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불편한 시대, 신뢰를 다시 배우다
복잡한 하루 끝에,
목욕탕을 찾았습니다.
전날 무리한 태권도 발차기로 온몸이 욱신거렸고,
머릿속은 생각들로 가득 차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지요.
몸도 마음도 쉬고 싶었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달리다 보니
문득 생각이 하나 떠오릅니다.
'물이란 본디, 온갖 번잡함과 피로를 씻어주는 존재지...'
복잡한 머릿속도 열탕 사우나 한 번이면 말끔히 정리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덤으로 따라오니까요.
곧장 사우나 실로 향했습니다.
늘 한산하던 그곳이 오늘따라 만석이었습니다.
잠시 망설이다 구석진 자리에 앉았지요.
때마침 덩치만큼이나 목소리도 우렁찬 어르신 한 분이
목욕탕 속 요지경 이야기를 풀어놓고 계셨습니다.
욕탕 구석에서 소변을 보는 아이를 꾸짖었다가
아이의 할머니와 언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
사우나 후 세신도 하지 않고 냉탕으로 직행한 사람에게
한마디 했다가 말싸움으로 번진 일까지.
사우나의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어르신의 입담도 달아올랐습니다.
사과와 배려로 마무리되었다면 좋았겠지만,
돌아온 반응은 하나같이 적반하장의 태도였다고 합니다.
“증거 있어요? 봤어요?”
이에 피가 거꾸로 솟은 어르신은 참지 못하고 이렇게 받아치셨다지요.
“아까부터 내가 계속 보고 있었잖아요.”
상처받은 건 오히려 어르신이었습니다.
"왜 나만 이런 일을 겪는지 모르겠다"며 분을 쉽게 삭이지 못하셨습니다.
그녀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면서도,
이상하게 목욕탕만 오면 꼭 마주친다며 분통을 터뜨리셨습니다.
이야기는 흥미진진했습니다.
사우나의 열기처럼 생생하게 전해지는 어르신의 만담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었지요.
하지만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어쩐지 마음 한켠에 씁쓸함이 스며들었습니다.
모두가 웃고 떠들던 그 분위기 속에서,
그분의 마음은 여전히 홀로인 듯 느껴졌으니까요.
이야기가 끝날 즈음,
내내 조용히 듣고 있던 또 다른 어르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요즘은 몸에 장애가 있는 사람보다
마음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더 자주 마주치는 것 같아요.”
그 말이 가슴 깊은 곳을 울렸습니다.
불편한 마음의 시대.
나 역시 한때는
마음이 불편한 채로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 지치고, 쉽게 상처받던 때,
분명 나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보입니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병과 어려움, 무례한 언행, 남 탓과 불평불만, 간섭과 시기질투.
이 모든 불편감의 근원은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요.
겉으로 티는 잘 나지 않지만
마음의 병이 깊어질수록
모순적인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고
삶 전체를 흔드는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평범한 일상 속, 이상한 낌새.
목욕을 마치고 나올 때면,
바구니 속 물건이 하나씩 사라졌습니다.
처음엔 그저 내 착각이라 여겼지요.
하지만 작은 소품에서 고급 제품까지 사라지자
이상한 느낌이 점점 선명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점 사장님과 손님이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 알고 보니 한두 번이 아니더라니까요.”
“다시는 못 오게 조치했어요.”
상습적인 도벽으로 출입이 금지된 사람.
그제야 여탕의 미묘한 변화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매점 옆 한 짝씩만 진열된 실내화,
욕탕 비품에 적혀 있던 목욕탕 이름과 매달린 줄...
모든 변화에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아직도 이런 일이 있구나!’
'정말 아무도 몰랐던 걸까?'
'다들 나처럼 설마 하며 그냥 지나친 건 아닐까?'
우리의 무심함이,
욕심 많은 이들을 더 대담하게 만든 건 아니었는지
자책이 밀려왔습니다.
이후 나는 소지품을 조심하게 되었고,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신뢰라는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옵니다.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지요.
예전에는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는 것만으로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많은 기준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워낙 복잡하고
워낙 거대해진 세상이니까요.
“요즘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이 어딨어. 다들 자기 계산만 하는데...”
“다들 포장지만 그럴듯해. 속은 텅 비었어.”
불신이 일상이 된 지금,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
배움을 멈추지 않는 이.
남의 허술함 앞에서 먼저 손 내미는 이.
자신의 허물엔 조용히 고개 숙일 줄 아는 이.
이 시대가 믿고 따르는 사람의 모습이 아닐런지요.
사우나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뒤편에서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계신 어르신이 보였습니다.
그 옆엔, 묵묵히 가방을 정리하는 또 다른 어르신이 계셨지요.
누군가는 분노로,
누군가는 침묵으로,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갑니다.
상처를 주고받는 모습도 각양각색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렇게 서로 다른 색깔과 아픔을 안고도
우리는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신뢰는 그 사이를 잇는 가장 단단한 다리입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신뢰란
‘누가 믿을 만한가’를 묻기 전에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
타인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는 것.
그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겠지요.
내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마음의 찌꺼기들부터
하나씩 정리해 나가야겠습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이 단순한 이치.
오늘, 목욕탕에서 다시 배웠습니다.
생각을 비우러 갔다가
오히려 생각 하나를 묵직하게 안고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