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저녁을 먹고 난 뒤였습니다.
아들 녀석이 갑자기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주섬주섬 배낭과 텐트를 챙기더니, 야간산행을 나가겠다는 겁니다. 주말에 친구와 함께 야영할 예정이라며, 그전에 현장 답사를 다녀오겠다더군요.
혼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어두운 산길을 오른다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급히 산에 대해 검색해 보니, 한국전쟁 당시 유해가 발견된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어 괜스레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별별 시답잖은 이유를 대며 아들을 말려보았습니다.
“밤엔 산속이 얼마나 추운데... 일행도 없이 조난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거기 유해 발굴 지역이라는데, 혹시 귀신이라도 붙어서 산중을 헤매면 어쩌냐?”
“차라리 내일 낮에 가. 엄마도 가고 싶으니까 같이 가자”
하지만 아들은 소시지를 구우며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안전해요. 밤에도 등산하는 사람들 많다니까~.”
그리고는 덧붙였습니다.
"가고 싶음, 지금 같이 가요~"
그 말에 얼결에 ‘그럴까...’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급히 헤드라이트를 모자에 장착한 채 아들의 야간산행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등산로는 의외로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넓고 평탄한 길이 이어졌고, 늦은 시간임에도 삼삼오오 가벼운 옷차림의 등산객들이 오갔습니다.
아들 말이 옳았습니다. 괜한 걱정으로 마음을 졸였구나 싶어, 헛웃음이 났습니다. 이쯤 되면, 엄마들의 오지랖은 정말 고치기 힘든 만성병인가 봅니다.
얼마쯤 올랐을까요. 전쟁의 흔적을 알리는 안내판과 위령비가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으스스할 줄 알았는데, 그 순간 올라온 감정은 뜻밖에도 안타까움과 감사함이었습니다.
호수가 내려다보는 능선 위에는 오래된 참호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참호를 살피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어떻게 지켜낸 나라인데,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가슴 한쪽이 저릿해졌습니다.
요즘, 나라의 정치 상황이 어수선하다 보니, 괜히 더 울컥하더군요.
이끌리듯, 위령비 앞에 서서 눈을 감고 묵념을 올렸습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
후배들이 더 나은 세상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평소 나답지 않게, 생각지도 못했던 애국심이 올라왔습니다. 묵념을 마치자, 멈춰 있던 발걸음이 다시 자연스럽게 움직였습니다. 마치 산이 이제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주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2km쯤 지났을 무렵,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진맥진해 몇 번이고 돌아가자고 졸랐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거침없이 앞서가는 아들의 기세에 눌려, 결국 정상까지 따라오고 말았습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마침내 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산 아래 도시의 불빛은 아름다웠지만, 정상의 바람은 감상조차 허락하지 않을 만큼 매서웠습니다. 서 있기조차 힘든 강풍을 피해 자리를 옮기던 중, 문득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짙은 밤하늘 위로 북두칠성이 또렷하게 빛을 내며 떠 있었습니다. 유난히 밝은 그 빛은 마치 세상을 굽어보듯,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바람과는 달리, 밤하늘은 이상하리만치 포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속에서 반짝이던 북두칠성은 말없이 나를 어루만지는 듯했습니다.
그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오싹함도 추위도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조차 북두칠성의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산길은 놀랄 만큼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평평한 길이 나오자, 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한참을 달리기도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겁기만 하던 두 다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가뿐해졌습니다.
아마도 하산하는 동안 별 기운을 너무 많이 끌어다 쓴 건 아닐까 싶습니다.
동네 어귀에 도착하자마자, 무릎과 고관절이 동시에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모든 일정을 줄이고, 지극히 겸손한 와불(?)이 되어 조용히 수행정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