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는 나를 위한 가장 확실한 셀프 리셋입니다.
낮 동안 스며든 봄기운에 온몸이 들썩였습니다.
이사 온 지 반년, 호기롭게 미니멀 라이프를 선언했지만 정갈한 생활은 몇 달도 채 가지 못했지요.
어느 순간부터 지름신이 강림했고, 물건은 쉴 새 없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쯤은 정리도 해보았습니다.
쓰지 않지만 괜찮은 물건은 지인에게 나누고, 필요 없다 여겨지는 것들은 과감히 버렸지요.
그런데도 새 물건들이 또다시 가족의 휴식 공간을 잠식해 옵니다.
매번 후회가 밀려듭니다.
필요해서 애써 들인 물건들이, 막상 손에 들어오면, 왜 이리 시들해지는 걸까요?
어제와 오늘이 다른 이 변덕스러운 마음, 내 마음이지만 참 얄밉습니다.
성실하게 돈 버는 재주도 없으면서, 맘에 드는 물건이 보이면 금세 떼쓰는 아이 마음이 됩니다.
참 어이가 없습니다. 들일 땐 분명 최고의 선택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왜 또 그랬을까...” 싶은 씁쓸함이 남습니다.
어쩌면 그런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청소를 핑계 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 안의 못난 죄책감이 조금은 가벼워지니까요.
어제, 평소보다 과하게 태권도 수련을 한 탓에 온몸이 욱신거리지만, 청소만큼은 미룰 수 없습니다.
먼저 쓰레기부터 버리고, 몇 년째 묵혀둔 일회용 세정용품, 써보지도 않은 화장품 샘플들까지 정리 해고에 들어갔습니다.
작년에도 쓰지 않았고 지금도 손이 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쓸 일은 없을 테니까요.
욕실과 주방도 반짝반짝 닦아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밤새워 온 집안을 뒤엎었겠지만, 이제는 반백의 중년. 과욕은 부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청춘에는 무리를 해도 금세 회복됐지만, 지금은 욕심이 앞서면 금방 탈이 납니다.
절제와 겸손, 이제는 몸이 먼저 가르쳐 주는 삶의 덕목입니다.
주말까지 쉬엄쉬엄 봄맞이 대청소를 이어가려 합니다.
비우는 건 물건인데, 먼저 맑아지는 건 머릿속입니다.
삶이 복잡할수록, 단순한 일이 나를 살립니다.
예전 모든 걸 잃었던 순간에도 이상하게 상실감보다 만족감과 해방감이 앞섰던 기억이 있습니다.
매이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 같습니다.
한동안 쇼핑을 자제하고 여백의 미를 즐겨보려 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 수납장과 서랍 속까지 정리하고 나니, 집안 전체에 전에 없던 기운이 감돕니다.
그 기운은 마음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며, 묘한 정갈함을 남깁니다.
물건에 가려 답답하던 벽이, 오늘은 말끔히 비워진 여백 덕분에 훨씬 넓고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옷더미에 파묻혀 있던 소파 의자도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간 집 안 가구들을 얼마나 홀대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항상 어질러 놓기 바쁘던 아들도 오늘은 웬일인지 제법 개념 있는 척을 하네요.
호흡이 한결 가벼워지고, 모처럼 활력도 솟아납니다.
만성피로를 달고 사는 우리 같은 게으름뱅이에겐, 생존을 위해서라도 청소와 정리는 필수입니다.
기운이 돌고 생기가 차오르는 건, 깨끗한 공간이 주는 선물이지요.
낡은 물건이 나간 자리에는, 언젠가 고급스럽고 산뜻한 것들로 채워질 겁니다.
그러니 무겁고 탁한 것들과는 미련 없이 이별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버리기 아까운 물건은 나눔으로, 구시대의 물건은 사진과 기록으로 남기고,
앞으로는 간결하고 멋스러운 것들과 어울리기로 해요.
청소가 끝나고 나면, 행운이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그 행운은 이미 문 앞에 와 있을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