 잘못을 가린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마치 자연이, 인연된 모든 이가 나누어야 할 몫을 돌아보고

서로의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경고였다는 것을.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단호한 일깨움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돌아보니,

그 모든 불행은 단순한 운이 아니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삶이 부른 경고였고,

우리가 갖추지 못했던 것을 드러내는 신호였습니다.

재난에 대처할 지식도,

서로를 돌볼 체력도,

마음을 열어 대화할 용기도 없었던 시절.

그 무지와 결핍이 세대를 넘어 병과 불운을 키웠고,

결국 건강과 관계마저 무너뜨렸습니다.


효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앎을 나누고 함께 성장해 가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야 압니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을 무심히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 시절, 무지와 결핍이 우리를 깊은 물속에 가두었던 밤을 기억하며,

나의 몫과 책임을 기꺼이 배우고 채워갑니다.

언젠가 누군가를 지켜야 할 순간이 오더라도,

그때는 준비된 내가 서 있기를,

그리고 그 등 뒤에 누군가가 안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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