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속죄와 새 출발의 맛
‘하나 더 살까’
마트 카트에 손두부와 순두부 4팩이 담겨 있는데도 또 두부에 눈길이 갑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아침이면 종종 두부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슈퍼에서 큰 판두부 한 귀퉁이를 잘라 들고 집으로 달려오면,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와 함께 따뜻한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예나 지금이나 두부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데도, 왠지 모르게 늘 쟁여두고 싶습니다.
건강 때문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일까.
곰곰 생각해 보니, 불현듯 드라마 한 장면이 스칩니다.
출소 후 지인이 건네준 두부를 허겁지겁 먹는 모습.
나도 혹시 그런 건 아닐까요?
아마도 내 안에 쌓인 생각과 말의 찌꺼기를 씻어내고 싶어 하는 무의식의 정화 의식 같기도 합니다.
두부를 먹는 행위가 내겐 작은 속죄이자 새 출발의 다짐처럼 다가옵니다.
그래서인지 두부는 언제나 비워낸 듯 담백합니다.
백지처럼 텅 비어 보이지만 , 그 위에 어떤 것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힘을 지녔지요.
국이나 찌개, 다른 반찬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혼자서는 소박하지만 함께할 때 풍성한 맛을 냅니다.
두부라는 맑은 기준이 있기에 우리는 다양한 맛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분명한 기준이 있기에 우리는 더 다채롭고 창의적인 행동을 빚어낼 수 있지요.
그러나 두부는 쉽게 으깨지고 상처받기도 합니다.
관계 속에서 성과를 내지만, 동시에 늘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것.
정말 우리 삶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십수 년 전, 아파트에 살며 대인관계의 피로에 지쳐 인근 산골로 들어가 7년을 살았습니다.
청정한 자연은 위안을 주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불안과 번뇌로 가득했습니다.
환경이 달라져도,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고 같은 상처가 반복되었지요.
모든 번뇌의 근원은 제 머릿속이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나는 스스로 지은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산골은 결국 내가 선택한 유배지였던 것이지요.
사람마다 저마다의 감옥이 있습니다.
신체일 수도, 집일 수도, 혹은 굳어진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찰이 시작되면 그 감옥은 새로운 도약의 방으로 바뀝니다.
실제로 감방에서 독서와 성찰로 삶을 바꾸고,
출소 후 새로운 길을 개척해 사회적 성공을 이룬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자각을 이끌어주는 활동을 왕성히 하고 있습니다.
감옥이 실패자의 낙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인큐베이터가 된 것이지요.
올여름, 글쓰기를 하며 강제 성찰을 하다 보니 내 감옥도 조금씩 무너져 내렸습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재밌기까지 할 줄이야.
글을 쓰면서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최근 들어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에게서 얼굴이 한결 맑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맘 속 찌꺼기와 함께 내 안의 감옥도 사라진 게 아닐까요.
하얀 두부 속에 건강이 깃들어 있듯, 삶 속에도 늘 새 출발을 돕는 격려의 힘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두부를 찾습니다. 그것은 곧 자유를 향한 염원이기도 합니다.
이제야 분명해졌습니다.
자유란 감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든 감옥을 깨뜨리고 새로운 길을 기획하는 힘이란 것을.
으깨진 오늘이면 어떻습니까.
오늘 저녁은 으깬 두부에 이것저것 다져 넣어 만두 한번 빚어볼까요.
이름하여, 만두부(滿豆婦). 속은 터져도, 맛은 깊어지겠지요.