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주는 용기
음식점 간판이 눈길을 끕니다.
“자주 봐요, 우리 정들게.”
어제 삶아둔 바지락으로 칼국수를 끓이려 했지만, 불룩 나온 뱃살을 보고는 한숨이 절로 나와
대신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개천가 상점들 사이, 하필 칼국수집 간판이 참 다정히도 유혹을 하더군요.
하지만 ‘함부로 정 주면 인생이 고달파진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믿는 터라,
씨익 웃으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각자도생”, 요즘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시대라지요.
서로 믿고 의지하려 해도 그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불신도 깊어지는 듯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오랜 세월 속에서 각자 배운 만큼 달라진 삶의 조건들이,
우리의 관계를 자연스레 바꾸어 놓습니다.
정에 이끌려 억지로 이어가다 보면
십중팔구 상처를 남기거나
원치 않는 이별로 끝나기 마련입니다.
인연에 그리 욕심 없는 나조차,
헤어짐 앞에서는 늘 머뭇댔습니다.
결국 좋지 않은 상황을 겪고서야
얽힌 관계가 풀리곤 했습니다.
함께하며 배울 만큼 배웠다면, 이제는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인연과 환경이 들어올 테니까요.
그러나 놓는 일은 늘 쉽지 않습니다.
“저 사람 예전 같지 않아, 변했어!”
이런 꼬리표가 달리는 게 싫어 눈치만 보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말도 상대의 시선일 뿐,
내 인생에 대한 결정과 책임은
오롯이 내 몫입니다.
때로는 냉철함이 서로에게 더 큰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마라.”
참 맞는 말입니다.
함께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멀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관계가 나빠지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사람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자주 만나지 않아도 늘 마음속에 함께합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배우고 성장하다 보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 만남이 무르익은 때라면,
더 깊고 향기로운 인연이 될 겁니다.
무궁한 인연이 있는지 없는지는 조금 더 살아봐야 알겠습니다.
다만 개천물처럼 자유롭게 흐르는 인연들이 많아진다면,
속이 시커멓게 썩는 일은 줄어들겠지요.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호수에 닿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